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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캥 Apr 17. 2020

고향을 떠나며-3

군산 출신 서울러의 군산 여행기 #셋째, 그리고 넷째날

여행은 그대에게 적어도  가지의 유익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하나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마지막 하나는 그대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 Bhagwan


스무 살 까지는 내 고향 내가 살던 곳이 최고인 줄 알고 살았다. 서울로 진학 후 처음으로 접한 진짜 대도시의 삶을 경험하고 보니 살았던 고향에 대한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은 내 고향이 어딘지도 몰랐으며(전주도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회과부도를 보는 취미같은 건 없었다. 사실 이게 고향을 미워할 이유는 될 수가 없었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 산 장난감을 놀림받고 부모를 원망하는 치기 어린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서울 사람이 보는 한국지도


하지만 여전히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인구는 오히려 줄고 있고 발전은 더디니 고향에 대한 별다른 애착 없이 지내왔다. 물론 논길을 걸어 등하교하고 근처 공단이 발전하며 번화가가 생기는 걸 보면서, 대한민국의 발전 양식인 농경시대 - 산업화시대 - 정보화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80년대생이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내 고향의 발전은 나름 겉으로는 상전벽해요, 속으로는 괄목상대라고 할 수 있겠다.



셋째 날 오전, 친구들이 내려왔다. 둘 다 수도권 출신으로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군산이 처음이라니 왠지 제대로 안내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꽉 찬 일정으로 준비성을 보여줘야지. 국내든 해외든 여행은 모름지기 쉴 새 없이 꽉꽉 채우는 게 최고다. 휴식같은 건 휴양지에서나 하는 법.


군산 서울소바


30년 전통의 군산 서울소바에 데려갔다. 군산에 있는데 왜 이름이 서울소바인지는 어렸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별로 궁금하진 않다. 간 무와 김, 육수와 다진 파가 따로 나오는데 입맛에 따라 알아서 섞어서 먹는 방식이다. 달큼한 맛이 나는 육수가 매력적이며, 어렸을 때 먹었던 맛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특이하게 사리를 선추가(1000원), 후추가(3000원)로 나누어 팔고 있는데 삶는 시간 조절을 위해 행하는 방식이란다. 3인분에 선추가 하나로 했는데 꽤 배부르게 먹었다. 양이 많다기보단 우리가 양이 적어서겠지.

 

경암동 철길마을, 학창 시절엔 진짜 기차가 지나갔었다.


고등학교 때, 자전거를 타고 이마트에 종종 갔었다. 이마트에 가는 길에는 늘 경암동 철길마을 근처를 자전거를 타고 지났었다. 집 앞에 기차가 바로 지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런 걸 보면서도 신기하거나 운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긴 시간이 지난 후 이곳이 관광 명소가 되었을 때, 아 다른 사람이 보면 신기할 만도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 일식 히로쓰 가옥, 그리고 수많은 짬뽕집들과 이성당 등, 정작 토박이들에게는 별다를 것 없는 장소일 뿐인데.


지금은 너무나도 많이 자리 잡은 복고풍 컨셉의 상점 때문에 오히려 당시의 분위기를 잃어버렸다. 예전의 모습이 그저 소시민이 거주하는 일반 가정집 앞에 덤덤히 놓인 기찻길을 보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웬 70년대 교복과 교련복 체험, 달고나 만들기 등 말죽거리 잔혹사 시대를 배경으로 한 억지 관광지로 조성해 놓은 느낌이다. 삶의 애환이 담긴 그런 곳이 아닌, 익살스러운 분위기로 변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할 건 했다지, 재밌었다. 내 껀 사람이 먹을 물건이 아니었지만.


  


Cafe 196에서 휴식, 바다 근처 근대역사박물관 쪽에 있다.


