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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입기

현대 사회에서 옷을 대하는 우아한 방식

by knokno



톰브라운 카리나.jpeg 카리나, 2023년 톰 브라운 꾸뛰르 쇼에서


처음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순서에 따라 상대를 살펴본다. 가장 먼저 얼굴의 생김새와 표정을 보고, 키와 체격을 가늠한다. 그다음에는 짧은 말마디에 담긴 목소리와 말투를 느낀다. 그리고 나면 그가 입은 옷차림이 다가오며 이전의 인상과 결합해 다층적인 아우라가 형성된다. 우리는 그것을 첫인상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은 처음 몇 번 만날 때는 모든 단계를 거치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잘 변하지 않는 부분들은 생략되고 나머지 부분들이 흥미 요소로 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의 옷차림은 관계에 많은 시간이 흐르고 서로가 충분히 익숙해진 뒤에도 여전히 새로움과 궁금증을 유발하는 외적 요소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무신사나 크림 같은 대형 플랫폼을 필두로 패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일부의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의 영역을 지나 대중적인 교양의 수준으로까지 발전되었다. 패션 인플루언서들이나 모델들이 전보다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으며, 마니아 사이에서만 향유되었던 브랜드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인지도를 얻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옷차림은 자기표현 방식의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캐주얼이나 힙합 스타일을 즐겨 입는 사람을 보면 편하고 자유롭게 입는 것을 좋아하고, 혹은 매사에 거리낌 없이 자신을 표출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반대로 포멀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중한 모습으로 예의를 갖추고 싶어 하는 의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사람들은 커다란 틀에서 멈추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어 펑크, 아메카지, 고프코어 등 자신의 취향을 더 세밀하게 드러낼 수 있는 스타일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브랜드와 편집숍을 찾고 알아가는 재미는 덤이다.


스크린샷 2025-12-03 오후 6.26.05.png 1년에도 몇 번씩 대대적으로 쏟아지는 새로운 옷들


그렇게 옷에 계속 관심을 가지다 보면 으레 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건 바로 세상에 옷이 너무나 많으며, 일 년에만 두 번에서 많으면 열 번까지도 새로운 옷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진다는 점이다.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옷들은 갓 세상에 나온 아기처럼 무결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것들 대부분은 어쩌면 옷장에 잠들어 있는 것과 대부분은 비슷하고 단추나 주머니 같은 일부 디테일에만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우리는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착각한다. 또한 이 시대는 ‘유행’,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고 받아들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로 빠르게 움직이도록 강요한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충동적으로 빠지기 쉬우며,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선택은 낭비적인 결과로 흐를 수 있다. 비관적인 경우 우리는 취미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비문화의 노예가 된다.


스크린샷 2025-12-03 오후 6.32.16.png 유니클로 U라인 쇼트블루종


이것에 관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한 가지 혹은 적은 가짓수의 옷을 계속해서 입는 것이다. 우리가 옷에 쓸 수 있는 돈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옷장 또한 무한하지 않다. 한번 산 옷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는 주변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옷이 고가이면서 좋은 품질을 가졌는지, 아니면 유니클로의 감사제 세일 품목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애정을 가지고 옷을 바라보고 그것으로 입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생각해서 입어보는 것이다.

옷에 애정을 가지는 일에는 여러 가지 부분이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나는 브랜드의 철학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브랜드의 제품으로 갖춰 입는 것은 자기 생각에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매 시즌 브랜드에서 내놓는 컬렉션은 사실 창작자가 ‘이 옷은 이렇게 입으면 예뻐요.’라고 말하는 설계도이자 가이드이다.

예를 들어 샤넬의 경우 여성이 추구하는 여성적 미와 자유로움이 신화적인 느낌을 준다. 흔히 그렇듯 백만 들어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넬을 계속 입는 사람은 옷을 입는다는 행위가 그러한 마음가짐을 사랑하고 자신의 이상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혹은 파타고니아나 몽벨을 계속 입는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 환경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가능한 한 가지고 있는 옷을 오래 입으려고 하는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보면 어떨까? 어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동일한 옷을 입고 나가면 아무리 패션에 둔한 사람이라도 서너 번째에는 이상함이나 궁금함을 느낄 것이다. 어째서 이 사람은 한 가지 옷만 입는 걸까? 자신을 만날 때만 이 옷을 입는 걸까? 라는 식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어할 것이다. 가깝지 않거나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스스로 브랜드와 스타일에 대해 찾아보겠지만, 대부분은 직접 물어볼 것이고 우리는 자신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르메르는 르메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해 ‘엘레강스’ 를 희망 사항으로 꼽은 적이 있다. 엘레강스란 타인을 궁금하게 하는 힘, 정형화되지 않은 사람의 ‘오라’ 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느낄 때 그 사람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지 궁금해한다. 한 가지 옷을 입는 습관은 이러한 분위기를 지니게 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스크린샷 2025-12-03 오후 6.34.19.png 2025년 사카이(sacai) s/s 컬렉션


물론 이러한 방법은 곧 한계에 부딪칠 수 있다. 살다 보면 이른바 TPO를 지켜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응급실이나 장례식에 가는데 샤넬을 입거나 소개팅에서 파타고니아를 입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한 가지 옷을 계속 입는 행위에는 다공성이 큰 브랜드가 적합하다. 무인양품이나 유니클로부터 르메르 같은 브랜드들이 그렇다. 그들의 철학은 옷이 자신을 앞세우거나 주장하지 않고 착용자를 내세우거나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브랜드의 옷들은 무채색이나 자연의 색을 따르면서도 움직임에 따라 고유의 실루엣을 살린다. 혹은 사카이(sacai) 같은 브랜드는 서로 반대되는 스타일의 옷을 창의적으로 결합하여 중립적이면서도 멋을 살려 다양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끝으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말을 빌리면, 애정을 가지고 스스로 선택한 옷을 계속해서 입는 것은 하나의 지위이다. 이것은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경제적이나 사회적 계급이 아니라 지적인 자립성과 주체성에 관한 정신적 계급이다.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비싼 옷을 구매하는 것은 과시하기 위함이거나 자신을 과장하고 싶어하는 권위주의적인 발상일 따름이며, 유행에 과도하게 치우치거나 너무 많은 옷을 구입하는 것 또한 중심이 자신이 아니라 주변을 향한 것이다. 너무나 많은 정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자아를 가지기 어려운 시대에 하나의 옷을 계속 입는 것은 잊어버리고 있던 주체성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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