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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Sep 10. 2021

[MMM_#01] 내 인생의 빌런

영화 <포레스트 검프>



1.

 그는 태어나자마자 골수염을 앓았다고 했다. 우렁찬 울음으로 자신의 등장을 세상에 알린 아기가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가게 된 곳은 다름아닌 '수술실'이었다. 영화로 치면 시작부터 주인공이 회심의 공격을 받으며 죽음의 위기에 몰리는 그런 급박한 전개에 비유할 수 있을까. 골수염이라는 그의 인생 첫 빌런은 오른쪽 어깨에 '화농성 관절염'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후유증을 남긴 채 뒤안길로 사라졌다. 발단, 전개 없이 바로 위기로 가는 초유의 이야기라 생각했던 그였지만, 아마 그도 몰랐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겪게 된 그 사건이 여느 이야기들과 다를 바 없는, 조금은 요란한 '발단'이었음을.


2.       

 후유증은 그의 오른쪽 어깨의 성장판에 남았다고 했다. 태어난지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며 몸은 무럭무럭 자랐지만 그의 오른 어깨는 태어날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왼팔과 오른팔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5~6살이 지나자 그 차이는 누구도 인지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뚜렷해졌다. 학교에 입학한 그는 급우들의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짝팔', '외팔이'와 같은 말들이 어느덧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두 번의 수술 끝에 팔 길이를 늘이기 위해 오른어깨에 기계를 달았을 때는 '인조인간', '터미네이터'와 같은 별명도 따라붙었다. 어느 순간 그는 이 모든 순간이 억울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펼쳐진 이 감당못할 상황에 자신의 잘못이라 할 만한 그 무엇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억울함은 결국 이유 모를 자기 비하와 분노로 번졌다. 그리고 그는 목적 달성에 실패한 줄 알았던 인생 첫 빌런이 보란듯이 자기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3.

 그러던 13살의 어느 날, 그는 주말의 명화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히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게 되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 영화는 말 그대로 그의 인생이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게 영화 속 포레스트는 지금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완벽한 '메타포'였다. 포레스트는 다리가 불편했고, 정신적으로도 어수룩하고, 미숙했다. 하지만 포레스트는 주변 인물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든 그것을 전혀 신경쓰쓰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이 정한 목표에 집중했고, 그것만 바라보며 살아갔다. 그 과정에서 포레스트는 경주마처럼 오직 목표 달성만을 위해 수단(段)의 정의로움을 잊는 그런 맹목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우호적적이든, 적대적이든 관계없이 주변의 사람들을 한결같이 친절하게 대했다. 겨우 열 세살인 그가 영화가 전하려는 메세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세 가지만은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 그를 사로잡고 있는 이른바 자신보다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거기서 파생하는 '자기 비하'와 같은 감정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떤 적대적인, 분노에 휩싸인 감정 없이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따르는 삶이 얼마나 거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그리고 포레스트의 엄마, 제니, 버바처럼 그에게도 그를 사랑하고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4.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정의한 그에게 태어나자마자 시련을 안긴 첫 빌런은, 이제 더 이상 빌런이 아니었다. 사람은 결국 위기 속에서, 그것을 헤쳐나가면서 성장할 수 있음을 그 빌런은 그에게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도와준 사람들과, 쓰러지려 할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 세상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도. 그의 영원한 적은 오히려 그의 인생이 옳은 방향으로, 더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를 잡아주는, 한 명의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는 영화 한 편을 통해 세상에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듯이 한없이 악해보이던 것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달리 보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5.
 그는 매사에 충실하며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권의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삶을 살아갈 중요한 교훈을 얻은 그는, 자신이 느낀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했고, 그래서 이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탓이 아닌 선천적인 무언가에 의해 분노해 보고, 절망해 본 사람에게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새로운 무언가를 안겨 줄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p.s

 가장 좋았던 장면을 묻는 질문에 그는, 포레스트를 괴롭히러 오는 불량배들을 보고는 "Run, Forrest!"라고 소리치는 제니의 말에 뒤뚱뒤뚱대며 걷는 것 보다도 느린 뜀박질을 하는 장면을 이야기했다. 어느덧 그의 다리를 감싸고 있던 보조 장치들이 떨어져 나가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길을 질주해 나가는 포레스트를 보며, 묘한 희열과 삶의 활력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역시 사람은, 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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