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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Jung Jun 04. 2021

[제1장] 지극히 인간적인 사이코패스를 위하여

제1장 뜻밖의 메일

이 글을 비롯한 본 매거진에 담긴 글은 [소설]입니다. 



[제1장] 뜻밖의 메일


    어김없이 5시 45분이다. 뉴욕에 돌아온 후엔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난다. 다시 잠을 청할까 잠시 고민하였지만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에 기지개를 핀 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가로세로 삼 미터가 넘는 큰 창밖으로 보이는 길에는 일찍이 베이글 장사를 준비하는 청년의 발놀림 이외의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고, 그곳에서부터 퍼지는 달그락 소리 이외의 소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난 해 질 녘을 싫어한다. 기분이 무척 더러워진다. 하지만 그때와 색감이 비슷한 지금의 시간대는 선호한다. 이 시간, 내 세상엔 이중성을 지닌 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난 그것에 큰 가치를 둔다.

    곧장 찬장으로 다가가 올리브 오일 꺼냈다. 어디에선가 양치질만으로는 밤새 쌓인 입안의 더러운 것들을 전부를 제거할 수 없기에 오일 풀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은 이후 한번 시도해 봤는데 사실관계를 떠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연녹색으로 바뀐 오일을 퉤-하고 뱉어내면 진짜로 세균이 같이 나온 것 같다. 가끔은 그 더러운 것이 목구멍 속으로 흐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애초에 세균이 효과적으로 제거된다는 것이 하나의 주장이기에 나는 행위에서 오는 느낌에 가치를 두기로 했으며, 이제는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양치질을 하다 보니 간밤 꾼 꿈이 생각이 난다. 이상한 꿈이었다. 어떤 인간이 내 책을 빌려 가 놓고 멋대로 팔아버렸다. 학교 후배였던 그 자는, 내게 먼저 와서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한 학기 동안 빌려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난 그 책이 당분간 필요하지도, 특별히 소중하지도 않았기에, 딱히 돕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학기말 시험이 끝난 후 뒤풀이 파티에 참석한 후배는, 책까지 빌려주는 친한 사이에 그런 일이 뭐 대수가 아니란 식으로 다 썼으니 팔아버렸다고 말했다.

    선의와 친분의 정도는 매번 같이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도 베풀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사건을 바탕으로 내가 그와 친하다고 생각한 것은 멍청한 추론이다. 게다가 친하다 하더라도 소유자의 동의 없이 물건을 팔아버리는 것은 이상한 짓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이 꿈을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저런 일들은 주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것을 안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은 그럴 수 있고, 보통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정신 덜 긁히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무신경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교육의 힘을 믿는다. 옳고 그름이 확실하다면 그른 것에 있어서는 지적하고 넘어간다.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켜야 할 것을 안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는 사실 몰라서 못 지키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두엽이 완성된 후의 사람에게 도덕이나 윤리의 중요성에 대하여 교육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난 항상 시도해보는 것을 택한다.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해줘야, 나라도 그렇게 해야, 그래야 우리 사회에 지킬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불편한 상황을 덜 겪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진짜 이상하게 생각하는  꿈속  자신이다.   후배가  책을 멋대로 팔아버리리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버러지라 버러지 짓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후배에게 빌려주었고, 실제로 그것이 꿈속에서 현실이 되었을  씁쓸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답지 않았다.  점이 나를 개운하지 않게 만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치약 거품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 오래 머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른 입을 헹구고 칫솔을 제자리에 놓은 뒤 샤워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아무도 만날 계획이 아니기에 샤워 후엔 대충 로션만 찍어 바르고 앉아 있기에 불편하지 않은 바지와 쌀쌀한 에어컨 바람을 막을 긴 옷을 입고 건물 일 층에 있는 카페로 내려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작년 가을에 산 검은색 후디는 너무 계절에 맞지 않아 보일까 고민을 잠시 하였지만 이내 나만 덥지 않으면 된 거지라는 생각으로 덮으며 문고리를 올렸다. 한여름이면 건물 안과 밖 기온의 차이가 크게 난다. 현대 사회에서의 모순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고려대상 중 하나이다.

