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의 기술
지난 월요일, 오랜만에 산업계에 있는 후배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우리는 금융권 이외의 기업에 근무하는 동료들을 다소 모호하게 '산업에 있는' 혹은 '인더스트리(Industry)에 있는' 이라는 표현으로 묶어 부르곤 한다. 업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프로젝트에 깊이 몰입하는 성향이 있어서, 의식적으로 눈과 귀를 열지 않으면 세상과 단절되기 쉽다. 그래서 종종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긴다.
후배 A는 여의도에서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로 경력을 쌓은 뒤, 을지로에 있는 대기업의 IR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후배 B는 유통과 소비재 애널리스트로 시작해, 현재 회현동에 위치한 대기업의 전략기획 부서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둘 다 팀 내에서 주니어 포지션으로 선배들의 눈치와 처세술을 경험하며 회사의 분위기를 파악한 일, 내 업무만 잘 하면 상대적으로 자유도가 높았던 애널리스트 시절이 가끔 그립다는 이야기 등등 30분은 입을 꾹 다물고 두 친구의 만담을 듣고 있었다.
'그 부장님은 일을 정말 잘해', '그 상무님은 일을 잘해서 인정 받아'. 식사를 마칠 때 즈음 두 친구의 대화에서 자주 들렸던 '일을 잘한다'의 의미가 궁금했다.
"아까 네가 말한 일을 잘한다의 의미가 뭐야?"
"처음에는 왜 이렇게 일하는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어요. 야근을 하면서도 부가가치가 있는 일 보다는 문서의 문맥을 수정하고, 보고서의 표현 하나하나를 부장님께 점검 받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렇게 고생을 하며 수정한 보고서가 결재 라인을 타고, 또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크게 깨달은 점들이 있었어요.
제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 부장님은 본부장님의 입장과 다른 부서의 관점을 철저히 이해하면서도, 무언가를 관철시켜야 하는 우리 부서의 의무에 대해 모두에게 흠집을 내지 않는 정제된 표현을 잘 쓰셨어요. 그 결과 한지에 먹이 스며들 듯 병렬합의 도장이 찍혔죠."
"애널리스트 생활을 할 때에는 내가 전할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는 데 집중했어요. 모든 펀드매니저들 설득할 필요도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기 때문에, 분석한 논리를 발산하는 방식의 소통을 주로 했어요. 그러나 기업은 다르더라고요. 상대가 듣고 싶은 의견에 대한 논리를 만드는 일 부터 시작해서,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일을 잘한다는 의미 대한 질문에, 후배는 의사소통을 잘하는 것이라 답을 해줬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금융권이든 산업계든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소통은 단순히 말을 잘 하는 것 이상이다. 말은 가장 값싼 도구일 수 있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는 극명히 달라질 것이다. 말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향하는 방향, 즉 우리의 태도가 누구를 향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가에 있는 것 아닐까. 진정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나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을 넘어 이해관계자(Stakeholder)의 입장과 조직의 목표를 조화롭게 엮어내는 능력이라고 정리해본다.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의 The Umbellas,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와 일본 이바라키 동시에 약 3,000여개의 노란, 파란우산을 설치한 환경예술 프로젝트. 우산과 구조물은 재활용되었다.
*좀 더 사모펀드의 관점에서 정리했던 위험관리 수단으로서의 의사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