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차이, 보이지 않는
이 글을 비롯한 본 매거진에 담긴 글은
[소설]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입니다.
[제5장] 차이, 보이지 않는
참나. 일 년 반이나 떨어져 있던 소중한 사람을 만났는데도 태연하게 글쓰기에 집중하는 안에게 자동으로 서운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이 감정은 존재 이유가 없다. 안은 감정과 표현이 일반 사람들처럼 흐르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친구도 내가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사이엔 겉으로 표현되는 무언가가 안의 감정이나 배려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느끼는 서운함은 사실, 습관에 예속 된, 존재의 이유가 없는 감정일 뿐이다.
창가에 기대어 가장 편한 표정으로 (남들은 무표정이라 할테지) 랩탑을 두들기고 있는 안을 지켜보면서, 지금 이 순간까지의 여정을 생각해본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만 같다. 온몸엔 아직 더니든 숙소의 서늘하고 퍼석했던 이불의 느낌이 남아있다.
그날은 속이 좋지 않아 조금 이르게 박물관을 나섰다. 아침에 먹은 닭 다리에서 살짝 핏물이 배어 나왔었는데 다시 굽기 귀찮아 무시하고 먹었던 것이 화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말처럼 더니든의 하루엔 사계절의 날씨가 다 들어있는데, 공감능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엿같게도 내가 아픈 날엔 귀신같이 비가 내렸다. 역시 그 날도 어김없었다. 그렇게 난 비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향했고, 씻고 나오자 위장의 떨림은 온 몸의 떨림으로 변했다. 기운 없이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는데, 메시지 알림이 여러 번 울렸다. 나는 안임을 직감했다.
- 오늘 재밌는 일이 있었어
- 스턴 박사가
- 날 만나고 싶대 ㅋㅋ
- 그래서 만나보려고 ㅋㅋㅋ
난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고, 답장했다.
- 그래? 나 내일 뉴욕 가는데. 같이 보면 되겠다.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마치 그랬던 것처럼 들리게 말했다. 이것 때문에 간다고 한다면 안은 분명 나를 막을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안은 아무리 소중한 사이라도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에 어쩔 수 없이 맞춰지는 걸 원치 않아 한다. 하지만 스턴 박사가 지금까지 방송에서 떠들던 것을 생각하면 안을 만나려는 의도가 좋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총성이 난무하는 지역에 볼일이 있다며 가겠다고 했을 때만 봐도 안은 자신의 안위를 너무 경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뭐 물론 무사히 돌아오긴 했지만, 이번에도 난 그때와 같이 너무 걱정이 되었다.
- 온다는 건 반가운 소식인데, 셋이 볼 일은 없을 거야.
솔직하게 대답하면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답을 미룬 채 곧바로 항공기 예약 앱을 켰던 걸로 기억한다. 번잡스러운 이름을 가진 태풍만 아니었으면 좀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스태머라니. 딱 처음 들었을 때부터 재수 없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걸리적거리는 상황을 만들고야 만다.
“아, 미안. 배고프지? 빨리 끝낼게.”
“그럴 필요 없어. 원하는 만큼 해.”
“고마워. 거의 끝났어.”
내 시선을 느꼈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는 안은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사이코패스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나는 안의 불특정 다수를 위한 진솔함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저쪽 편에서 안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들이 안 같은 사이코패스의 존재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이라면 눈엣가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잠재적 범죄자.
나는 범죄 영화나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실제 범죄사건 분석에 대한 내용을 담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도 즐겨본 지 한참 됐다. 그렇기에 내가 스턴 박사에 대해서는 안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이번엔 안보다 내가 더 고려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지도 모르겠다. 그자는 최근 10년간 범죄 심리학자라는 타이틀을 들먹이며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해 사이코패스는 무조건 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사회에 악을 끼친다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 사실 믿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전문가가 그렇다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지.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정보를 받아들일 때 딱히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전에 어떤 경제학자가 한 말이 새삼 떠오르는데 사람들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거짓이더라도 딱히 자신의 삶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만한 주제라면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인다고 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잃을 게 없다. 그렇게 쉽게 신념 속에 파고든다. 게다가 그것이 흥미롭다면? 굴뚝은 꼭 장작과 불이 있어야만 연기가 나는 것이 아니다. 윤리와 도덕이 어그러진 사회에서는 더더욱.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다. 매번 머리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 다짐하지만 이것은 이미 내 존재와 일체가 된 듯하다.