커피를 취미로 해서 유난히 눈에 띈 건지, 군산에 엄청나게 많은 카페가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니라 각자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카페들이다. 강릉처럼 카페 도시로 관광을 유치할 작정인지 곳곳에 커피스쿨이 있으며, 한 길 건너 너무나도 많은 카페가 있었다. 분위기가 큰 역할을 하는 게 카페이지만 결국엔 원두의 질이 중요한 법, 예전에 '일리' 원두로만 커피를 내린다는 걸로 카페 홍보를 했던 지인이 생각난다. 프랜차이즈도 아닌 개인 카페 운영을 하면서 브랜드 원두를 쓴다고 광고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멸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그 사람은 몰랐던 것 같다.


귀빈성 물짜장과 깐풍기,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이 제일 사랑했던 음식


저녁은 귀빈성에서 먹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 그리고 돌아가신 뒤에는 계속 방문했던 우리 가족의 상징과도 같은 음식점이다. 시청 주변의 허름한 곳에서 수송동의 건물 안으로 이전했다. 깔끔해진 건 좋지만 그때의 운치를 생각하면 많이 아쉽다. 오랫동안 운영하셨던 이전 사장님도 은퇴해서 따님이 물려받으신 것 같은데 다행히 맛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소스에 절인 방식이 아닌, 바삭바삭한 이곳의 깐풍기가 너무나도 좋았다. 서울에서 먹는 깐풍기들은 이런 맛이 안나더라고.


은파유원지 산책 후 집으로 돌아와 보드게임으로 마무리, 이렇게 같이 모여논 적은 처음이다.



다음날 아침, 한일옥을 가기 위해 친구들을 깨웠다. 많이 먹지도 않는 친구들이지만 한일옥 무국은 아침에 먹어야 제 맛이 나는 법. 급히 채비를 하고 출발했다.

 

소고기무국을 왜 9천원을 주고 사 먹느냐 하면,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라고 말해야겠지.


무한으로 나오는 김으로 밥을 싸 먹으며 맑은 국물을 먹으면 맛이 아주 각별하다. 사실 고기와 무의 양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곳의 묘미는 바로 맑은 육수에 있다. 부대끼지 않으면서도 진한 국물의 풍미가 너무나도 좋다. 군산을 방문했던 더 많은 친구들을 이 곳에 데려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오전엔 월명공원 산책, 중학교 소풍 때 이후로 처음이니 자그마치 20년 만에 다시 방문했다.


한일옥에서 나오면서 친구들이 멀리 보이는 큰 흰 탑(수시탑)이 무엇인지 물었고, 말이 나온 김에 월명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초중고 내내 소풍장소로 은파유원지, 금강하구뚝과 함께 고정이었던 곳이다. 예정에 없었던 하이킹이었지만 이때 군산은 그야말로 온 지역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던 벚꽃 개화시기, 오전 내내 월명공원을 돌아다녔다.


드디어 대망의 점심, 이번 군산 여행은 마지막 날 점심을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원을 무리하게 계속 걸었던 것도 최대한 허기지게 하려는 가이드의 전략, 마지막 코스인 토향촌으로 향했다. 군산시 임피면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에 식당이 왜 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딴곳에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다.

  

동료들을 허기지게 한 건 지금을 위해서였다.


사실 전날 저녁에 방문했지만 게가 다 떨어졌대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좋은 예고편이 되었지.

 

특이 아닌 보통도 인당 2만원으로 꽤 비싼 편이지만 게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볼 만한 맛집이다. 밥도둑으로 표현하기에도 미안한 그야말로 밥살인범. 모두들 만족하면서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이렇게 3박 4일간의 고향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추억 만들기를 완료했다. 정말 오랜 시간을 걸으면서 내가 살아온 흔적을 되짚어 보고 나니, 장소만 떠올려도 당시 일어났던 일들이 생각난다. 왜 그렇게 안 좋았던 일들만 기억하면서 살았을까,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도 말이다.


처음에 썼던 바그완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여행은 그대에게 적어도 세 가지의 유익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하나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마지막 하나는 그대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 Bhagwan

     

내 고향을 여행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고, 발자취를 더듬으며 살아온 곳을 더 사랑하게 되었으며, 예전에 즐거웠던 기억들이 떠올리며 다시 찾은 소중한 기억들을 안고 앞으로를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ADIOS 나의 고향, 이젠 몸 누일 곳이 남아있지 않은 나의 고향,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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