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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Sep 21. 2024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수용하는 용기

아니카 이(Anika Yi)의 예술과 투자철학

올해 7월,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에스더 쉬퍼 서울 갤러리에서 지인의 초대로 아니카 이(Anicka Yi) 작가의 특별 강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었다. 




두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해 성인기를 영국 런던에서 보냈는데, 향수를 좋아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향과 과학을 활용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가 이미 30대 중반이었는데, 미술 전공자는 아니었고 이전에는 패션 관련 일을 했다고 했다. 첫 개인전은 마흔 살에 열었으며, 2016년에는 미국 MIT의 예술과학기술센터에서 입주 작가로 활동하며 여러 엔지니어들과 인연을 맺었는데, 이 만남들이 그녀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그 덕분인지 올해 프리즈에서 처음 접한, 기계와 생물화를 결합한 개념의 <방산충> 연작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방산충> 연작 '무한한 석질'과 '이슬방울 연속체'

에스더 쉬퍼 담당자는 그녀의 작품의 핵심 키워드로 '공기'와 '향'을 설명해주었지만, 그 이미지들은 나에게는 다소 난해하게 다가왔다. 100명의 여성에게서 채취한 박테리아를 배양 접시에 담아 전시하고, 꽃을 튀기는 등 관람객들이 종종 불쾌할 수 있는 시큼한 냄새를 경험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왜 이 작가를 에스턴 쉬퍼를 포함한 국제적인 갤러리들이 주목을 했을까.  


어제 리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아니카 이의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를 다녀왔다. 혼자의 힘으로는 전시를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 디지털 도슨트 서비스를 사용하였는데, 기억의 한계로 정확치는 않지만 이 문구 하나로 그녀의 작품에 한걸음 더 다가간 느낌을 받았다. 


"외부요인을 작업활동의 또 다른 주체이자 공동저자로 끌어들인다." 


사견이지만 그녀의 작품 키워드에 '공기'와 '향'에 더해 '우연'이라는 단어를 추가하고 싶다. 우리가 상상하는 꽃의 아름다움과 상충되는 그녀의 작품소재 튀긴 꽃은 기름지고 시큼한 부패의 냄새를 지녔다. 부패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결과의 불확실성 또한 소재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우연과 불확실성을 작품의 또 다른 창작자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 

인공지능과 함께한 <양자 포말 회화> 연작 중 하나


또 다른 사실은 2020년 이후 작가는 인공지능이 회화에 가져올 변화에 주목해 왔다. 이에 2010년대 초중반 비누를 소재로 작업했던 회화 작품을 포함하여 이전 작품을 사용하여 인공지능을 훈련시켰다. 이렇게 학습된 인공지능에 박테리아, 자연 풍경, 세포 조직 등의 이미지를 제공함으로써,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결과물을 창출해내도록 했다.  



우연이라는 외부요인을 수용하면 좀 더 유니크한 스토리가 탄생한다. 이건 비단 아니카 이의 작품에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우연을 수용한다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요소를 배제하지 않고, 그것을 성장과 발견의 기회로 삼는 태도라 생각한다. 아니카 이의 작품이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창조의 일부로 받아들이듯, 나 또한 우연이란 변수를 포용하고자 다짐해본다. 이는 단순한 위험 관리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업業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더 나아가 예술과 삶 모두에서 '예측할 수 없는것'을 함께하는 용기는 새로운 가치와 스토리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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