    엘리베이터를 탈까 생각하였지만, 오늘 딱히 걸을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계단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십층에서 시작하여 육층을 지나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난다. 계단실에서의 흡연은 금지되어 있지만, 생각 없는 버러지가 육층에 사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 육층이 아니라 다른 층에 사는 사람이 경비원의 추리를 교란하기 위해 굳이 육층으로 오는 수고를 감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그 사람은 육체적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정신적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이른 아침, 이 카페에는 손님이 한 두 명 있는 경우도 있지만, 오픈에 맞춰가면 보통 그런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을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샌드위치와 갓 내린 따뜻한 오늘의 커피를 받아 창가 자리에 앉아 랩탑을 열었다. 이 자리가 가장 편한 이유는 집 창가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이곳의 풍경이 일치하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잠시 그렇다면 나는 왜 굳이 카페에 왔을까 그냥 집이나 작업실에서 하면 안 되나 생각했지만 이내 작업하기에 이곳이 더 쾌적하다고 느끼는 데에는 창밖 풍경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분석해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샌드위치 위 빵을 떼어내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트랙패드를 문질러 메일함을 열었다. 벽돌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비즈니스용으로 사용하는 계정이 업데이트되었다. 새로운 메일이 와있다. 무언가를 열어보기 전, 잠시 스치는 호기심은, 내용의 좋음이나 나쁨과는 관련 없이 날 감정적으로 자극한다. 그게 상자 든 메일이든 간에. 문득 이 감정은 인간관계에서도 느껴진다는 든다. 새로 만난 사람에게도 비슷한 감정이 든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순히 새롭고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밀려오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큰 가치를 두거나 사람에 대한 감상의 판단기준이 되기에는 참으로 하찮지 아니한가.

    예전에는 그 자극 자체가 좋아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적극적이었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 비슷한 사람들끼리 분류가 되기 시작하고, 그렇게 분류된 자들과 시간을 보내보면 실제로 원래 그 그룹으로 분류되었던 자들과 말과 행동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이제는 새사람을 만남으로 인해 자극을 받는 경우는 드물게 되었으며, 그래서 딱히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나서지 않게 되었다.

    무엇을 하다가 생각이 여기까지 흘렀을까. 감정이나 도덕에 관한 영감이 떠오른다면 딱히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온종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고찰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다시 트랙패드를 문질러 새로 들어온 메일을 클릭했다.


날짜: 2021년 6월 13일 일요일 오전 2시 14분

발신인: S. 스턴 박사

제목: 사이코패스 관련 글에 대하여

내용: 메일이 잘 전달되길 바랍니다. 페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사이코패스 피해 구제 센터장 서스 스턴 박사입니다. 사이코패스 연구의 선구자이신 대머 박사 밑에서 15년째 연구 중입니다. 브런치에 연재하신 사이코패스 관련 매거진을 우연찮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당신의 글이 상당히 위험하기에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뉴욕에서 활동 중이신 것으로 추정되고, 제가 다음 주에 학회 차 뉴욕에 방문할 예정이니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턴.


    흥미와 동시에 짜증이 밀려들어 온다. 아까 떼어 낸 빵 위쪽을 먹을 차례였지만 잠시 접시에 내려 둔 뒤, 흥미에서 오는 자극을 느끼며 머리로는 짜증의 이유를 잡는다. 오래도록 사이코패스 관련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짜증이 치밀었다는 것은, 내가 사이코패스라는 것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는 증거임이 확실하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는 나 자신에 관심이 지대하고, 이들이 악의 근원이라 떠들고 다니는 사이코패스적 기질은 나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 박사 대머는 크게 감정적이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이성적일 수 있는 것, 타인의 감정을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감정이 전해지지 않는 것, 자기애가 강한 것, 주변 상황을 잘 조작하는 것과 자잘하게는 충동적, 피상적 매력 등의 특징을 한 데 묶어 사이코패스적 기질이라고 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아주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난 사람들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사람들이 시끄럽고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이 왜 굳이 감정표현이 필요하지 않은 일에도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것을 택하는지가 궁금했다. 말로 표현하면 될 것을 윽박지르고 후에 후회한다거나, 눈물부터 쏟는다거나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진짜 기쁨을 느껴서  기쁘다고 이야기할 때면 기쁜 표정이 아니라며 장난으로 받아들이는지 의아했다. 나중에는 그냥 표정을 꾸며내는 쪽을 택했지만, 사람들이 귀찮게 구는 상황에 대한 감을 잡아갈 때인 네다섯 살 때는 항상 그게 아니라며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러니까 대머 박사가 나의 근원을 사이코패스적 기질이라고 구별했기에, 난 사람들에겐 감정이 물이 흐르듯 흘러들어오며 에너지를 쏟아 통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또 물이 흐르듯 흘러나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감정 프로세스가 인지, 느낌, 표현 이렇게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정서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깨닫게 되는 계기가 있기 전까지는 자신의 것이 온 인류의 기준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감정이 통제가 될 텐데, 그런데도 소란스럽게 행동하는 이유는, 일부러 타인에게 피해를 주려는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다.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일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사람들이 여전히 요란하게 굴더라도 그것이 악의가 담긴 것이 아닌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임을 알고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악의 근원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질적으로 나 자신의 감정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기에 나는 나 자신조차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 어떨 때면 물질적으로 살아가는 내 육체 위에 또 다른 내가 떠서 나를 관찰하는 기분이 들 만큼 나 스스로로부터 분리될 때도 있다. 그걸 사용하여 나는 내가 객관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지 고찰해보기 시작했다. 학교 친구들이나 주변인들은 지금까지 내가 그들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지만, 앞으로도 똑같은 질문을 상황마다 해 댈 작정이라면 그것이 피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나의 질문에 답했다.

