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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라이어티삶 May 15. 2023

다른 사람에게 말 한마디로 마음평화를 사는 법

누구나 자기가 제일 힘들다

군대 이야기 하면 꼰대 소리 들을 수 있지만, 갑자기 생각난 적절한 에피소드라서 잠깐 말해볼게요. 

군 보직 중에 가장 '꿀보직'이라고 불리는 게 'PX병'이라는 게 있습니다. 군대 매점 격인 PX를 관리하는 보직인데, 보급을 담당하는 중요한 병사죠. 다른 부대는 모르겠는데, 제가 있던 부대에서는 PX병은 아침에 눈 뜨면 바로 PX로 올라갔고 저녁 점호가 끝난 다음에 막사로 내려왔습니다. 저랑 같은 이등병일 때부터 그러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다 그 병사가 '꿀 빤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는 의무병으로 입대했는데, 격오지 부대로 파견 나가면서 '아저씨'가 되어 군생활을 했어요. 소위 '아저씨'면 그 부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군생활이 좀 편할 거라 생각했는데, 1년씩 파견을 가버리니 그 부대원처럼 취급당해서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편하게 보였겠죠. 저는 상당히 타이트했는데 말이죠.


누구나 자기가 제일 힘들어요.

다른 사람들이 땡볕에서 작업하고, 끝없이 내리는 눈 치우면서 하늘에 욕을 해대고 있을 때, 시원하고 따뜻한 PX에서 TV 보면서 군생활하는 PX병도 '힘들어 ㄷㅈ겠다'라고 투덜거렸어요. 파견 나간 아저씨로 빡센 갈굼을 많이 당하지 않은 '의무병'도 '군생활 힘들다'며 입에 욕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보직 병사들을 보면서, '꿀빠네~'라는 말을 종종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들이 각자 얼마나 힘든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내가 제일 힘든 건, 집에서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초등학생 꼬맹이들이 둘 있어요. 학년이 올라가면서 숙제가 조금씩 많이 생기고 있는데, 어쩌다 밤 11시까지 숙제를 하고 있을 때가 있어요. 곁에 슥- 다가가서, '할거 많네~?' 하면 '힘들어 죽겠어 ㅠ' 합니다.

학생일 때는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하고, 옛날(?) 생각하면 그렇게 힘들 것도 없겠다는 생각에 '힘들긴! 파이팅이야!' 했더니 '아빠는 하나도 안 힘들잖아! 나는 힘들어!' 라네요.


종일 회사에서 여러 프로젝트들 때문에 끙끙거리던 아빠 한데, '아빠는 하나도 안 힘들잖아!' 라니...

네가 안 봐서 몰라...


어떤 일을 좀 급하게 부탁한 적이 있는데 '요새 너무 바빠서, 미리 업무 요청을 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해 줄 수 없다'는 예전 동료분 덕분에 준비하던 일이 드롭된 적이 있었어요. 일이 너무 많아서 야근을 밥 먹듯 한다고 하던데, 제가 야근하는 날에 본모습은 밥을 먹기 위해서 늦게까지 회사에 있던 이상이 아니었죠. 하지만 지나는 길에 '요새 많이 바쁘시죠?' 했더니 역시 '힘들어 죽겠어요ㅠ' 하네요.


제가 못 보는 나름의 힘듦이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다른 사람 보면서, '내가 더 힘들어!'라고 정신 승리 하는 것보다, 쓱 가까이 지나가는 길에 '요새 많이 바쁘죠? 많이 힘들겠어요.' 한마디 전해주면, 상대방은 인정받아서 좋고, 나는 굳이 애쓰지 않고 슥- 넘어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다들 나름 최선으로 애쓰고 있으니까, 서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말, '힘들죠?' 건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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