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쓰는 것만 취미가 아니잖아, 넌 왜 머리를 안 쓰니?
나는 꽤 최근까지 별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로부터 '취미가 뭐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딱히 '이거에요!'라고 말할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가령 골프라거나, 테니스라거나. 예전에는 면접을 보거나, 소개팅을 할 때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왜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는데, 최근에는 '내가 이걸 하고, 이걸 좋아한다'라고 표현하기 쉬운, 그 사람을 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질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꾸준히 헬스장을 가긴 하지만 너무 누구나 다 하는 평범한 것이고, 여행이라고 말하기엔 '원래 여행을 다니는데~요즘 코로나 때문에~'라는 구구절절한 말도 싫고, 넷플릭스를 본다고 하는건 너무 한가해보이고, 책을 읽는다고 하기엔 무언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의 이미지는 무언갈 보고 읽으면서 느끼는 것을 이렇게 글로 쓰는 사람의 이미지는 아니고, 무엇보다 나는 늘 '취미 = 그만한 실력과 지식'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어떤 장르인지, 무슨 책을 추천하는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등등에 대한 질문이 돌아오지 않을까 늘 망설였다.
상담 선생님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조차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다고 했고, MBTI마저 사교적인 외교관 타입(ESFJ)인 나는 그에 걸맞는 취미를 내보여야 할 것 같았다. 실제로 '책 읽는 걸 좋아한다' 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는데, 기대 이하라는 반응을 몇 번 본 적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상대방이 뭘 읽는 습관이 없어서 일수도 있었는데, 흠.)
어찌됐든 나는, 바깥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고 돌아오는 편이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면 고요와 정적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사교적인 외교관도 집에 가서는 쉬어야 다음날 또 사교적일 수 있으니까. 약속이 없는 날에는 책을 들고 카페에 가서 읽고, 함께 들고간 노트에 꽂히는 문구를 내려적는다. 밤에도 유튜브보다는 넷플릭스로 영화나 미드를 보고, 한 시즌이나 러닝타임이 끝나면 꼭 그에 대한 나만의 해석이나 감정을 어디에든 정리해서 남겨둔다. 남에게 보여주거나 자랑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10년 이상 꾸준하게 해 온 것들이기 때문에 '취미'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이게 아닐까? 막 골프나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 보다는, 러닝을 뛴 지 한달이 된 사람 보다는 내 쪽이 더 취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는 누군가가 나에게 취미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책을 읽고 가끔 글도 써요' 라고 이야기 하려고 한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 라고 하면 '그때 그때 다른데 지금은 누구라는 작가에요'라고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겠지만, '아~'라는 반응을 보이면 '책 잘 안읽으세요?' 라고 질문할 것이다.
몸을 써야만 취미가 아니에요, 그 쪽도 생각하고 사유 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라는 의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