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잘 해내고 싶을수록 도망간다
상담교사로 살아남기
여느 때와 같이 학생들을 상담하던 중 한 학생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올해 품행이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사이가 멀어졌고, 걱정이 된다며 눈물을 보였다.
학생을 상담하고 난 후 워낙 빈번한 주제인 대인관계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보면 모든 상담 주제가 관계문제에 속한다. 혼자 남게 된 인간은 생존만 고민하면 되지만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반응해야 할지 시시각각 고민해야 한다. 그 대상이 부모든, 친구든, 직장동료이든 간에 관계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있다.
여학생들은 특히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여학생에게 친구들이 등을 돌린다는 것은 어쩌면 사회적 죽음을 뜻한다. 관계 지향적인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학교에서 고립되는 것을 훨씬 고통스러워하며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초등학생 남학생들은 모바일폰이 생기면 게임을 먼저 설치하려고 하지만 여학생들은 카톡이나 SNS를 먼저 설치하려는 것만 보아도 여학생이 관계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유동적이라서 늘 내 곁에 있을 것 같던 친구와도 언제든지 멀어질 수 있으며 뜻밖의 관계에서 친한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다. 결국 관계라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인 것이다. 그래서 관계는 너무 잘하려고 하면 오히려 도망쳐 버린다. 잘 해내려고 할수록 뭔가 오버하거나 어색하게 행동하게 되고 상대방에게 쩔쩔매게 되면서 오히려 한 인간으로서 매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학생이 친구가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 다르면 더 이상 친구로 남기 힘든 면도 있다. 학생은 기억 속 친구의 모습이 그립겠지만 지금의 친구는 과거 내 기억 속 모습과는 다른 존재이다. 변해버린 친구에게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좋은 친구사이로 지내자고 말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의 행동과 마음까지 내가 통제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친구가 잘못한 것은 아니며 학생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삶의 물줄기가 바뀌어 서로 다른 길로 향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삶이 흘러가는 것처럼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어떨까 한다.(물론 학생들에게 이런 식으로 상담하지는 않는다.)
시시각각 바뀌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내가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남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에 대해 고려하기보다는 스스로 괜찮은 사람임을 먼저 인정해 주는 것이 좋다. 어떠한 환경, 사람 속에 있더라도 스스로 괜찮은 사람임을 믿어주는 것.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