안과 오랜 기간 친구로 지냈고, 내가 내 직접 과정과 결과들을 보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이성은 안을 오래된 정보를 바탕으로 분류해버린다. 수십 번 다시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난 안을 안에게 맞는 기준으로 생각해 주려면 애를 써야 한다. 나도 이런데 사람들은 어떨까. 스턴은 십 년 이상을 같은 주제로 사람들에게 떠들어댔고 안의 말은 이제 막 배럴에 담긴 와인과도 같다. 사람들은 막연하게 오래된 와인이 좋은 줄 알지만 조악한 포도로 담근 와인은 맛이 추접스러우며 변질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알고자 하지 않는다. 와인처럼 그들의 입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에 그냥 흥밋거리로 소비할 뿐이다. 솔직히 난 그런 사람들은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를 알 필요도 없고 안에게 해악만 끼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안의 들을 귀 없는 자들에 대한 진솔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솔직히 난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스턴박사로 인해 사이코패스라는 주제가 다시 우리의 일상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 아주 성가시고 짜증 난다. 안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으며 나는 이 친구가 처음 나에게 사이코패스에 대해 말해준 장면이 생각났다. 그때는 쿠지가 아니라 피카였을 때지.
‘리, 내가 어제 수업을 들었는데,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감정의 전이가 있다더라? 그래서 상대의 표정을 자동으로 따라 하게 되는데 그게 감정적 공감이래.’
‘감정적 공감? 친구가 슬프면 나도 슬퍼지는 거?’
‘아니.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친구가 슬프면 나도 슬퍼지는 거는 소중한 사람이 슬퍼하는 게 요인으로 작용해서 소중한 사람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너의 바람 같은 게 너를 슬프게 만드는 거 아닐까? 그건 너의 감정일 텐데. 그런 거 말고 요인을 다 제거한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면 너랑 상관없고 네가 좋아할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길 가다가 넘어지거나 길에서 울고 있다고 해봐 그럼 너도 같이 표정이 찌푸려진다거나 하는 등의 그 사람의 표정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게 되는 거지.’
‘그거야 그렇지. 장례식장에서 침울해지는 것처럼?’
‘장례식장의 경우는 그 분위기라는 것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자 봐봐. 장례식장을 예로 들자면 네가 아는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해 봐. 그 경우에 네 지인의 슬픔으로 인해 슬퍼지는 게 아니라 그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는 지인의 사돈의 팔촌이 우는 것을 보고 네가 자동으로 마음이 찌릿하고 얼굴이 슬픈 표정이 되는 거야.’
‘그것도 그렇지. 나도 그래. 우리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잖아. 그때 엄청 슬펐거든. 장례식에 가면 그때 생각이 나서 슬플 거 같아.’
‘아니 그건 그 당시를 상상하며 그때의 감정이 자연스레 되살아나는 거잖아. 지금까지 네가 말한 건 다 너의 감정이지 타인의 감정이 인지 과정 없이 자동으로 전해지는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네. 그럼 진짜 심플하게 다른 사람이 울거나 웃으면 나도 아무 생각없이 그로 인해 비슷한 종류의 감정표현을 하느냐 그 말인가?’
‘뭐 쉽게 말하면 그런 거지.’
‘그 상황에서 딱히 생각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생판 모르는 이가 길가다 넘어지면 살짝 마음에 뭔가가 들어오는 것 같긴 해. 표정도 따라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신기하네. 난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감정적 공감이라는 게 정확하게 뭔지.’
그리고 며칠 뒤 안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리, 사이코패스 있잖아. 너는 잘 알 거 아냐. 그런 영화 많이 보니까. 근데 너나 내가 알고 있는 거는 사이코패스의 한 그룹이래.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지고도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야.’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뭔데? 피에 미친 연쇄살인마? 평소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그냥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이나 동물한테 기발한 방법으로 해코지하고 그것에 희열을 느끼는 인간적이지 못한 인간 아냐?’
‘그게 다 범죄자를 대상으로만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테스트하고 진단 도구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거야. 기질은 사람의 타고난 성향이나 정서적 측면을 이야기하는 거잖아? 그런데 봐봐. 사이코패스 진단 도구를 보면 난잡한 성행위, 범행, 남에게 해코지, 뭐 이런 행동들이 꼭 포함되어 있단 말이야. 나는 이게 애초에 범죄자만을 대상으로 연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흉악범죄자니까 당연히 범죄는 디폴트고 기본적으로는 생명존중 등 윤리 도덕의식이 없는 인간들인 거지. 만약에 이때 연구했던 사람들이 흉악범죄자들 100명 중 10명이 라면을 좋아하는데 김밥은 싫어한다는 걸 연구를 통해 알게 됐으면 라면을 좋아하는데 김밥은 싫어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범죄자에다가 난잡한 성행위, 남에게 해코지, 타인의 감정 무시 뭐 이렇게 말하고 다녔을 지도 몰라.’
