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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l 07. 2024

매일 한 줄 쓰기 2주 차

#5일차

나 스스로 나에게 루틴 거부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물 흐르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서였다.

내가 온전히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루틴에 묶여 살았던 마지막 시간인 대학 시절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취업의 경험과 조직 경험이 있었지만, 결론은 '끝나니 너무 좋다!'였다.

그렇게 20년쯤 살았던 내 삶에 루틴이 중요한 존재들이 등장했다.

바로 고냥님들... 그래서 나는 나의 선택-고냥님들과 함께 살기로 한-에 책임지기 위해 루틴을 '해야만' 했다. '해야만 하는 것'은 늘 힘들다. 특히 내 성향이 그런 듯하다.

그래서 주로 나의 파트너-루틴 대장-가 중요한 루틴들을 소화했다.

그러다 최근 파트너가 먼저 갱년기를 겪게 되었다. 그러면서 혼자 소화하던 '돌봄 루틴'이 버거워졌고, 나는 파트너를 지원하고 싶은 마음에 그가 하던 몇 가지 루틴을 맡기로 했다. 아침 7시 밥 챙겨주기, 물그릇 소독하고 물갈기, 보름이 그릇 설거지하기, 애기들 화장실-대형 화장실 4개-청소하기, 카펫 청소-진공청소기로-하기였다. 겨우 다섯 가지인데(나머지는 파트너가 거의 다 한다... 미안합니다 ㅠㅠ) 나에게는 너무 힘들었다. 되도록 시간을 지켜야 했고(왜냐하면 고냥님들은 시간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나와는 다르다.), 파트너가 요구하는 프로세스를 지켜야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넷째인 보름이에게 구내염이 있으므로 공용으로 쓰는 물그릇을 철저하게 소독하기를 원했다. (구내염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 안심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물그릇과 관련된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1) 세제를 수세미에 묻혀 세 개의 물그릇을 닦고 헹군다.

2) 정수기에서 나오는 소독수를 그릇마다 가득 담고 10분 이상 놔둔다.

3) 소독수를 버리고 따뜻한 수돗물로 헹군다.

4) 정수기에서 나오는 85도의 뜨거운 물로 물그릇을 소독-이라고 쓰고 헹굼이라고 읽어야 한다-한다.

5) 물그릇 거치대가 철 재질이거나 합판 재질인 두 개의 그릇은 마른 수건으로 바깥쪽을 닦고-나머지 하나는 겉이 젖어 있어도 괜찮다- 시원한 수돗물을 담는다.

6) 정해진 자리에 물그릇을 놔둔다.


아이고야... 루틴 거부자에게 너무나 어려운 이 루틴이 이제는 좀 익숙해진 것 같다. (아침 7시 밥 먹이기는 아주 수월하다. ㅎ) 나 자신에게 감사하고, 칭찬한다.


#일단쓴다

#아이고야


#6일차

#인셀테러

대체 왜 n번방과 같은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지 이해하게 된다.

끔찍한 신념으로 인한 실천이다.


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


#일단쓴다


#7일차


유니클로에서 오랜만에 작업복(=나를 위해서는 강의 갈 때 입을 옷 겸 애인의 출근복)을 샀다.

자동화된 계산 시스템으로 옷이 담긴 바구니를 척하고 스캔대에 올리기만 하면 수량과 금액을 짜잔 하고 화면에 보여준다.

고른 옷을 보니… 다 검은색.

왜 두 사람 다 검은색을 사랑하는가!

옷걸이에 걸린 검은색 옷들을 보며 총천연색의 생동감에 대해 생각한다.

음…


#일단쓴다

#샤이유니클로


#8일차

스마트폰 어플로 하는 챌린지와 미션의 딜레마가 있다.


중독성향이 강한 나는 우울감이 있을 때 쇼츠와 릴스로 도망간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더 우울해지고…

이런 상황을 바꿔보고자 종종, 아니 자주 어플을 지우지만 홍보나 뭐 그런 이유로 다시 깔기 일쑤다.


아 딜레마가 뭐냐면, 스마트폰 의존에서 벗어나려 애쓰는데, 루틴 만들기를 스마트폰에 의지하다 보니 자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거다.


게다가 카톡이 없던 폰에 공동체를 잘 돌봐야 하는 이유로 카톡을 까니 더 산만해지고 있다.


이걸 해결하고 싶은데,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떠오르는 것은, 주로 쓰는 스마트폰, 서브폰, 아이패드, 맥피씨와 맥북에 어플을 나눠 깔고 관리하는 거다. 각 어플에 접속하는 시간도 정해놓고 말이다. 이렇게 하면 될까?


일단 해보자.


#일단쓴다

#스마트폰의존자

#까딱하면골로간다

#중독탈출


#9일차


루틴 거부자 혹은 부적응자인 나에게도 꼭 지키고 싶고 지켜온 루틴이 있다.

매주 일요일 외할머니 댁에 가 함께 점심(할아버지가 생존해 계셨을 때는 저녁)을 먹고 오는 것이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루였는데, 작년 11월 만 99세를 넘기신 이후 부쩍 기운이 없어지셨고 최근에는 자꾸 눈이 감기고 졸리다시며 '황천'갈(독실한 개신교도이신 할머니께서 이런 표현을) 때가 되었나 보다 신다.


할머니의 천국행은 차근차근 준비되고(할머니 마음속에서) 있는 것 같은데, 그 준비과정은 주로 꿈을 통해 공유된다. 할머니 영갑씨의 천국 여정 꿈 시리즈는 언젠가 글로 써보고 싶다.


너무나 사랑하는 내 엄마 같은 할머니가 떠나실 날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 오늘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할머니, 나는 할머니가 너무 좋은데 하늘나라 가시면 보고 싶어서 어떡하죠? 전화해주실래요?"

"그래 내가 전화할게."


쉰 하나의 손녀와 아흔아홉 할머니의 대화다. 전화할게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얼마나 먹먹하던지… 가시는 그날까지 원 없이 만나야지.


#일단쓴다

#증손자냥님4닝겐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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