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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캥 Jun 21. 2020

기록하는 삶, 기록했던 삶-2

이것은 군생활 중 있었던 100% 실화입니다.

적성에 맞지 않았던 학과 공부, 그런대로 괜찮았던 대학원 생활, 참으로 난감한 시절이었던 취업 준비, 나의 20대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가득 찬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30대의 시작부터 마치 복수라도 하듯 하루하루를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과거를 그리워할 새도 없이 현재를 즐기며 사는 중이다.


생산성이 없었던 20대 때를 떠올릴 수 있는 건 최근에 사라진 싸이월드 뿐이다. 폐쇄 직전에 사진들을 백업해 놓아서 추억의 소멸은 가까스로 막았지만, 30대에 이르러 정말 삶 같은 삶을 살고 있으니 굳이 돈을 써서 이것들을 보존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동안 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


수양록과 군시절 일기, 수양록은 매일을 기록하기엔 양이 적었기에 여분의 수첩을 마련해서 썼다.


20대 때 그나마 삶을 열심히 기록했던 때는 군대에 있을 때였다. 정치적 지향점과 상관없이 난 군대를 좋아하지 않는다. 2년간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은 하나의 거대한 부조리 그 자체였고, 말년에는 그 부조리에 당당히 합류하여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고, 당할 수 있는 것은 다 당했다. 물론 좋은 사람들과의 일상은 소중했지만 굳이 20대 초에 폐쇄된 집단에 던져져서 살만한 곳은 당연 아니었다. 그래도 기록으로 남겨놓은 여러 사건이 있었는데 지금 봐도 탄복했던 시절의 허탈한 감정이 떠오른다.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과거 기록을 재미있게 보았고 그중 인상적이었던 일만 몇 개 소개하자면, (100% 실화)



곤충도감에서만 보았던 '대벌레'를 실제로 봤다. 그것도 두 마리나! 존내 징그럽다.
후임 ㅇㅇ가 신너를 물인 줄 알고 들이키고 '뜨거워'를 외치며 병원 직행,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 당황해하는 젊은 장교들에 비해 우리의 부사관님들, "난 또 뭔가 했네" "우리 땐 해충 잡는다고 일부러 조금씩 마시고 그랬어", 실제로 ㅇㅇ는 시원하게 설사하고 웃는 얼굴로 복귀했다.

- 실제로 ㅇㅇ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배에 물을 끼얹으며 '뜨거워'를 반복했다. 정말 놀랬다.

오늘 전병력 전파사항 "소장님 생신이니 '생신 축하드립니다'라고 마주칠 때마다 인사드릴 것"

- 참고로 소장의 당시 계급은 소장도 아니고 소령이었다. 지금 보면 말단들끼리 계급 놀이하는 모습에 기가 찰 지경.

낮잠을 자는데 벽에 걸린 선풍기가 부서지면서 머리 옆에 떨어졌다.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먼저 든 생각은, 정통으로 맞았으면 집에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오랜만에 하는 사격훈련, 20발 중 16발 이상을 맞춰야 합격인데 세어보니 14발이었다. 재훈련 위기에서 세는 놈과 라면 한 개로 쇼부를 보고 17발로 조작했다.
산에서 딴 거대한 영지버섯 다섯 개중 세 개를 행보관이 가져갔다. 말이라도 하고 가져가지. 앞으로는 잘 숨겨놔야겠다.
5개월 만에 신병이 왔는데 ㅇㅇ상병의 친동생이다.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놈의 동생이라 미워할 준비를 하고 맞이했는데 성격이 너무 착하다. 그냥 잘 챙겨줘야겠다.
ㅇㅇ소대의 ㅇㅇ이 산에서 딴 영지버섯을 행보관에게 뺏겼다. 내 것은 꼭 지켜야지. 걸리지 말자.
하루 종일 신막사의 침대를 조립했다. 침대가 의외로 낮아 실망스러웠다. 조립하는 내내 옆에서 행보관이 잔소리를 했다. 저렇게 말을 막 하는 사람이 있다니.

- 나중에 보니 회사에서 만난 이사 놈 막말에 비하면 그야말로 사랑의 속삭임 수준이었다.

