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처음 만난 계기
내게 미술관은 오래전부터 퍽 익숙한 공간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오면서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대중 미술관부터 크고 작은 갤러리까지 두루 다녔다. 또 비단 전시가 열릴 때만이 아니라 지나치는 길에 잠시 쉬어가거나 생각할 거리가 있어 무심하게 걷고 싶을 때도 방문하곤 한다. 최근에는 건물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송은 갤러리, 솔올 미술관(현 강릉시립미술관) 등 조형이 아름다운 미술관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생애 처음으로 간 전시가 무엇인지, 어떤 계기로 찾아보고 흥미가 생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럴듯한 문화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지금 2025년에야 전시회가 대중적인 문화이자 일상적인 여가로 자리 잡고 유명한 전시회장 안에는 혼자 온 사람보다 연인이나 가족들로 가득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시회를 간다고 하면 심오하고 유의미해 보이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동적이고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정적인 것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생산적인 여가를 보내고 싶었던 내게 알맞은 취미였다. 물론 흔히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어딘가 기발하고 특이한 세계에 눈이 간 것도 사실이다.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낯설고 위화감이 드는 작품들을 보면서 왜 이 사람은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후자의 호기심은 이후로 내가 예술 세계에 발을 더 깊이 뻗는 데 일조했다. 한때 전시라면 닥치는 대로 예약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다니며 팸플릿을 수집하던 시절에도 사진전을 보러 갈 때는 유독 인상이 덜했던 것이다. 사진은 내게 너무 명확한 세계였다. 그 안에 담긴 사실과 감정을 읽고 나면, 혹은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처음 받았던 인상은 희미해지고 ‘예쁘다’ 혹은 ‘심오하다’ 같은 텍스트만 남아 머릿속을 허무하게 맴돌았다.
그래서 반대로 현대 예술을 더 좋아했다. 한마디로 척 보았을 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작품들 말이다. 구상 미술에서 더는 답을 찾지 못한 예술가들이 이데올로기로, 개념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작품은 마치 부산물처럼 보였고 호기심을 훨씬 자극했다. 나는 오랫동안 한 작품 앞에 서서 작가의 의도나 만들 때의 심정을 생각한 뒤 도슨트나 팜플렛을 읽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결론을 얻으면 다음 작품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과정은 처음에는 내 생각과 객관적인 정보를 비교하며 정답을 찾는 데에 집중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창조적인 대답을 끌어내고 영감을 확보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이런 프로세스는 꽤 재미있었다. 매우 사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작품들은 나로 하여금 전에는 떠올리지 못한 새로운 사고로의 발판을 발견하기도 하고, 개방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또 전시회가 접점이 되어 만난 사람들의 인연이 준 긍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 사실 수많은 취미 중에 전시회를 택해서 미술관을 오기란 어려운 일이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쾌락을 느낄 수 있는 행위와 달리 미술관에서는 침묵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스스로 즐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격적으로 차분하여 그저 조용한 실내로 숨어들고 싶거나 사람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의 쾌락을 발견하고 삶을 폭 넓게 향유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그들은 대개 삶에 여유가 있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자신과 다른 세계를 존중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공적인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 중 지금까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나는 스스로 배울 수 없는 온유한 마음가짐과 배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렇듯 전시를 통해 삶에서 많은 것들을 얻었지만 반대로 문제도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전시회를 다녔음에도, 간혹 어떤 작가나 작품을 제일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질문에는 답을 흐렸기 때문이다. 어떤 전시든 찾아가서 볼 때는 고심하며 이런저런 의미를 발견하고 감탄하다가도 막상 지나고 나면 대부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기억을 떠올려 보았을 때 이 전시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선명하게 남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그러시군요” 하고 금방 지나갔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고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시를 오랫동안 즐겨 다녔는데 그중에 제일 좋았던 작가나 작품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니.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때는 봄이 꾸물거리고 여름이 스물스물 밀려오는 5월이었다. 주말에 종종 전시를 함께 보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전시가 있어 예술의 전당에 갔다. ‘라울 뒤피’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작가의 개인 전시였는데, 작품을 보자마자 어두운 실내에 따뜻한 바람이 살랑 불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캔버스 위에 색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떤 장소인지 알 수 없거나 이따금 구조가 분명하지 않은 건물도 있었으나 분명한 건 그림 전반에 흐르는 감정이 기쁨, 혹은 찬탄에 가깝다는 것은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집중해서 그림을 보았고 2시간 정도가 지난 뒤에는 함께 온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에 끌려 나오듯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모두 이미 밖으로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방금 본 작품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개중에는 처음 만난 사람도 있었는데, 그가 예의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냐고 묻자 즉시 오늘 본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처음으로 라울 뒤피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인상주의, 입체파, 야수파... 이전까지 글자로만 떠돌던 것들이 그림 아래 뚜렷한 선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근대 미술에 대한 사랑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