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흐르는가?
영화 얼굴은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만, 나는 폭력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떻게 흘러가는가라는 질문에 집중해 영화를 해석해보았다. 40년 전 청계천 의류공장, 무리 안에서도 가장 약자였던 시각장애 전각 장인 임영규와, 공장에서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던 아내 정영희가 있었다.
공장의 사장 백주상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면에는 직원들을 성폭행하고 그 사진들을 수집하는 끔찍한 행위를 일삼았다. 백주상은 이 세계(청계천 의류공장)의 왕이다. 그는 사장의 권력으로 튀틀린 성욕을 해소하며, 폭력을 위에서 아래로 흘려보낸다. 폭력은 대체로 위계적으로 흐르는데, 그는 성폭력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종종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폭력이 아래로 흐르며 재생산 되는 모습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백주상이 술자리에 임영규를 불러, 도장을 즉석에서 파보라고 요구하고 이를 거절하자 은근히 폭력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 그리고 임영규가 그의 비위를 맞추는 모습은 기이하면서도 먹먹했다.
임영규에게 백주상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는 자신의 아내를 짓밟은 가해자이자, 동시에 자신이 청계천에서 도장을 팔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었다. 임영규는 무바지한 폭력의 가해자였던 백주상이 찍어준 사진을 현재까지도 자신의 사무실 한 켠에 간직하고 걸어놓았다. 임영규는 자신의 결핍과 열등감 때문에 백주상이 명백한 폭력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백주상과 동료들에게 향해야 할 분노는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였던 아내 정영희에게로 흐르고 만다.
백주상에게 성폭행을 당한 직장 동료 역시 자신의 분노를 정영희에게 쏟아내며 뺨을 때린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는, 자신을 도와주고자 한 가장 약한 대상에게로 향하게 된다. 이렇듯 폭력은 위에서 아래로,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흐른다.
1970년대 고도성장 속, 사람들은 여유가 없었다. 여유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은 폭력의 표적이 된다. 폭력은 권력에서 시작해, 침묵과 왜곡된 관계 속에서 끊임 없이 흘러가며, 끝내 가장 보호 받아야 할 이들에게 쏟아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