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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Aug 19. 2022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위험관리 수단, 의사소통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이 가상의 인물 '소금군, 후추양, 간장변호사'를 만들어 잠재 의뢰인에게 상황설명을 한다. 이해상충의 이슈를 살짝 피해가면서 말이다. 몇 년 전에 겪었던 투자 포트폴리오 기업과의 의사소통 에피소드를 의뢰인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을 넣어 소개하겠다. 


당시 우리 펀드가 투자한 두 개의 포트폴리오 기업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A사는 1960년대 창업한 탄탄한 재무구조를 지닌 중견기업이 신사업을 목적으로 만든 계열사로 우리와 경쟁사 본부장급 임원을 삼고초려하여 꽤 촘촘한 사업계획을 세워놓고 투자를 하였다. 기업 경영에 대한 경험치가 풍부한 리더쉽이 있었기 때문에 투자 후 모니터링할 지표들에 대한 합의가 수월했고, CFO를 통해 매달 마감실적과 주요 이슈에 대한 내용을 공유 받을 수 있었다. 현재는 2-3년 후 IPO를 위해 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CFO가 취임하여 탄탄히 안살림을 챙기면서 순항 중에 있다. 이렇게 펀드와 상호 의사소통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안정적인 가버넌스는 CEO들의 영업 자양분이기도 하다. 가정이 평화로워야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B사의 경우를 살펴보자. 5-6년 전 스타트업 신에서 꽤 인정받는 창업자가 이끄는 B사는 스케일업을 위해 기세를 몰아 전략적 투자자(SI),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는다. 우리도 그 중 하나였다. 대표의 비전에 공감을 했고, 무엇보다 B사가 진출한 시장의 성장성, 그리고 그 시장에 아직 압도적 1위 사업자가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이제 막 스타트업 단계를 벗어나는 기업이었기에 현금흐름을 만들기 위한 사업계획의 Milestone 점검 형태로 투자 후 모니터링 계획을 세웠다. 종종 대표가 너무 바빠 연락이 잘 되지 않았던 적을 제외하면 첫 1년은 별 문제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모니터링을 위한 사업계획의 Milestone 점검 간격이 불규칙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내부적으로 분기별 점검을 가이드로 두고 투자 포트폴리오 기업과 의사소통을 시작했다. 


투자 직후에는 보통 '거래종결(투자) 이후의 의무 및 확약 조항'을 통해 제3자의 시각에서 초기기업의 성장에 있어 최소한 지켜줬으면 하는 항목을 넣는다. 오랜 사업을 해온 분들에겐 당연하겠지만, 초기기업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핵심 서비스에 대한 영업배상책임보험, 투자기간 중 핵심인력의 이탈방지 의무 등. 이런 의무조항들은 금방 이행이 된다.


사소한 문제는 B사의 사업 상 의사결정에 투자자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하는 부분에서 시작했다. 투자계약서 상 진술과 보장, 동의 및 협의사항, 보고 및 자료제출 같은 조항들은 그 동안 수많은 소송, 갈등을 통해 축적된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로펌에서 작성해온 초안을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다. 정관을 변경하거나 추가투자를 유치한다는 직관적인 내용은 제외하고, '회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 '사업계획의 중요한 변경', 중요한 계약이 체결 및 해지' 같은 내용은 어떻게 사전 동의 또는 보고를 받을 것인가.


B사 대표와 미팅 때 종종 직감적으로 우리가 알았어야 했을 것 같은 계약, 결정들에 대해 사후에 공유를 받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다음 미팅 때 전에 공유한 내용과 연결점을 찾기 힘든 새로운 사업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은근한 스트레스와 함께 B사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낮아지는 느낌이었다. 사업 상 '중요한 사안에 대한 각자의 기준점이 달랐던 것일까? B사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인사이트의 깊이가 낮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동안 서로 간 의사소통의 주기가 너무 길었던 것 아닐까?


