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재발간 되었다고요?!
내가 아주 오랫동안 어렵게 모은 시리즈 사진집이 있는데 그건 바로 랄프 깁슨(Ralph Gibson)의 블랙 트릴로지(Black Trilogy)다. 이 트릴로지는 랄프 깁슨이 작가생활 초창기에 스스로 독립 출판사를 설립하고 발행한 세 권의 시리즈물이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이 삼부작들의 내용은 내가 추구하는 사진의 롤모델이기에, 일일이 긴 말을 할 수가 없는 정도며 그렇기에 힘들게 이 책들을 구하게 되었다. 이 사진들을 보면 심장이 내려앉는듯한 충격과 함께 정말로 정말로 열심히 작업을 해야겠다는 반성의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Days at sea], [DEJA-VU] 그리고 [SOMNAMBULIST] 이렇게 세 권으로 이루어진 삼부작은 작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후 꽤 구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대로 나는 작가의 다른 책들을 눈에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 컬렉션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늘 마음에 걸리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초기 삼부작의 책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래되고 애초부터 보관상태가 좋지 못한 상태의 책을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펼치면 제본이 떨어져 나가지는 않을까 살살 달래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여간 마음 가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저번주, 부산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부산에는 고은사진미술관이 있고, 고은사진미술관은 랄프 깁슨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던가!
혹시나 작가의 다른 책들을 구할 수 있는지 꼭 알아봐야겠다며 내려간 부산에서, 나는 다른 일정들 때문에 정말 신기하리만치 새카맣게 미술관 방문에 대해 까먹어 버렸고, 서울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은사진미술관의 홈페이지를 열어 보았더니 이럴 수가? 블랙 트릴로지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팔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2017년 프랑스 전시 때 다시 간행된 것을 고은사진미술관이 번역을 더해 펴낸 것이었다.
이야 이런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어찌어찌 즉석에서 구입하진 못했으나 온라인으로 주문을 넣고 책이 잘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어떤 사진이길래 이렇게 호들갑이냐고요?
이 사진 한 장 보시겠어요?
심장이 쿵쾅거린다면 이미 여러분도 깁슨 씨의 팬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