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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ngebluegray Oct 16. 2020

ESFJ(사교적인 외교관)도 외롭다

무기력의 시작

 올해 초, 나는 심리상담센터와 정신의학과를 동시에 찾아갔다. 주변 사람들을 만나서도 웃으면서 대화하기가 힘들고, 무언갈 털어놓고 집에 돌아와도 감정은 다시 넘쳐 흐르고, 몸도 점점 무기력해져 갔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셨고, 상담 선생님께서는 그 우울증이 내가 외롭기 때문에 온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한 번도 외롭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나의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인싸'라고 한다. 맞벌이로 바쁘지만 유쾌하신 부모님, 자주 싸우지만 시끌벅적한 언니와 막둥이 남동생까지 가족이 다섯이나 되고,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생활해 특이하고 재미있는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도 많고, 한국으로 대학진학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수많은 지인들까지 내 주변에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만 보아도 나는 늘 혼자가 아니었고, 혼자 여행을 가서도 의도치 않게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희귀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최근까지도 유행하고 있는 온라인 MBTI 검사에서조차 나는 '사교적인 외교관' 타입이라는 ESFJ로 나왔다(영어 버전으로 시도해도 똑같이 나온다).


 우울증 약물 치료와 상담 세션을 진행해가면서 흔하게 보이던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나는 화목한 다섯가족 중 독립성이 있는 둘째, 외국에서 자라 활발하고 여유롭고, 늘 누군가와의 약속이 있고, 혼자서든 여럿이든 여행도 잘 다니는 그런 사람이다. 어떤 자리에서도 늘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주도해 나가고, 고민거리가 있어 연락을 하면 감정적인 공감부터 현실적인 해결책까지 제시해주는 명쾌한 사람. 


 그런데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나를 가까이서 봐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의 29년 인생을 들여다 보면, 부모님은 늘 바빠 나의 학교 행사나 담임선생님 면담 한 번을 오기가 힘들었고, 아프면 병원도 혼자 다녀왔다. 언니와는 한국에 와서까지도 늘 성격차이로 싸웠고, 일년 동안 말 한마디 섞지 않고 한 집에서 산 적도 있었다. 나는 아들을 가지기 위해 낳은 둘째라는 사실 때문인지, 남동생은 늘 귀찮으면서도 부러운 존재였다. 친구들은 만나면서도 항상 나에게 금전적인 지출이든, 고민상담이든, 소개팅 주선이든 등등의 목적성이 많았고, 회사에서는 싫은내색 없이 일하는 나에게 작정하고 일을 시켰다. 


 '외로운 인생을 살아왔네요, 늘 외로웠어요'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나는 기질적으로 예민한 성격을 타고났고, 사회적 민감도가 높기 때문에 나보다는 타인을 더 신경쓰고 나의 욕구를 무시하면서(잘 모르기도 했다)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왔다고 한다. 가족 내에서, 친구관계 안에서 늘 나의 자리를 찾느라 늘 나 자신을 우선순위에서 제쳐두었고, 그렇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을 흘려 보냈다. 늘 알아서 자기 살 길을 찾아가는 둘째로,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와 줄 수 있는 친구로, 시키면 뭐든 다 하는 직원으로 사는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지쳤던 것 같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만 하고, 왜 누구도 내가 상대방을 대하는 것처럼 나를 대해주지 않았는지 싶은 생각만 들었다. 왜 아무도 어떤 순간에서건 내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는지 머리가 복잡할 뿐이었다. 이런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읽으셨는지, 상담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원망하세요, 착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니까 최대한 원망하세요'. 


 늘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일하는 부모님을, 첫째로서 가족과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아온 언니를,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바르게 따라온 동생을,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나를 찾아주는 친구들을, 과연 원망해도 되는걸까. 왜 잘 살다가 하필 지금, 새로운 미래를 세우기엔 어찌보면 늦었다고 할 수도 있는 이 때 나에게 우울증이 찾아온 걸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리를 찾고 나아가고 있는 지금, 왜 나는 이렇게 무기력해지게 된 걸까. 


독일에 있는 친구가 보내준 글귀, 지금은 책이 절판되었다...!!


 늘 눈치가 빠르고 타인의 감정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최근 심리학 기초 전공책을 읽고 있다. 그 중 한 부분에서, 사람들은 늘 자기만의 방어기제로 세상과 치열하게 싸워오다가 그것을 견딜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한다고 한다. 가족을 떠나 한국에서 홀로 살아온 10년, 혹은 이미 그 전부터 나는 나만의 방어기제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최근 1-2년 사이, 나의 기질대로 혹은 내가 가진 삶의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을 함께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의 자유의지처럼 보였지만 혼자 내려왔던 결정, 활발해보였지만 타인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과하게 소비했던 에너지들. 늘 외롭게 살았지만 외로운지 조차 몰랐던 내가 무너지게 된 지점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잘 캐치해 낸다. 지금 어떤 일이 힘들고, 무슨 생각으로 괴롭고, 뭘 먹고 싶고 어딜 가고 싶은지 먼저 알아차리고 그렇게 하자고 제안한다.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읽어준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타인에게 그런 것이 늘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외롭다.


 스스로도 인정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나는 외롭다. 가족들은 내가 흰 우유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나도 가끔은 입을 다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만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친구들은 모른다. 시간이 남아 돌기 때문에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챙기느라 내 시간과 에너지를 마이너스로 땡겨 쓴다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인싸인 척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보면 나는 외롭게 남겨질 것이 두려워 항상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러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오고 있다. 최근에야 시간이 나서 연락했다는 사람,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소개팅이 급한 사람, 회사 팀장님이 너무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람 등등. 그리고 외롭고 우울한 지금도 나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답장을 해 준다. 외롭지만 지금 외로운 나를 챙기다가 더 외로워질까봐. 


 그래도 나는 연습하고 있다. 귀찮은 연락을 대충 마무리 하는 연습, 약속을 취소하는 연습, 카톡 답장을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연습,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연습을. 지금보다 더 외로워져도 어쩔 수 없겠지만, 나라도 나의 마음을 읽어줘야 할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주변 사람이 MBTI가 ESFJ라면, 그 사람의 외향적인 모습과 활발한 성격만 기억하지 말고 그 이면엔 외로움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사람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크게 과학적이지도 않고, MBTI와 우울증에도 큰 연관성은 없지만, 겉으로 활발하고 다른 사람들을 잘 챙긴다고 해서 온전히 100% 이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ESFJ는 '사교적인 외교관'이지, '사교적인 자선사업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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