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흔 되기
모르는 전화 번호가 뜬다.
국번도 아닌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다.
광고 전화도 010으로 걸려 오는 편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냥 무시할 수 없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나의 반대편에서 들려 오는 낯선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목소리.
"**이니?"
내 이름이 등장했고, 존댓말이 아니다.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할 수 밖에 없는 10년 만에 듣는 목소리는 나를 찾고 있었다.
연락이 끊겼던 선배였다.
당혹스러우면서도 반갑고, 불편하면서도 고마운 그런 통화가 이렇게 가끔 생긴다.
20대의 그때처럼 통화 할 순 없다.
그러나 그저 냉랭하게 응대하기도 어렵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아이는 어떤지 등의 안부 인사와 근황 나눔이 뒤섞인 통화.
그 끝에 뜬금없이 내게 묻는다.
"너 이제 몇 살이지?"
"아, 저 내년에 마흔 돼요."
학교에서 만난 선배가 아니었으니 자신과 나의 나이 차이를 잊었을 수 있다.
점점 스스로의 나이도 헷갈리기 시작하는 나처럼, 이미 마흔이 넘은 그 역시 그럴 수 있다.
무슨 이유가 됐든, 갑작스레 나이를 묻는 질문에 비교적 다소곳이 대답한 내게 그가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됐니? 아니, 어떻게 그렇게 됐지?"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의 내용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모든 대화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어떻게 그렇게 됐니?" 이 한 문장만 남았다.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깔깔 웃었는지, '세월이 그렇죠 뭐~'라며 능청을 떨었는지, 혹은 대꾸도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는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었던 건 분명하다.
하긴, 난 10년 전에도 늘 후회하곤 했었지.
좀 더 똑부러지게 말할걸, 당황하지 말걸, 싫은 건 싫다고 표현할걸...하고.
그런데 마흔을 앞두고 대화를 해도 목에 가시라도 걸린 것 마냥 몇 날 며칠을 혼자 후회만 한다.
마흔이 된다는 건, 사실 그가 묻지 않아도, 나 스스로도 의아하기만 하다.
어떻게, 어쩌다, 난 마흔이 되는 것일까?
답은 없다.
어눌하고, 당황스럽고, 정확한 감정을 제대로 알 수 없어서 답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한 일이, 내가 만든 상황이, 아니니까.
그저 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만 답했어도 충분했을 테다.
익숙해 지지가 않아서일까 텅 빈 맘에 집 앞을 서성이다 와
좁은 방엔 온통 TV소리만 그 안에선 모두가 웃고 있는데
온종일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을 붙잡고
컴퓨터 앞에서 멍하니 하루를 보내
아직도 나지막이 네 이름 불러보곤 해
나 이렇게 살아 나 이렇게 살고 있어
오랜만에 나온 늦은 술자리 쓸데없는 농담에 웃기도 했어
다들 잊었나 봐 너란 사람을 혹시 나를 생각해 잊은 척 하는지
바쁘게 하루가 또 흐르고 집을 향하는 지하철 모퉁이 한 켠에 기대섰어
아직도 아스라한 네 얼굴 그려보곤 해
나 이렇게 살아 나 이렇게 살고 있어
나 이렇게 살아 나 이렇게 살고 있어
노리플라이 '나 이렇게 살고 있어'
난 이렇게 살고 있다고, 마흔이라는 나이를 설명하기 보단, 지금의 나를 설명하면 충분하다.
그렇게 마흔 이후를 살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