‘그런데 라면을 좋아하는데 김밥을 싫어하는 사람은 범죄자 말고도 존재하잖아?’
‘그래. 그거야. 실제로 연구가 거기서 끝났다면 사이코패스적 기질은 사회악이라고 말 할 수 있지. 그런데 다른 연구자들이 같은 진단법을 가지고 범죄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한 거야. 그런데 범죄자가 아님에도 범행이나 난잡한 성행위, 동물 학대 기록 뭐 이런 행동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정서적 측면에만 해당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똑같이 느껴서 공감하는 게 결여되고, 감정을 격하게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이건 감정표현의 정도가 남들보다 덜하다는 정도겠지 뭐. 피상적 매력이 있고, 사람을 잘 다루고, 충동적으로 보이는 것 같은 건 같았단 말이야. 그럼 그 기질이 꼭 범행이랑 같이 간다는 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잖아.’
‘그거야 그렇지. 그래서 정치인, 변호사, 성공한 사업가는 사이코패스이다 라는 것이 나온 건가?’
‘그것도 거기서 나온 말인거 같아. 근데 그 문장은 정치인, 변호사, 성공한 사업가는 냉혈한에 타인을 생각 안 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그 위치까지 되었다고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그러는 거 잖아? 그러니까 리,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네게 이야기 하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뭐가?’
‘그 사람들은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사람들 짓밟고 올라섰다. 그래서 사이코패스일 것이다. 이런 의미잖아.’
‘그래서? 뭐가 멀어?’
‘아 후. 나 살짝 화가 나려고 해. 리. 요즘 생각 안 하고 살아? 아니 내가 지금 이야기를 하는 건 사이코패스적 기질, 그러니까 타고난 성향이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완전 같아 보여도 친 사회적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 한다는 거야.’
‘아, 그 말이었어? 내가 오늘 왜 이러지? 머리가 잘 안 돌아가.’
‘그래. 정말 이해했어? 뭐 나중에 다시 설명해 줄게. 아무튼. 그렇다니까? 그러면 이제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사람들은 무조건 범죄를 저지른다는 주장과 진단기준은 재고되어야 하잖아? 근데 왜 우리는 아직도 사이코패스는 연쇄살인마에 범죄자라고 알고 있는 걸까? 이 연구가 완전 최근 것도 아니야.’
‘그러게. 그건 그렇네?’
‘그래서 말인데 난 영국에 가야겠어.’
안은 원래 살아가는 것에 딱히 필요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와서 구체적으로 대화하길 원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안을 붙들고 겉핥기식이나 농담 따먹기의 비율이 100%로 구성된 대화를 하자고 한다면, 안이 가진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예의와 존중' 때문에 30분 정도는 열심히 들어주겠지만, 이후엔 감정을 느끼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래서 사이코패스 관련 주제를 계속 파고들어도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주제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것도 안에겐 별난 짓이 아니었다. 불도저 같은 안은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아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를 연구한다는 체크 교수가 있는 학교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안이 단지 사이코패스를 학자적 입장에서 연구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안이 학위를 마치고 뉴욕에 돌아온 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것이 나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리, 사실은 내가 사이코패스야. 내가 영국에 간 이유도 그거야. 뭐 확인하러 간 건 아니고. 난 이미 무의식중에 감정이 흘러들어온다는 것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리고 그것과 다른 내가 가진 정서적 측면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을때 내가 사람들과 다른 이유가, 특히 감정적 부분이, 사이코패스때문이라는 걸 알았어. 그냥 나같은 사람이 세상에 더 있다는 거니까. 확실히 알고 싶었어.’
‘사이코패스? 네가? 말도 안 돼. 너는 감정을 느끼잖아. 좋고 싫고 기쁘고 슬프고. 심지어 영화를 보면서 눈물까지 흘리잖아. 칠리가 죽었을 때도 엄청나게 슬퍼했잖아. 아쉬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며. 그런데 사이코패스라고? 아무리 친 사회적이라고 해도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못 느끼잖아. 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걸?’