    그들이 어떻게 악의 근원이라는 결론을 내렸는지, 다른 심리학자들은 모두 거기에 동의하는지 궁금하여 나는 사이코패스 심리학회에 가입하였다. 석사학위를 받은 후에 심리학은 더는 거들떠보지 않기로 했지만 호기심이 더 컸기에 어쩔 수 없었다. 대머 박사가 선구자였기에 초반에는 그의 가설을 바탕으로 모든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어쩌다가 같은 기질을 가지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도 있다는 연구가 발표된 후, 그 후 학회원의 반 정도는 사이코패스적 기질 판단 기준에 반사회적 행위를 포함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입장을 아주 소극적으로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머 박사는 인정하기 싫어하였고, 학회에서 그의 영향력은 컸다. 학회의 밥그릇 싸움이야 내 알 바 아니고, 내가 언젠간 범죄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에겐 큰 수확이었다.

    그 후 일 년 정도, 나 스스로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사이코패스적 기질에 대해서 고찰해보는 시기를 가졌었다. 자아 성찰은 재밌었지만, 기질이라는 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었기에 이내 사그라들었다. 자라나면서 경험하고 배웠던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시켜 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 자신이 어제의 나와 완벽하게 같지 않음을 나는 인정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스턴이나 대머박사가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진 사람은 미리 색출하여 고립시켜야 한다며 왁왁대는 꼴을 보면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 또한 잠시 코웃음이 나는 정도였다. 사이코패스적 기질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서야 타인에 의해서 색출될 일이 없다. 그리고 범죄자는 이래저래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며, 이 기질의 보유 여부가 딱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관심이 사그라든 지금에서야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왁왁대는 꼴이 내 눈앞에서 펼쳐질 것은 예상치도 못한 전개이다. 첫 줄부터 굳이 이력을 늘어놓는 걸 보면 지위로 본인의 주장에 권위를 더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앞에는 자기소개일 수 있다 하더라도 저 ‘사이코패스 연구의 선구자이신 대머 박사의 밑에서 15년째…’ 부분은 의도가 너무 보이기에 닭살이 돋는다. 메일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보자면 박사를 만나면 나의 피로도는 상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서 수고스러운 일을 할 때는 그것을 감내할 만한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

    어느새 손에 들린 위 빵의 한 귀퉁이만 남아있다.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고 씹으며, 스턴 박사의 이메일 화면  상단에 있는 답장 버튼을 클릭했다. 나의 맥북은 나이가 꽤 많기에 가끔 트랙패드가 안 먹히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이 그러하다. 스턴 박사를 만날 생각을 하니 갑자기 귀찮음이 밀려들어 왔다. 아까 생각한 것처럼 이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나중에 답장할까 하였지만,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들어 키보드를 두들긴다. 만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날짜: 2021년 6월 13일 일요일 오전 8시 12분

발신인: 안 그리핀

제목: Re: 사이코패스 관련 글에 대하여

내용: 반갑습니다. 브런치에 사이코패스 관련 매거진을 연재했던 안 그리핀입니다. 추정하신 대로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스토리아에 제 사무실이 있는데 거기서 뵙는 게 어떠실지요? 일요일을 한 주의 시작으로 생각하신다면 목요일 오후가 좋겠습니다. 아니라면 18일 금요일 오전이 좋겠네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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