때마침 우리보다 훨씬 큰 규모의 글로벌 사모펀드가 볼트온(Bolt-on)전략의 일환으로 B사에 대한 인수 의사를 전해왔다. 무엇보다 우리는 B사와 유사한 업종에 대해 당분간 투자를 하지 않을 계획이었고 인당 효율성을 생명유지 수단으로 삼아야 하는 우리의 상황, 앞으로의 기회비용 등 깊은 고민 끝에 펀드 만기를 한참 남겨두고 EXIT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B사의 경우도 우리 보다 B사와 시너지가 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사모펀드의 포트폴리오 편입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목표한 금액보다 낮게 매각을 하였다. B사의 좋은 소식을 지금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아직도 당시 우리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EXIT 이후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보다는 좀 더 효율적인 의사소통 방법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생각해 본 몇 가지 생각의 줄기를 공유한다.


될 수 있으면 자주 만나자

B사의 관리 문제로 고민이 많던 작년 이른 봄 서울클럽을 찾았다. KKR의 포트폴리오였던 OB맥무의 CFO를 출신이었던 멘토 같은 선배를 통해 앞으로 투자 이후 의사소통 방향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매월 투자자와 컨퍼런스콜을 했다고 한다. 포인트는 '상호 협의된 날짜에 꾸준히'이다. 논의 주제가 없던 날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잡담도 나눴다. 하지만 이런 시간이 늘어날 수록 KKR 펀드 매니저 입장에서도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KKR 외부 투자자에게서 받는 질문에 대해 따로 회사에 자료요청을 하지 않더라도 바로 대응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CFO 입장에서도 편한 일이다. 이렇게 회사에 대한 이해가 기저에 깔리면 펀드가 추후 생길 수 있는 문제해결에 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초코파이 정 같은 혁신적인 텔레파시 서비스가 나오지 않는 한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루틴을 만들고 자주보는 수 밖에. 지금도 이 원칙은 유지하고 있다. 


의사소통은 경영자로서 자질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우리 팀의 경력들을 보면 M&A, 경영전략 컨설팅, 증권사 IB, 스타트업 대표 출신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네트워크, 시각을 가지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간다. Best Case는 아니더라도, 기업이 처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Better Case는 더 많이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업이 처한 의사결정의 기로에서 현명한 판단을 도와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나 역시 기업규모에 상관없이 경영자에 대한 존경을 기반으로 미팅에 임한다. 알다시피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보면 크던 작던 자기분야에서 성공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배울 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나 역시 무조건적인 격려보다는 때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을 할 때도 많다. 이렇게 투자자는 포트폴리오 기업을 통해, 기업은 투자자를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최소한 지금까지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창업자들은 이런 마인드이다.


의사소통은 든든한 아군을 만들어가는 과정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Seed ~ Pre-Series A 정도 시기 초기투자자들은 경제적 여유, 사업 안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간혹 평소 본인이 하고 싶었거나, 호기심은 많았지만 여건이 안되어서 대리만족성으로 투자한 분들도 계신다. 이런 분들의 경우 제3의 임직원이 되어 사업적으로 정말 큰 도움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초기투자자를 타게팅 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기도 한데, 최근 지인이 프리미엄 골프클럽을 수입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시드(Seed) 투자는 정말 골프에 진심인 사람들로부터 받았다. 애초에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들 대상으로는 설득도 되지 않고 투자유치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골프에 진심인 소수의 투자자들 중 일부는 없는 자금도 만들어서 투자할 만큼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피팅샵 섭외, 쇼룸 등 꼭 필요한 사업 상 지원을 받게 되었다.





피트스탑(Pitstop). F1같은 자동차 경주 중 연료 보급, 타이어 교체, 기계적 조정을 위해 드라이버가 경기 도중 정차하는 것을 말한다. 드라이버는 정확한 위치에 차를 세워야 하고, 크루들은 교체할 타이어를 꺼내고, 새 타이어를 장착 후 휠 건으로 나사를 조인다. 모든 바퀴가 정상적으로 달린 것을 확인 후 다시 드라이버는 경기장으로 돌아간다. 이 모든 과정이 2~3초 안에 이뤄져야 함으로 탄탄한 팀워크가 받쳐줘야 한다. 기업 경영에서의 피트스탑은 투자자와의 의사소통, 더 나아가 이해관계자(Stakeholder)와의 의사소통을 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위험관리 수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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