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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Jung Aug 21. 2021

[제6장] 지극히 인간적인 사이코패스를 위하여

제6장 스턴

이 글을 비롯한 본 매거진에 담긴 글은

[소설]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입니다. 



Part 2.


[제6장] 스턴


    “안녕하세요. 서스 스턴입니다.”

    “어서 오세요. 스턴 박사님. 안 그리핀입니다.”

    “교수라고 불러주세요, 그게 익숙해서.”

    “네, 교수님.”


    스턴박사는 입을 최소한으로 벌려 말을 한다. 입술이 얇기도 얇아 그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마치 복화술을 하는 듯하다. 그것은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사람과 같은 공간, 같은 소파에 앉아 있다는 사실 만큼이나 특이하다. 그렇지만 지금 드는 감정의 대부분은 잿빛 창문을 간헐적으로 톡톡 두들기는 빗줄기에서부터 온다. 소리. 색감. 향. 분위기. 나는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한다.


    “오시는 길은 평안하셨는지요?”

    “평안이란 단어를 쓰는 것을 보니 크리스천인가요?”


    오전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픽업 대에서 기다리던 중 바닥에 대충 구겨져 버려져 있던 영수증이 생각난다. 그 처럼 스턴의 인상이 한껏 뭉개졌다.


    “신념의 바탕만은 그렇습니다.”


    박사의 얼굴이 다시 한번 구겨진다. 구겨짐의 이유는 실제로 무엇일까. 신념과 학문으로서의 종교. 난 그 둘의 구분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교회를 섬기고 계시는가요? 제가 뉴욕에도 아는 목사님들이 계시거든요. 퀸스 교회에 초청받아 강연을 하러 간 적이 있어요.”


    부정적 감정을 표현해내던 스턴박사의 눈썹이 이젠 긍정에 한몫을 한다. 같은 씰룩거림인데 다른 얼굴 부위와의 조합으로 전혀 다른 감정의 표현이 되는 것이 신기하다. 난 사람들의 그것이 항상 신기하다고 생각해왔다. 감정의 표현. 나의 것은 딱히 정해진 언어가 없다.


    “종교인은 아닙니다. 믿어지는 것에 따라 살 뿐이지요. 그래서 이곳을 찾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스턴박사의 긍정적 감정표현에 살짝 웃으며 대답한 후, 얼른 주제를 끌어온다. 종교와 신념에 대한 이야기가 이 만남의 주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예전과는 동네가 많이 발전해서 잠시 착각한 것뿐입니다. 조금 지체된 것은 사과하지요.”


    스턴 박사는 크흠거리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오늘은 시간에 쫓기고 있지 않으니 원하시는 대화 나누고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차 한잔하시겠어요?”

    “음… 아닙니다. 됐어요.”


    스턴의 표정이 또다시 바뀐다. 콧등을 따라 검은색 반무테 안경이 움직인다. 고도로 계산된 게 아니라면 생각이나 감정의 무브먼트가 그대로 표현되는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곧 ‘뭐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이야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뒤따른다. 이 생각을 하면 항상 이 흐름이다. 세상엔 자신의 기준에서의 선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하하 교수님, 제 작업실에 혼자 방문하겠다고 하시기에 제가 생각한 것과는 다를 것이라 기대했는데요! 얼마 전 지인분이 오렌지주스 한 박스를 주셨는데 제가 주스를 즐겨 마시지 않아 그냥 놔둔 것이 있어요. 직접 개봉하셔서 드시겠어요?”

    “아… 저…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를…”


    난 일부러 분위기를 풀려고 장난스러운 말들을 던졌지만, 진담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면 난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긁는 것을 딱히 즐기지 않는다.


    “농담입니다. 교수님. 기분이 나쁘다니요.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편히 계셔도 됩니다. 원래 이곳은 여러 사람이 방문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니까요. 물론 모두 저 문을 본인이 통과해서 돌아갔습니다.”

    “아… 그런 게 아닙니다.”


    얼른 뻔한 문장들로 분위기를 수습했는데, 편히 계시란 문장에 표정이 풀어진 스턴박사를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화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기보단 한 문장 한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지루함이 밀려온다.

    나는 장난을  좋아한다. 대화에서 장난은 스타카토 같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분위기가 무거운 대화에서는. 그렇지만 그것들을 설명해야 하는 것은 무척 싫어한다.

    듣는 이가 장난이라는 것을 빨리 파악해줘야 싸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을 피할  있다. 나는 이것을 장난의 결이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나와 장난의 결이 같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것은 리와 스턴박사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나와 장난의 결이 같지 않다. 이 이야기를 리가 듣는다면 아까 구겨진 영수증 같던 스턴박사의 표정을 똑같이 짓겠지. 그건 두 번째 공통점이 될 것이다. 이걸 리에게 또 이야기한다면. 재밌어질 것이다.

    지금 입가를 맴도는 장난스러운 문장은 스턴 박사에게 정신적 압박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나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스턴박사가 경미한 고통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어느 정도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


    “아, 한 명은 아니에요. 유감스럽게도.”

    “에?”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스턴박사를 보는 것은 실제로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아,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 친구가 주량이 엄청 약한데 위스키 한 모금을 마시고 다른 친구 등에 업혀 나간 적이 있습니다. 술을 참 좋아하는 친군데 몸에서 받질 않으니 유감이지요.”

    “허, 그렇군요. 예…….”


