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힘들고 아프고 괴로운 거, 얘기하면 안되는 줄 알았어
엄마에 대한 두 번 째 이야기.
30년을 넘게 워킹맘으로 살아온 엄마에게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힘들고 아파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꾹 참고 견뎌왔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아프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어디가 아픈데? 병원에 전화해 놓을테니 다녀와' 라는 말이 전부였고, 회사를 다니면서 매일 눈물이 날 만큼 힘들 때도 '더 힘든 사람도 많아, 세상에 힘든 일은 더 많아' 라고 해서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엄마가 그런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나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려는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 부터 어지간한 일들은 알아서 해결했던 습관 때문에, 타인에게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컸다. 그래서 너무 외로워졌고, 그렇게 살았을 엄마를 생각하니 미안했다. 그래서인지 스트레스 받고 힘든 '가벼운 일'들은 사람들에게 얘기하지만, 정말 지금 내가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건 말을 하지 못하는 버릇이 들었다. 정말이지, 인턴시절에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스트레스성 위염이 와 새벽에 응급실을 다녀와서도 아침 9시에 나가 해맑게 앉아 있었다. 우울증으로 약물치료를 막 시작해서도 대학교 과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나의 외로움은 너무 오래, 너무 크게 쌓여 왔다.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시작조차 모를 만큼 깊은 외로움이 있다는 걸 발견해버렸다. 나보다 아프고 힘든 사람은 더 많다는 말은 '그럼 내가 죽으면 그 때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 되나?' 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돈을 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 선생님을 찾았다. 상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잔잔하게, 자주 생채기를 내요. 그런데 xx씨는 죽기 직전까지 참았다가 확, 터뜨려요.'
나는 잔잔하게, 자주 생채기 내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배우지 못해서, 누가 나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내가 싫은 일이 있어도 그렇다고 말하지를 못했다. 어떤 친구를 계속해서 참아주다가 손절하거나, 잘 다니던 회사를 (회사가 보기에 갑작스럽지만) 확고한 마음으로 그만둔다거나. 엄마에게 늘 상처 받아왔으면서도 그때그때 털어놓지 못하고 한 번에 확 터뜨려서, 가족들은 나를 늘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그런데 엄마가 한국에 와서 자가격리 후 일주일을 함께 살아보니, 엄마는 내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자주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 형제자매들이 많아 하루에도 몇 시간을 이모들과 통화하며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아프고, 어딜 가고 뭐가 걱정이고 등등을 이야기했다. 형부에게도, 어쩌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엄마의 친구분에게도. 엄마가 바쁜 인생을 살긴 했지만, 늘 엄마는 집에 가면 기다리는 자식들이 있거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엄마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은 많다며, 엄마. 그렇게 내 입을 틀어 막았잖아.
선생님은 지금부터라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싫은 건 바로 얘기하기, 하고 싶지 않은 건 당장 멈춤, 등으로 지금 나의 목소리를 내가 먼저 들어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엄마에게든 누구에게든, 잔잔하게 자주 생채기를 내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왔고, 나는 이제부터라도 배우면 된다고. 쉽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한 번에 확 폭발하는 것보다는 덜 이상해 보일 거라고 하셨다.
엄마, 나는 지금부터 엄마에게 상처를 줄 지도 몰라. 엄마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기에 나는 엄마가 되어보지 않았고, 내가 나아지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