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부분의 여유 시간은 책을 쓰는 데에 쏟고 있다. 경제학에 대한 내용으로, 생소한 부분은 새롭게 탐구하고 익숙한 것들은 다시 꺼내어 정리하는 과정의 연속같은 하루다. 이게 즐겁기도 하지만, 때때로 조바심이 든다. 하루 목표 분량을 채우지 못할 때면 그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왜 이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던 무렵, 반가운 동료가 찾아왔다.
자산운용사에서 일하는 이 친구는 무려 세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다. 특히 국내 대체투자 시장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영문 출간까지 해본 경험이 있어, 그와 함께 세상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책 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책을 쓰는 건 마치 나 자신을 세상에 IPO하는 과정 같아요.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통해 여러 논리와 관점들에 부딪치게 되죠. 또, 책을 쓰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흥미로워요. 서로의 책을 공유하고, 책장 한편에 지인들의 책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것도 묘한 즐거움이죠.
그리고 책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 책이 있는가 하면, 데이터와 사실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주장을 펼치는 책도 있죠. 후자가 더 어렵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작업이에요. 한 번 두 번 책을 내다 보면 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하는 능력과 요령이 생겨요. 지금 정진님이 겪는 고민들은 저자들이 모두 겪는 과정이니 걱정 말고 계속 나아가세요."
마치 내 머릿속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그의 말들이 이어졌다. 특히 마지막 조언의 잔잔한 파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기록한 것들이 바로 책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나조차도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하게 돼요. 그럴 때는 오히려 내가 쓴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되죠. 세미나를 진행하거나 다른 전문가들과 토론할 때, 어느 순간 내 책을 통해 다시 공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지금 쓰고 있는 책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지침서 같은 존재가 되는 거예요. 그 모든 기록이 곧 자산이 될 겁니다."
그의 말처럼 내가 지금 쏟아내고 있는 기록들이 언젠가 미래의 나를 위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문득 내가 1년 반 넘게 이어오고 있는 'YEU Weekly'가 떠올랐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 업業에 대한 회고를 글로 남기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고, 스스로의 태도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왔다. 불안하거나 고민이 많았던 시기, 그리고 그저 평범했던 나날까지, 그 모든 과거의 기록들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기대가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 과정을 이어나가자 다짐하게 된다.
*로만 오팔카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표현하기 위한 물리적인 작업을 평생 이어나갔다. 1965년부터 검정색 캔버스에 1부터 무한대의 숫자를 적기 시작한다. 이 작업은 47년 동안, 작가가 80세에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