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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n 16. 2024

서울 창포원

오늘은 현충일, 공휴일이어서  직장인들은 쉬지만 목은산 친구들은 쉬지 않고 걷는다.


우리 윗 세대 어머니들이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 전후에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무너진 집을 다시 짓고 평생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온 것을 기억하고 이 지구에서 언제나 전쟁이 멈출까 생각하며 집을 나선다.


오늘의 행선지는 도봉산역에서 가까운 서울창포원이다. 서울창포원은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 중랑천변에 붓꽃을 주제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9년 전에 우리가 새로 생긴 서울둘레길을 걸어 보겠다고 찾아온 곳이 이곳인데 바로 여기에서 서울둘레길의 제1코스가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알게 된 곳이 서울창포원이고 그날 비록 꽃창포는 많이 보지 못했어도 여기서 바라보던 도봉산의 봉우리들이 참 아름다웠던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오늘 지하철의 열차 안에서는 등산복 차림의 승객들이 꽤 많이 보인다. 도봉산과 수락산으로  등산 가려는 듯 배낭이 크고 무거워 보인다.


1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도봉산역에 도착하니 한 무리는 도봉산 쪽으로, 한 무리는 창포원 혹은 수락산 쪽으로 갈라진다.

우리는 열명이 모여 바로 출구 바로 앞에 보이는 창포원으로 들어간다.

창포원은 예전보다 훨씬 풍성해졌다. 주변의 소나무숲이 더욱 울창해졌고 자주색과 흰색의 꽃창포도 눈에 많이 뜨인다. 꽃창포는 예전에 음력 5월 5일 단옷날이면 물에 삶아 그  물로 머리를 감았다는 창포와는 다른 식물이고 또 붓꽃과도  구별된다고 한다. 붓꽃이나 꽃창포 외에 길옆에는 요즘 공원마다 유행인 수국도 많이 피어 있다.

소나무숲길을 한 바퀴 돌고 그 그늘에 앉아 여유롭게 창포원을 감상하고 싶지만 오늘이 휴일인지라 도봉구와 의정부 주변 시민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모두 다 나와 앉았는지 앉을자리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창포원의 감상시간을 예정보다 줄이고 서울둘레길 1 코스 수락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창포원을 나와서 서울둘레길을 가리키는 주홍색 리본을 따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수락산이 보이고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상도교를 만나는데 이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다리를 건너니 수락산 입구에 수락리버시티공원이라고  보인다. 어느 강을 가리켜 ‘리버’라고 했나?  중랑천을 말하는 건가? 공원 안내도에 보니 실개천도 있고 생태연못도 있으나 갈대와 덤불숲으로 우거져서 개울이나 물은 보이지 않는다. 요즘 날씨가 가물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조금 걷다 보니 옥수당공원이라는 팻말도 보이는데 원래 이곳 이름이었나?  의견들이 분분하다.


수락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둘레길에는 의외로 걷는 사람이 적다. 오늘 낮  최고기온이 30도가 넘을 거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둘레길이 한적하다. 가끔 어린 아들과 함께 가는 젊은 아빠나 커플, 아니면 할아버지랑 배드민턴 치는 손자가 보일 뿐이다. 볕이 뜨겁기는 해도 공원을 통과하는 둘레길에는 그늘이 많아서 걷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도중에 정자가 하나 있어서 좀 쉬어갈까 했으나 웬 사람이 혼자서 정자를 다 차지하고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중간중간에 휴게광장이 있어 잠깐 앉을 수는 있으나 그리 운치 있는 곳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이 길에 벤치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오늘은 원래 9년 전에도 걸어 본 적이 있는 수락산 벽운계곡 쪽으로 가서 거기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수락산역으로 내려가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둘레길을 계속 가려니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비탈길이 자주 나타난다. 내리막 비탈길에는 바위와 모래가 많아 자칫하면 미끄러지기 쉽다. 게다가 평소에 등산용 스틱을 갖고 다니던 친구가 오늘은 스틱을 안 갖고 왔다면서 어려워한다. 예전에는 이 길을 어렵지 않게 통과했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전과 같지 않아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본격적인 수락산등산로 입구라고  생각되는 계곡에서 개울을 건너지 않고 아쉽게 되돌아 선다.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면서 점심 먹을 수 있는 자리를 찾기로 한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정자에는 이미 자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틀렸고,  몇 분 전 지나던 길에 보았던 배드민턴장 옆에 벤치가 있다. 식탁은 없지만 벤치가 디귿자로 놓여 있어 열명이 앉을 수는 있다. 마침 조금 전까지 배드민턴을 치던 할아버지(아빠인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란다)와 손자가 배드민턴을 막 끝내고 가려는 자세로 벤치 앞에서 짐을 챙기고 있다. 운동을 막 끝내고 땀을 닦는 건강한 소년이 기특하고 귀엽게 보인다.

우리는 손자와 할아버지가 떠난 자리에서 바닥에 깔개를 깔고 가져온 음식을 늘어놓고 둘러앉아 점심을  시작한다.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호젓하고 조용하여 우리들 세상이다. 검은 호랑나비? 한 마리만 우리 옆을 맴돌며 기웃거린다.

그동안 몇 주일은 온화한 날씨여서 도시락  싸가지고 야외 피크닉을 즐겼으나 이제 날씨가 더 더워지면 피크닉을 계속하지 못할 것 같다.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뜨거운 햇볕 아래서 두세 시간 짊어지고 다니면 상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점심도 일찍 끝냈으니 창포원으로 가서 그곳을 좀 더 둘러보기로 한다. 오던 길을 되돌아 창포원으로 가니 오전 보다 사람이 더 많아졌다. 창포원의 북쪽 의정부 방향으로 평화문화진지라는 건물이 가로막고 있다. 예전의 대전차방호시설이었던 군사시설을 재활용하여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여러 창작 공간과 책방이 일자로 나란히 서 있는 건물 앞에는 동서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의 일부분도 서 있다. 독일 통일 후 해체된 것을 선물 받았다고 한다.


창포원 안내소 2층에는 전망 좋은 북카페가 있어 예전에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혹시? 하고 올라가서 기웃거려  보았으나 역시! 만석이어서 비비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서 헤어지기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할 수 없이 뒤풀이는 포기한 채 섭섭한 마음으로 도봉산역을 향한다.


오늘도 만천보 걸었다.


2024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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