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온 흔적, 홀로 살아갈 길
2001년에 아버지, 2015년에 할아버지에 이어 작년 여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집안 어른을 한명 한명 잃고 어느덧 어머니만 그렇게 남게 되었다. 외조부님은 어렸을 적 돌아가셨으니 어머니에게는 이제 자녀들만 남게 된 것이다. 결혼이 1979년이었고 마지막 집안 어른이 돌아가신 게 2019년이니 정확히 출가 후 40년 만에 세상 앞의 단독자로서 위치하게 된 것이다.
누나 둘에 이어 나도 서울로 진학을 하게 되었고(가까스로 합격), 누나들이 살던 전셋집에 들어갔다. 방배동에 있던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방 세 개에 화장실 하나로 안방은 누나 둘이서, 작은방은 내가, 중간 방은 옷방으로 썼다. 2001년 당시 집주인에게서 매입 제안이 있었지만 복도식 아파트가 싫었던 어머니는 단칼에 거절했고 20년이 지난 지금, 이 아파트는 제안 가격보다 12억이 올랐다. 뭐 어쩌겠나, 우리 가족은 돈에 대해 특히 겁이 많은 편인데 부자는 못될지언정 절대 거지는 안된다는 장점이 있다(그래도 아깝긴 아까워..).
2005년 6월, 입대 이틀 전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는 가족의 큰 행사지만 당시는 입대에 대한 생각 때문에 이사 갈 집에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2년 간 제대로 살지도 못할 곳인데. 부동산에 관심이 좀 있던 어머니는 좋은 목을 찾다가 당시 한창 개발 중인 강서구에 눈을 돌렸고 그렇게 등촌동에 있는 아파트를 사게 되었다. 얼마 안가 큰누나는 시집을 갔고 작은누나와 강아지, 그리고 고향을 오고 가는 어머니 이렇게 셋이 살게 되었다.
취업 준비에 골머리를 썩고 한강물 온도까지 알아보던 시절, 어머니는 전망 좋은 미분양 단지를 알아보다가 같은 강서구에 자리잡는게 좋다고 생각했고 가양동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아쉽게도 서울 시세가 그렇게 크게 오르지 않던 시절이라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가양동으로 이사했다. 역시 이사는 가족의 큰 행사지만 당시는 상반기 취업에 실패하고 하반기까지 지나고 있던 10월, 그렇게 새 집에 대한 별 관심 없이 스트레스만 안고 가양동으로 갔다. 작은누나(집에 잘 안 들어옴), 강아지(늙음), 어머니(여전히 고향을 오가는) 이렇게 셋이서.
당시 가양동은 그렇게 핫한 동네는 아니었고, 심지어 사고 나서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3천까지 떨어져 아이고 그럼 그렇지 이러면서 똥손인 당신을 한탄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 서울, 특히 마곡이 떡상하며 주변 영향에 따른 이득을 보았으니 결국 일은 잘 풀린 셈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2001년에 아버지, 2015년에 할아버지에 이어 작년 여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모시던 시부모님이 없으니 이젠 고향에 별다른 미련도 없는 상황, 거기에 장례 이후의 가족 사정까지 겹쳐 더더욱 고향을 떠나고 싶은 상황이었다. 자 문제는 이제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된 나였다.
항상 내 편이 되어주고, 사랑해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해주시는 어머니는 아들에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 그러나 같이 사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사실 고향을 왔다 갔다 하시는 어머니로 인해 혼자 산다는 자각이 없었던 상황,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지만 떠나는 곳이 또 다른 내 집이라고 생각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구속받은 적은 없지만 좀 더 자유롭고 싶은 상황, 애초에 남자가 30줄이 중반으로 진입하고 있는데 부모님의 챙김을 받으며 사는 것도 껄끄러웠다.
고향 집을 매각해서 돈이 좀 생긴 상황, 처음으로 생각해 본 것은 회사 주변 전세였다. 떠오르는 신도시인 청라에서 전세를 살다 장가라도 가게 되면(만약 그렇다면) 빼서 나올 수 있으니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청라 쪽 아파트 전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형마트도 회사도 가까운 몇몇 아파트를 정하고 난 후 가족들 식사 자리에서 발표했다. 그런데 거기서 가족 중 끝판왕이 다른 의견을 제시했으니......
전셋집 계획을 듣던 큰 매형은 차라리 종잣돈을 가지고 대출을 얹어 집 구매를 권했다. 아직까지 대출은커녕 돈도 꿔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상황, 그러나 일단 매형이 하는 말은 뻘건 게 희다고 해도 따르는 내가 아닌가. 하늘은 아버지를 일찍 데려가셨지만 대신 두 매형을 내리셨다. 그렇게 임장을 시작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