‘진정해. 사이코패스도 감정을 느껴. 사람들처럼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게 일체화된 시스템이 아닐 뿐이야. 좋고 싫고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뭐 이런 감정들이 들긴 들어. 그런데 그걸 느끼는 건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느끼지 않을 수 있어. 물론 느낄 수도 있지. 그리고 표현이라는 것도 감정과는 별개야. 진짜 좋아서 좋은 표현을 할 수 있지만 안 할 수도 있어. 그리고 자동적인 게 아니라 표현의 방식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도 있어. 사람들은 그게 불가능하다 보니까 슬프거나 기뻐야 할 상황에서 감정표현이 없으면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그리고 칠리가 죽었을 때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슬픔보다는 아쉬움이야. 이제는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발생하는 아쉬운 감정.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내가 지금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야. 나한테는 자동적인 게 아니라고. 사실 나는 사람들이 다 나처럼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 웃고 울고 하는 줄 알았어. 나는 혼자 있을 땐 이런 것들이 전혀 밖으로 나오지 않아.’
‘그러면 충동적인 건? 동물 학대는? 너는 동물을 사랑하잖아. 당장 칠리만 봐도. 엄청나게 좋아했잖아.’
‘리, 네가 언제 칠리를 그렇게나 생각했다고 자꾸 칠리 이야기를 하는 거야. 재밌네. 생각해봐. 나랑 친구가 되고 초반에 잘 생각해보고 결정한 거 맞냐고 제일 많이 확인했던 사람은 너인 거 같은데? 충동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거 아냐? 그리고 내가 이야기했잖아 예전에. 동물 학대는 범죄자를 기준으로 사이코패스적 기질 진단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파생된 오류라고. 칠리는 개지만 난 정말 내 친구라고 생각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데 그거랑 무슨 상관일까. 사이코패스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개나 다른 동물들을 생명으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많아.’
‘그렇지만 너는 항상 말하잖아. 모든 것을 고려해서 선택을 빠르게 한 것일 뿐이라고. 넌 실제로 그렇고. 내가 세 가지를 생각할 시간에 이미 많은 것을 고려해보고 선택하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생각지 못하는 부분이 있나 너한테 항상 물어보는 거고. 그런데 충동적이라고?’
‘네가 한 말을 잘 생각해봐. 네가 나를 잘 알지 못했을 때 네가 잘 생각해보고 결정 한 거 맞느냐고 물어본 게, 내 결정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충분한 고려 없이 결정했다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자주 내뱉은 거 아냐? 이후에는 나의 선택의 과정과 결과를 보고 충동적이 아니었구나 인정을 하게 된 거고. 그거랑 똑같이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많은 부분을 단시간에 고려해서 빠르게 판단을 하는 것을 타인이 볼 땐 얼마든지 충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그럼 공감의 결여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네가 나랑 같이 웃고 슬퍼하고 했던 것은 다 거짓이란 말이야?’
‘거짓이 아니지. 그것도 이야기했잖아. 감정적 공감. 감정적 공감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거랑 달라.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려면 일단 그 사람의 감정을 알아야하잖아. 그 절차엔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감정적 공감절차, 하나는 인지적 공감절차야. 사이코패스는 감정적 공감절차가 안 되는 거라고. 네가 내 앞에서 운다고 내가 인지 과정 없이 자동으로 마음에 그 감정이 전달되거나 내 표정이 슬퍼지는 일은 없어.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하지만 그걸 못하기 때문에 난 네 감정을 알기 위해 다른 정보들을 사용해. 너의 상황이나 감정표현방식 같은 거. 그리고 네가 기뻐한다면 내 소중한 친구가 기쁘니까 나도 기쁜 거고. 슬퍼한다면 내 소중한 친구가 슬퍼하니까 나도 슬픈 거고. 그걸 표현하기에 너는 내가 공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고. 그런데 이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한테나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게 되는 거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좀 달라. 타인의 감정선에 공감해주는 건 예의이고 매너잖아. 인간관계에 있어서. 눈앞에 사람이 슬퍼하는데 내가 당장 기쁘다고 마냥 기쁨만 표현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거잖아. 반대로 내가 당장 슬프다고 타인에게 내 슬픔을 그대로 표현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는 거고. 함께 하는 사람의 감정을 알고 적절한 표현을 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난. 그러니까 사람들과 나와의 다른 점은 이거야. 사람들은 자동으로 전달되는 것이 있기에 나처럼 여러 가지 데이터를 사용해서 타인의 감정을 추론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어느 정도 자동으로 전달되는 게 있으니까. 그것을 인지하기만 하면 타인의 감정을 알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리고 보통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상대가 기뻐하면 나도 그 감정이 전달돼서 상관없는 사람임에도 무의식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가게 되어 있다고 나는 전해 들었어. 그러니까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잘 들어봐, 리.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하려면 그 사람의 감정을 알아야하는 거 잖아. 그 절차에서의 방식이 다르다는 거지.’
