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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라이어티삶 May 06. 2023

비바람이 몰아치면, 달려나가야 한다

그렇게 흠뻑 젖는 것이 되려 좋더라...

어린이날을 끼고 있는 연휴에 비가 내립니다. 강풍이 동반된다며 아파트에서 준비하던 어린이날 행사도 취소되고 그러네요. 애들 데리고 뭘할까 하다가 극장에 다녀왔습니다. 


요새는 어린이날도 어른이날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저는 이 날이 어른이날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창밖으로 좌우로 뿌려대는 빗줄기를 보고 있다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습니다. 바람막이랑 쫄쫄이 조깅바지랑 물에 젖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오래된 조깅화.


내려가는 엘레베이터에서 주민을 만났습니다. 우산 없이 엘레베이터에 타는 저를 순간 이상하게 쳐다보네요. 밖으로 몇 걸음 달려나가서 무릎과 종아리를 따뜻하게 데우는 스트레칭을 합니다. 원래는 더 꼼꼼하게 늘려줘야 하지만, 까짓거 살살 달리면서 데우지 뭐~ 싶어서 그냥 바로 달려나갑니다. 




비가 워낙 세게 내리는데, 바람까지 불어대서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옷이 다 젖었습니다.

서강대교 위까지 살살 달렸더니 길에는 차도 별로 안 보이네요. 흐린 하늘만큼 한강물도 시커멓게 흘러갑니다. 


몸이 살짝 덥혀졌습니다만, 옷이 비에 다 젖어버려서 이게 땀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모자를 깜빡하고 안 썼더니 젖은 머리칼이 눈을 콕콕 찔러댑니다. 아무도 없는 한강공원을 달리는데 여기저기 물 웅덩이가 생겨있습니다. 

이미 운동화도 다 젖었겠다 그냥 그 위를 첨벙첨벙 달립니다. 

아들이 여름에 물놀이 할 때 이러면 아내가 기겁하는데, 그 짓을 제가 하고 있습니다. 앞뒤에 아무도 없다고 다큰 어른이 비 맞으면서 물웅덩이에서 이러고 있네요.


개운합니다. 이래서 다들 조깅한다고 합니다. 

시원합니다. 저는 이래서 비 맞으면서 물장난하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닙니다. 


어느새 여의도의 뒷쪽이네요. 한강은 '르네상스'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웅장합니다. 여의도 뒷쪽은 서울이 아닌듯하게 숲이 우거져 있습니다. 어떤 길은 바닥에 자갈을 깔아놔서 걸으면 잘그락하는 소리가 참 좋습니다. 




아무도 없을 길에 우산을 쓴 어르신들이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사람이 우산도 안 쓰고 웅덩이도 가로지르면서 달리고 있으니 슬그머니 길을 피해주십니다. 대구에서 뚝방길 산책을 운동삼아 하는 엄마가 생각나서, 이 어르신들의 건강도 잠깐 빌어봅니다. 


한시간을 달리고 집을 향하고 있는데, 아내가 전화 왔습니다. 

집에 언제와?
여기 여의도라서 조금 걸려.
비 내리는데 왜 비 맞고 달리고 있어??


길게 설명해도 이런 기분을 알아줄까 싶어서, 

금방 갈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다시 달려나가볼 생각입니다.

매일 비가 오는 것도 아니니까, 올 때 즐겨야죠. ^^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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