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해진 모든 것.
날이 제법 따뜻해졌다. 벌써부터 봄내음이 난다. 그제는 날이 너무 좋아서 외투를 손에 들고 지하철 두 정거장을 걸었다. 노래는 추억의 버스커버스커.
집에 햇살이 반나절 이상 들어오면 좋겠건만, 태양이 빛을 내어주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이다. 예전 작은 자취방에서는 아침부터 해가 너무 많이 들어 난리였는데, 지금 집은 너무 어둡다. 창에 붙은 필름 탓도 있고, 집 방향 탓도 있고. 먼 훗날 이사를 가게 된다면 꼭 해가 과하게 들어오는 집으로 가야지.
그래서 이렇게 날이 좋아졌는지 몰랐다. 일주일에 4일은 집에 박혀있는 생활을 하면서 밤낮은 또 뒤바뀌었고, 집은 어두웠고, 나는 작은 스탠드의 노란 조명에 의지해 살았으니까. 간만에 운동 가는 날, 패딩을 입고 나왔다가 따뜻한 공기에 너무 놀랐던 거지. 그래서 간만에. 진짜 오랜만에 카페에서 노트북을 켰다. 처음 오는 카페인데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바 자리가 있고 라떼도 가 무척이나 맛있어서 기분이 좋다. 햇살만 들면 완벽할 것 같다.
날이 따수우니 마음도 말랑말랑해진다. 영하에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멜랑꼴리해지고, 어제는 또 '원스'를 봤단 말이지.
한창 블로그 정리를 하고 있어 외장하드와 옛날 핸드폰을 뒤적이고 있다. 사진과 영상 속 내 모습이 낯설다. 잘 나다니고, 잘 웃고, 용기가 넘쳤던 나. 스톡홀름 어느 다리에서 활짝 웃는 사진, 몽골 초원을 달리는 고물차에서 찍은 한탄 영상, 그 당시 거금을 주고 샀던 젠틀몬스터 안경을 끼고 코펜하겐 행 기차 베드에서 누워 찍은 셀카를 에어드롭으로 옮겼다. 그리고 정말 간만에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여행에 대한 욕구가 급격히 없어졌는데 말이야. 여행이 미친 듯이 즐겁고 행복한 건 아니지만, 리프레시가 되는 건 분명하다. 그 속에서 얻은 기운으로 또 살아가는 게 내 삶이었던 것 같다.
날이 풀리니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건 많고, 나는 벌써 20대의 끝자락을 걷고 있다. 29이란 나이가 벌써부터 아쉬울 따름.
29살 봄엔 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