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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체성 May 23. 2020

부부의 세계

매주 이해하고 있었다.

꽤 현실적인 사람인 나는 허황된 뜬구름 잡는 스토리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내게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꽤 훌륭한 작품이었다.


드라마가 끝난 지 어느덧 일주일. “아, 이제 무슨 낙으로 금요일 밤을 보내지?” 되뇌며 넷플릭스를 뒤적였지만, 정작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끈 <부부의 세계> 리뷰 영상에 머물렀다.


영화든 드라마든 재밌었던 작품을 보고나면 리뷰를 돌려보는 쏠쏠한 재미를 절대 놓치지 않는 나는 유독 (너무나 예상되는) 이 드라마 리뷰를 찾아보았다. 항상 논란이 됐던, 특히나 열린 결말을 두고선 갑론을박이었다. 나는 그걸 또 애청자의 자리에서 댓글 하나하나까지 읽어보았다.


"끝까지 사이다는 없네. 막장드라마. 무슨 말도 안 되는 전개야. 너무 현실적이지 못 해."


그런가 하면 바람을 경험해보거나 이혼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너무 현실적이라서 소름 돋는다고 말했다. 그렇다. 불륜 드라마 중에 이토록 현실적인 작품은 없었다. 캐릭터의 심리를 이렇게 현실적으로, 그래서 시청자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연출해낸다고?


매주 이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이 지선우와 이태오를 욕할 때마다, 나는 왠지 같이 욕먹는 기분이 들었다. 이 또한 과도한 감정 이입이었겠지만, 바람도 당해보고 그런 꼴에 지구 끝까지 질척여본 경험도 있는 나에게 이런 캐릭터와 스토리는 나로 하여금 크나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다들 미친년, 미친놈으로 욕하고 있는 마당에 나는 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와 동시에 자기반성도 했다. 제 3자(지선우)에게 투영되는 나 자신을 보며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선우에게 굉장한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게 마치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 같아서 슬퍼졌다.


그래서 난 작가의 결말이 꽤 마음에 든다. 지선우는 준영이를 제치고 본인의 감정이 우선시될 만큼 꽤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이태오는 제3자에게서도 지선우를 찾으려 한 바람둥이였고, 그 둘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서로를 끊어낼 수 없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자기반성으로 수렴한다.


“삶을 대부분을 나눠가진 부부 사이에 한 사람을 도려내는 건 내 한 몸을 내줘야 한다는 것.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 가해자도 완전무결한 피해자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아프게 곱씹으면서 또한 그 아픔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매일을 견디다 보면

어쩌면 구원처럼 찾아와 줄지도 모르지. 내가 나를 용서해도 되는 순간이.”


마지막 씬. 긴 포니테일을 한 지선우가 준영이를 품에 안는, 그녀가 본인을 용서하고 구원받는 그 씬이 현실인지 상상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타이틀에서 자그마한 불이 켜진 걸 보면 언젠가는 그리 될 거라는 걸 암시하는 것 같아서. 그녀의 삶에 불이 켜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이란 정말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표하기는 힘든) 그 복잡미묘한 감정을 정말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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