    예정되었던 미래가 현재가 되고 과거로 이어진다. 삶은 때론 참 뻔하다.


    “이제 분위기가 좀 풀린 것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제겐 예상치 못한 이메일이었습니다, 교수님.”


    저렇게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고 그것을 자동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 참으로 편한 삶이다. 물 흐르듯 상황에 몸을 맡기고 감정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으니 표현 방식을 따로 정해야 하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기계나 사람이나 자동화란 편한 것이다.


     “예상치 못하셨다고요. 그렇게 위험한 말을 하고 다니시면서 제가 연락을 하리라는 것을 예상치 못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사실이었다.


    “저는 세상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일도 하고 있고요.”

    “이 일이라면?”


    뻔한 흐름이었다.


    “사이코패스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자는 캠페인이요. 그들은 다른 타인에게 무조건 해코지를 하게 되어 있어요.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미리 걸러 고립시켜야 해요. 그들에게 주도권을 줘서는 안 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박사님 지금 제 공간에 와 계시지 않습니까? 이 상황에서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그럼 지금 박사님은 위험에 노출된 상태이겠군요?”

    “그쪽이 사이코패스가 맞다면 그렇겠죠!”


    스턴 박사가 소리쳤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저는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죠?”


    다시 또 그런 흐름.


    “질문해보십시오.”

    “네?”


    아.


    “그러려고 오신 거 아닙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직접 진단해보시라고요.”

    “그것은 뇌 검사도 통해야 하고 절차가…….”

    “박사님, 솔직해지십시오. 박사님께서는 사이코패스의 정서적 요인에 해당하는 범죄자들을 데리고 뇌 검사를 진행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저와 대머박사님이…….”

    “예, 박사님과 대머박사님이요. 그리고 그 검사 결과의 공통점을 사이코패스의 뇌라고 결론 내셨지요?”

    “그 흉악 범죄자들의 뇌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사이코패스의 뇌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사이코패스였으니까요!”


    갑자기 난 큰 소리에 나의 고막이 잠시 닫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갑작스러운 큰 볼륨엔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다시 정적이 흐른다.


    “아, 거, 참! 제가 그 심리연구의 기본까지 여기서 설명해야 합니까? 그리고 교수라고 불러주세요! 심리학을 공부하셨다고 하셔서 그쪽으로는 기대하고 왔는데 참 실망스럽군요!”

    “예, 교수님. 실망하셨다면 유감이네요. 그런데 제가 가진 의문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사이코패스의 정서적 요인에 해당이 되었지만,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흉악범죄자가 아닙니까? 그들이 흉악범죄자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런 의문점을 박사님께 말씀드린 연구자가 정말 아무도 없었나요?”

    “아, 그런 당연한 것은……. 아마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저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사이코패스의 정서적 요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으로 진단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크흠……. 진단을 하려면 과거 범죄기록이나 어린시절 비행기록도 필요합니다.”


    아.


    “박사님, 제가 다시 한번 말씀 드려야합니까? 박사님께서 범죄자들을 데리고 연구를 했기 때문에 범죄기록이  사이코패스의 진단 요건에 포함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박사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처럼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자들이 실제로 사회악이기 때문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사이코패스는 태생적으로 악합니다! 살면서 언젠간 범죄를 저지릅니다!”

    “예, 그렇군요. 저는 범죄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박사님께서 오늘 제가 사이코패스의 정서적 요건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되시더라도, 박사님이 제 작업실에 계시는 동안 제가 박사님께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면, 저는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지는 못하게 되는 거네요?”

    “네?”


    아.


    “제가 오늘 박사님께 사이코패스로 진단 받는 길은 정서적 요건을 박사님께 인정받은 후 이 자리의 유일한 타인인 박사님께 해코지를 하는 방법 뿐이지 않은가요?”

    “아니, 그런, 무슨…….?”

    “아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제가 사이코패스라면 박사님은 위험에 노출된 상태라고요. 이곳은 제 작업실입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박사님,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않습니까?”

    “사이코패스들의 삶은 뻔해요.”

    “그렇다면 범죄를 저지른 적도, 비사이코패스들도 종종 끼치는 타인을 향한 피해 그 이상의 피해는 끼친 적도 없이 생을 마감한, 박사님 기준의 사이코패스의 정서적 요인에 해당하는 사람을 발견한다면요?”

    “그렇다면 제가 틀린거겠죠. 그런데 제가 만난 사이코패스들은 다 범죄자였어요.”

    “네, 참……. 범죄자들만 찾아다니셨으면서……. 억지네요. 꼭 저보다 오래사시길 바랍니다.”

    “예?”

    “저보다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요.”


    박사는 갑작스런 덕담에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전 사이코패스의 정서적 요건에 해당이 됩니다. 꼭 제 장례식에 오셔서 제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

    “아니, 그러니까 본인이 계속 사이코패스라고 주장하시는거에요? 지금?”

    “그렇습니다.”

    “아니, 사이코패스의 정신머리를 잘 모르시나본데, 냉혈함, 충동성, 도덕심 및 이타심 결여. 뭐 이런 것들 이외에도 여러가지 전부 다 해당되셔야합니다.”

    “감정조절, 신속한 판단에는 해당이 되고요. 도덕심이나 이타심이란 것은 사람들의 기준이 다 달라서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먼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네요. 그 이외의 박사님이 언급하신 것들도 다 해당이 됩니다. 그럼 어떤 것 부터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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