1. 개 한 마리가 없어졌다. 내 담당 파트에서. 소장, 중대장, 운영과장이 책임을 내게 돌리고 있고 어떤 징계가 내려져도 반항할 길이 없다. 폐쇄된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압박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없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게 어떤 벌이 내려지든 간에 난 절대 인정할 수 없으며, 부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
2. 소대장님이 내게 별일 없을 거라고 했지만, 이틀 동안 네 끼밖에 못 먹었다.
3. 개 실종 3일째, 하루 종일 당시 장소에서 현장검증, 개를 잃어버린 놈은 차분하고 담당 조교인 나는 쩔쩔맸다. 진술서 작성 때문에 하루 종일 시달렸고 억울해할 시간도 없었다. 사람들이 날 볼 때마다 위로의 담배를 건네는 통에 좀 많이 폈다. 그래도 분하고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다행히도 소장님은 사건과 내가 관련이 없다고 결정 내렸다.
4. 느닷없이 징계 결정, 사유는 지시 불이행. 이게 웬 날벼락인가,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눈을 부릅뜨고 따졌다. 병사가 중대장에게 개겼으니 거의 영창감. 다행히 메시지가 전달되었는지 '지시 불이행'이 취소되고 징계위원회에 증인으로 참석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5. 징계위원회 종료, TV에서만 보던 재판정을 실제로 경험하게 될 줄이야.

    - 군생활 최악의 사건이었던 군견 분실 사건, 이때부터 연대책임을 바탕으로 한 조직에 대한 반발심이 생겼다.

당시의 일기 - 최종적으로 개를 분실한 병사는 14일 영창, 담당 조교였던 나는 3일의 휴가 제한으로 마무리되었다.


내일 투스타 방문이라 하루 종일 삽질을 했다. 목에 오른 풀독이 점점 번져 상체 전반까지 자리했다. 군생활 처음으로 외진을 갔다. 바쁜 와중에 애들한텐 좀 미안하지만 며칠 전에 징계까지 받았으니 좀 쉬어도 되겠지. 오후 4시쯤 투스타가 원스타를 대동하고 등장, 그리고 5분 만에 돌아갔다. 단 5분을 위해 부대 전체를 들어내고 털어낸 것이다. 그래도 부대가 좀 깨끗해졌으니 괜찮은 듯.
어제 ㅇㅇ(개 이름)가 투스타 앞에서 똥을 쌌다. 그것도 설사! 장군 앞에서 당당하게 똥을 싸다니. 가끔은 사람보다 낫구나.
창고 철거 작업날, 3시까지 내부 물건을 몽땅 치우기 쉽게 부수라는 지시, 덕분에 마음껏 부수고 던지고 깨뜨렸다. 스트레스가 풀렸다.

 - 실제로 몇 년 후에 스트레스 해소방이라는 곳이 생겼다.

전역하자마자 이걸 열었다면..


견 훈련 중, ㅇㅇ(암)이가 XX(수)에게 당하는 바람에 피임주사를 맞았다. ㅇㅇ이를 끌었던 ㅁㅁ(병사)가 호되게 혼났다.

- 실제로 암수를 가리지 않고 합사를 하니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났다. 야밤에 개줄이 풀린 개가 돌아다니는 일이 있는데 암놈일 경우 그 녀석 하나만, 수놈일 경우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암놈들이 피임주사를 맞는다.

외박 복귀 중 ㅇㅇ병장 등 5명을 만나 소주를 마시고 복귀했다. 근데 나 혼자 얼굴이 빨개서 술 마신 걸 들켰고 중대장에게 호되게 혼냈다. 결국 1주일 근신의 징계를 받았다. 오늘은 그 1일 차, 근데 좀 이상하다. 일주일 동안 아무 훈련도 없이 막사에만 있으라는데... 중대장은 진심으로 이걸 징계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루 종일 잤다.
섯다를 하다 패를 숨긴 게 걸려서 판돈을 모두 뺏겼다.
새로 온 중사와 근무를 서는데 젠장, 말이 너무 많다. 자기는 장기라서 정년이 보장되어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행정반에서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서 연기가 가득 찼다.
딴 부대에 식중독 환자가 발생했는데 엉뚱하게 우리가 오후 내내 식당 청소에 식기장 소독 작업까지 했다. 딴 놈이 체했는데 왜 우리가 고생을 하지.
이런 상황


