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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ngebluegray Oct 18. 2020

사람의 마음이 같은게 더 신기한 거야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다. 29살의 남녀 음악인들이 겪고 있는 꿈과 사랑, 상처에 대한 이야기. 회차가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상황은 왜 저렇게 꼬여만 가고 왜 그냥 각자의 입장을 속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인지, 저것이 음악인들이 가진 감성인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정이든 연애든, '이래이래 해서 저래저래 된 것이다'는 말은 아껴야 돈이 되는 것인지. 


 그러다 갑자기, 세 달 전 쯤 소개팅으로 만나 나의 온 마음과 머리를 복잡하게 흔들어 놓았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첫 소개팅으로 만났던 친구와 두 번 째 만남에서, 나는 갑작스러운 거절 통보를 받았다. 첫 만남에서 8시간을 얘기하고, 헤어진지 6시간 만에 다시 연락을 이어가고, 저녁에도 전화통화를 하고, 그 다음날 만나서 밥도 잘 먹고 맥주를 마시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이어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있잖아, 안 될 것 같아 이거."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아직 서로 사귀자는 말도 안했는데 이 친구는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걸까. 뭐가 안 된다는 걸까? 만난 지 고작 4일 째였지만, 그 친구와 나는 거의 사귀고 있는 것과 다름 없었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고, 이제 누구든 다음 약속을 정하거나 빠르다면 더 만나보자고 얘기해도 될 밤 10시 30분이었다. 


"뭐가 안 될 것 같은데?"


 같은 직종에서 일을 해서 서로의 업무적 고충이 무엇인지도 알고, 직장도 집도 가까워서 자주 만날 수 있고, 취미도 비슷하고, 외모와 같이 부수적인 것들도 서로가 마음에 든다는 점은 그간의 대화를 통해 거의 확인이 다 된 줄 알았고, 그냥 좋은 이 기분 그대로 각자 집에 가면 되는 시간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봤는데, 너랑 나는 끝이 보여서."


 그 동안 나와 연락을 해보고,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봤는데, (도대체 어떤 점 때문이었는지 그 때 당시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이 만남에 끝이 보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만날 수 없겠다고 했다. 내가 이 친구의 장점만 보고 긍정적인 단계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이 친구는 나와 본인의 단점의 합, 지난 연애로 겪었던 부정적인 기억들을 되짚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지 아닌지 조차 확인하기도 짧은 단 4일 동안에.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급브레이크라니? 나는 왜인지, 나를 그냥 좋아할 수는 없는지, 그냥 만나보면 안되는지 한참을 붙잡고 이야기해봤지만 그의 입장은 너무나도 확고했다. 자정이 넘어 문이 닫힌 가게 문 앞에서, 비가 내려 어디도 갈 수 없었던 가게의 처마 밑에서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걸 두 시간의 설득 끝에 깨달았다. 그러고 비가 그칠 때 까지 불이 꺼진 가게 앞에서, 그 친구의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를 들으며 이런 말을 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거, 신기하다."

"사람 마음이 같을 수 있다는 게 더 신기한거지."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이 친구가 가진 좋은 점들만 보려고 했고, 나와 다른 점도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내가 맞춰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같은 감정이기만 하다면, 다른 것들은 마음만 먹으면 다 맞춰갈 수 있을 거라고. 그 4일 째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마음' 이라는 건 감정 이외에도 너무 많은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마음'이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했을 뿐, 그 안에는 서로가 가진 현실적인 조건, 이전의 만남으로 학습된 안 좋은 기억들,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들, 등등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좋은 건 맞지만, 그 감정 외에 다른 것들까지 제쳐두고서까지 나를 만날 '마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더 이상의 감정의 속도가 진행되어서 서로의 모든 걸 다 알게 된 후에 올 끝이 두려워 마음의 문을 그냥 닫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드라마는 역시 드라마다. 엇갈리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본인의 마음과 상황을 설명할 기회가 생기게 되고, 우연의 시간이 생긴다. 나와 그 친구는 현실이다. 나의, 혹은 본인의 어떤 점이나 상황 때문에 만남을 계속 이어나갈 수 없는지 설명할 기회나 그럴 '마음' 조차 없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점점 그 감정이 옅어지도록 기다릴 수 밖에 없는 현실. 나와 그 친구를 비롯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다른 마음임을 확인하고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마음의 사람을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무수한 희망이 만들어 낸 드라마. 그걸 보고 지난 상처를 되새기기도 하고 이해하고, 그러다 나와 맞는 마음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성장 과정. 그런게 그냥 사람과 인간관계에 대해 배워 나가는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왜 내 마음과 다르지' 라고 상처받을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의 마음(결국 그 사람 인생의 데이터로 쌓인 그 마음)은 나와 다르다'고 받아 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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