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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Nov 16. 2024

우연처럼 찾아온 필연의 순간

매튜웡(Matthew Wong)이 남긴 태도

최근 미술 수업에서 2주 연속으로 매튜웡(Matthew Wong)이란 남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매튜웡의 그림에 대한 슬라이드가 띄워지고, 선생님게서는 그 뒤로 쉴 새 없이 고흐, 클림트, 마티스 같은 거장의 작품들의 장표를 쏟아내며 매튜와 그들의 연결점을 짚어 주셨다. 닮은 듯 다른 듯 카피도 아닌 것이, 작품 전반에 흐르는 우울한 감정선이 공감이 될 듯 안될 듯 묘한 생각들에 휩싸였다.




1984년 토론토에서 태어난 매튜 웡은 홍콩에서 성장하다 여러 대륙을 거쳐 30대 초반 캐나다 에드먼턴에 정착했다. 은행가를 꿈꾸던 그는 사진작가를 거쳐 화가의 길을 선택했고, 놀라운 속도로 작품을 쏟아냈다고 한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와 드레이크, 칸예 웨스트의 음악을 사랑했으며,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을 인터넷으로 접했던 그에게 온라인 공간은 스승이자 영감의 원천이었고, 외부와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자폐증과 투렛 증후군을 앓던 웡은 소셜 미디어에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 사회적 교류에선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독학으로 예술을 익혔고, 현대 회화에서 보기 드문 폭넓은 상상력과 독특한 기법을 선보였다.

The Space Between Trees (2019), Matthew Wong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붓질 자체가 추상인데, 미술 장르로 보게 되면 풍경화이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구상의 풍경은 아닌, 추상의 풍경이다. 매튜의 삶에서 내가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크리스토퍼 울의 작품을 접한 후 늦깎이로 회화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운 재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끝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2019년,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매튜가 영향을 받은 크리스토퍼 울의 작품은 대형 캔버스에 스텐실로 제작된 파편화된 텍스트와 스프레이 페인트, 실크스크린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 추상적 표현이 특징이다. 우연히 만들어진 얼룩과 번짐, 흘림 등 제작 과정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불완전함의 미학을 추구했다. 매튜가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봤던 크리스토퍼 울의 8개의 대형 작품들 또한 내가 보기에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얼룩의 우연한 번짐이다. 나는 짧게 언급했던 선생님의 메시지를 지금까지 붙잡고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예술적 깨달음은 단순히 우연한 순간의 산물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갈망과 성찰이 무르익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크리스토퍼 울의 작품(무제)


매튜가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크리스토퍼 울의 작품을 보며 얻은 통찰이 그러했다. 그는 그림이란 단순히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거나 아름답게 표현하는 기술적 완성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이는 마치 선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과도 닮아는 점을 언급하셨다.


순간적인 깨달음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내면에 이미 충분한 준비와 절실함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예술가의 삶이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내적 성찰과 고민의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진정성을 발견해나가는 여정임을 일깨워준다. 이는 비단 예술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일상에서 업業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같은 경험이라도 그 깊이와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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