겨울맞이 연탄 4천장을 날랐다. 바람 때문에 몸의 모든 구멍에 연탄가루가 들어간 것 같다. 연탄이 너무 차가워서 손이 얼었다. 개구리들이 아직 동면하지 않았다면 이미 다 죽었을 것 같은데.
전역이 100일 남은 날, 오후 작업이 하기 싫었다. 군종병에게 교회 키를 빌려서 교회에서 책 보고 잤다. 오 하나님, 병장이 되고 나서야 이런 휴식을 주시는군요.
ㅇㅇ이가 며칠 전에 공사장 인부를 물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 결국 사형 선고, 내일이 안락사라지.. 안됐다.
오후에 작업을 하는데 멀리서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별 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회오리바람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놀라서 애들과 회오리바람 쪽으로 가보니 개집이 날아가 있고, 개 혼자 땅 위에서 당황스러워하며 엎드려 있었다. 개줄이 기적적으로 개를 살린 거지.
화재예방 훈련을 한 날, 중대장이 소화전을 연 김에 다른 장교들 차를 세차하라고 했다. 뭐 차가 불이라고 생각하고 훈련했다. 중대장이 보기보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 같다.
미용실 실습생들이 와서 장병들 머리를 깎았다. 봉사라고는 하지만 그냥 실습하러 온 것 같은데.
분대 막내 가족이 면회를 온다길래 아무것도 사오시지 말고 너 먹을 것만 가져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어째 오해가 있었는지 가족들이 소대 전체분의 고기를 사들고 오셨다. 그러고 보면 나도 막내 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 악마 같은 놈들이라 먹을 거 다 먹으면서도 잘해주진 않았지만 말이다.  
옆 소대 ㅇㅇ병장이 단백질 보충제를 몰래 사서 개집 안에 숨겨놓았는데 그걸 개가 뜯어서 다 먹어버렸다. 거기다 숨길 생각을 한 건 둘째치고 내일부터 근육질이 될 개를 생각하니 재밌어진다. 듣자 하니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는데 개가 무슨 죄가 있다고.
ㅇㅇ가 폭행으로 영창을 갔다. 근데 영창 가는데 타고 갈 차를 ㅁㅁ중사가 자기 여친 데리러 가는데 쓰는 바람에 택시를 타고 영창에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ㅇㅇ이가 영창에서 돌아왔을 때,  영창생활 내내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영창 보급병이 말년휴가 중이라 면도기를 못받았댄다. 칫솔은 있어서 다행이었다.

외박 복귀 길에 보신탕을 먹었다. 옆자리에 매형, 누나, 동생 이렇게 온 것 같은데 동생이 매형에게 돈을 타고 누나가 구박하는 모습이었다. 이건 하늘의 계시야.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 이게 내 인생 자체를 바꿔놓았던 보신탕 사건이다. 나중에 이것에 대해 글을 쓸 생각

무한도전에 김태희가 나왔다. 부대 모든 장병들이 이걸 보지 않았을까.
전깃줄 감는 실타래(?)를 타고 놀다가 거꾸로 떨어져서 왼쪽 종아리를 다쳤다.

- 이때 고관절이 골절되었다는 것을 자그마치 13년 후에 다른 교통사고로 X레이를 찍다가 발견했다.

당시의 일기

    

정신교육의 날, 탈북자 강연에 웬 북한 교도관(?) 출신이 왔는데(여자였고 이뻤다), 북한 귀족 출신이라 그런지 여름에 왔던 민간인 탈북자랑 사고방식이 좀 달랐다. 김일성이 위인이라고 하질 않나, 죄수를 처형하는데 한방에 죽이기 싫어 일부러 무릎을 쐈다고 하질 않나. 당황하던 중대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좀 쉬고 싶었던 토요일, 눈이 너무 많이 왔다. 오전 내내 치우고 한 시간 정도 잤다. 오후에 보니 치운 흔적은 하나도 없이 다시 원상복구가 되어있었다. 결국 저녁에도 치우고 하루에만 눈을 3번 치웠다.
3일간 TV 방송국에서 촬영을 온다기에 옷도 A급으로 입고 면도도 말끔히 했다. 근데 ㅇㅇ(군견)이가 옆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날 습격해서 주머니가 찢어져버렸다. 군생활 중 처음으로 개에 물린 날이 하필 오늘이라니. 몸에서 개 냄새가 안 났기 때문인가.



군대에 대해 딱히 긍정적인 마음은 갖고 있지 않지만 어차피 사람들 사는 세상, 이 밖에도 재밌는 일들과 보람 있었던 일은 분명 있었다. 개인적으로 '군대 다녀와야 사람 된다'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하면서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데, 분명 집단생활 속에서 얻은 게 있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수단이 좀 험해서 그렇지.


전역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고, 예비군은 커녕 민방위도 끝나가는 요즘이지만 그때 그 기억은 분명 생생하게 남아있다. 보통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사회의 쓴 맛을 좀 농축시킨 게 군대인 것 같다. 적어도 회사는 돈을 주니까, 그리고 하루가 끝나면 집에 갈 수 있으니까.

 

군대나 회사나 어차피 희비가 교차하는 곳인 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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