‘네가 다른 사람이랑 다르다고 생각하긴 했어. 내가 항상 이야기했잖아. 넌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맞지. 근데 그게 정서적으로 이런식으로 완전히 달라서 줄은 몰랐던 거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네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잘 알아. 떨리고 무섭고, 당황해야 정상인 상황에서도 너는 아무렇지 않다고 항상 이야기했잖아.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고. 그렇지만 동시에 너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잖아, 넌. 나는 그냥 네가 괜찮다고.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줄 알았어. 실제로는 떨리고 무서우면서도. 우리 걱정시키기 싫어서. 왜냐하면 넌 나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살펴주고 생각해줬잖아.’
‘하하하하하하하……. 그런 상황이 난 지금까지 이해가 안 갔거든? 왜 진짜 괜찮다는데 아무렇지 않다는데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물어볼까? 내 말을 믿지 않는 건가? 솔직히 좀 귀찮았어. 왜냐하면 떨리고 무섭고 당황해야 하는 상황은 보통 시험이나 발표. 아 그리고 저번에 길에서 에밀이 쓰러졌을 때도 있었구나. 하여튼 그런 상황에선 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방해만 될 뿐이기 때문에 느끼지 않는 걸 선택을 한 거야. 그럼 진짜로 감정이 없어지는데 그래서 나는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 이야기하는 거거든. 그런데 내가 감정처리가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너나 내 주변 친구들이 그렇게 응원하고 다독였던 이유를 알겠더라고. 너희들은 감정을 없애지 못해서 내가 너희들을 위해 괜찮은 척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렇지? 그리고 너희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나도 너희를 소중하게 생각해. 그래서 너희들의 감정을 잘 살펴주는 거고. 당연한 거지 그것은. 그리고 내 감정을 잘 알 수밖에 없는 건 감정이 자동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인지가 먼저 되어야 느낌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다른 사람들이 물어볼 경우 정확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거지.’
‘머리로는…….’
‘응?’
‘머리로는 이해가 가. 이해가 가. 그런데 그 사이코패스라는 게……. 그 이미지가 있잖아.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래서 자꾸 안 너는 범죄자가 아닌데 어떻게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는 거지? 라는 생각으로 돌아가…….’
‘알아. 이해해. 습관의 일종이지. 생각하기 피곤하면 그냥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뭔가 다르게 태어났다고만 생각해.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가지고 생각한다면, 너는 부정적인 이미지, 그걸 계속 들어왔고, 그게 신념 속에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자연스러워 진 거야. 그래서 그걸 나에게 적용시키려면 힘들거야.’
나도 안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안을 한 번에 인정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안을 여전히 내가 만들어낸 안의 이미지에 넣어버리기 일쑤이다. 나도 이런데 하물며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사람들에게 친 사회적 사이코패스의 존재에 대해 알린다고 해서 안에게 좋은 것은 없다. 오히려 피곤해질 뿐. 안과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는 돈, 명예, 타인의 인정 등 대다수의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들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들이 이미 그런 것들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안이나 내가 그런 것들이 없었던 시절에도 딱히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았으며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았던 것으로 보면 우리는 우리가 그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가 안다. 굳이 이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 ‘당해보지 않아서 그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거야’라는 식의 잔소리를 많이 들을 뿐인데 그런 자들의 인정은 바라지 않는다. 그들이 인정을 않는다고 우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친 사회적 사이코패스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안은 여전히 안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안은 이것을 잘 알 텐데 왜 스턴의 만남 요청을 수락했는지 아주 답답하다. 박사도 안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니 연락을 한 것이겠고, 그런데도 위험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해 못했을 게 분명한데, 안은 왜 굳이 다시 만나서 대화를 하려는 것일까?
나는 왜 이런 것들을 안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은 못했을까? 안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이야기했다. 항상. 자기 자신 만큼 자신의 생각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 중요하기에 실수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면 물어보는 것이 맞다고 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것도 나의 구습이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구절이 나에게 적용되려면 한 세월이 더 걸릴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단 안의 입장을 들어본다면, 내가 생각하기엔 위험성을 감수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이 일에서 안이 손을 떼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안의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할 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