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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Oct 13. 2023

독서모임 07. <스토너> - 존윌리엄스

아미치 북클럽 <지금 여기, 내 마음>

북클럽지기의 책소개글)

1965년 미국에서 발표된 <스토너>는 출간당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출간 후 50여년이 흐른 뒤, 작가가 세상을 떠난지 20년 뒤에 유럽에서부터 입소문을 타고 벡스트셀러가 된 역주행의 신화를 쓴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너무나 평범하고 고요한 삶을 살아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삶을 억제된 슬픔과 고독감으로 묵묵하게 견뎌내는 이야기가 담담하고 기품있는 문체로 서술됩니다. 

삶과 사랑, 조직 속의 한 개인의 존재와 문학의 의미, 그리고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까지도 아우르는 이 소설이 내포한 주제는 매우 깊고, 넓습니다. 

주인공 스토너의 삶은 그 무엇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감정적으로 깊이 내려가면서도 결국은 묘하게 위안을 받게되는 느낌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역시 문학작품을 통해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참 오랫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여러나라에서 발간된 스토너의 책 표지들


<평점>

별점 5 : 3명

별점 4.5 : 3명

별점 4 : 1명

별점 3 : 1명


<소감>

- 이 책에 대해서라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내 인생책으로 어디든 소개하고 싶은 책이고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도 깊이 있게 빠져들어 읽었다. 스토너의 삶을 생각하면 '용기'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런 삶을 선택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해결하기 힘든 문제 앞에 서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 나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편이다. 내가 내 삶을 납득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설득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토너는 자기 앞에 펼쳐진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 스토너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슬픔을 느꼈다. 책을 읽으며 그 슬픔에 감정적으로 빠져들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최근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책 속에 펼쳐지는 영문학에 대한 지식이나 강의 속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졌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것도 좋은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삶의 환경을 바꾸려고 하는데, 스토너는 환경이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하고 선택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때로는 주인공의 아픔과 불행을 보면서 내 삶은 그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며 위로받기도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스토너는 자신의 삶조차 관조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스토너의 삶의 태도는 어떻게 바라보면 비겁하고 무책임해보기도 하지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자세가 나와 비슷하게 닮아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 스토너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마치 책 속 이야기가 칼라가 없고 명암만 있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주인공의 답답함이 나를 밑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결국 내가 느낀 답답함은 나 역시도 스토너의 상황을 겪는다고 해도 드러내고 표현하기보다는 비슷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서, 너무 잘 알것 같은 마음이었기에 답답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 나는 스토너와 삶의 방식이 반대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이 더 힘들게 다가왔다. 그런데 책을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그가 삶을 담담히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 위로를 받았다. 자기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고 위로가 되면 가치있는 삶인데, 나의 잣대로 스토너를 판단했던 것 같다. 죽음을 앞둔 스토너가 그가 겪어온 모든 관계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완전할 리 없는 자신의 첫 책을 어루만지며 만족하고 받아들이고 평화로운 모습을 보며 처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힘들다 느꼈던 생각들을 모두 위로받았다.


- 소설 속 인물들에게 공감하는 것이 어려운 편인데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지금보다 어릴 때, 30대 정도 까지는 이 책을 읽었어도 잘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을 것 같은데 지금의 나이가 되어 읽어서인지 위로룰 받았다. 스토너는 어쩌면 비겁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자신의 방식대로 사는 삶에 있어서 성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문장을 떠올렸다. ‘나에게 믿을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고통을 고통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미 고통이 아닐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  


- 스토너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고 보통의 사람이라고 여겨지는데, 책 속의 묘사가 그런 스토너를 폄하하는 느낌이 강해서 의아했다. 여러가지 서사를 품고 있는, 대단하고 스펙타글한 삶을 오히려 담담하게 표현한 것이 이 소설이 가진 힘인 것 같다. 건조한 사랑을 하는 건조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작은 감정을 크게 폭발시키보다 여러가지 격랑을 겪는 인물을 고요하게 묘사했다. 스토너는 자기객관화게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보여지는데, 요즘의 시대에서는 새롭게 보이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출간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책의 평가가 좋지 않았던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디스>

이디스의 입장에서는 스토너에게 한 행동들이 그를 향한 소통의 시도, 이해해달라는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스토너는 이디스에게 있어서 너무나 무심하고 비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디스와 스토너는 삶의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에게 맞지 않는 관계였을 뿐이다.


<로맥스 교수, 찰스 워커>

로맥스는 누구나 갖고 있는 단 하나의 문제점이나 트리거가 될만한 어떤 부분이 스토너에 의해 건드려진 인물이다. 그가 스토너를 싫어하고 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스토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문학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었을텐데, 배움에 대한 기쁨과 소중함을 훼손시킨 것으로 여겨지는 워커와, 그의 편을 드는 로맥스와 학자로서의 태도가 맞지 않았으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늘 관망하는 자세인 스토너가 유일하게 분노감정을 드러내고 행동을 보인 인물이 워커였다는 것은 스토너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영문학, 학문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로맥스는 앞장서고 나서서 워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다. 문제를 그런식으로 노력하고, 애써가며 해결하는 방식은 스토너와 다르다. 스토너는 관계나, 삶의 문제에 있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방식이 불편했을 수밖에 없다. 


<핀치>

매우 깊고 편안한 우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관계인 것 같다. 


<매스터스>

짧게 등장한 인물이지만 스토너가 살았던 그 시대의 젊은이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스토너가 갖지 못한 부분들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레이스>

이 소설에서 가장 불행하고 안타까운 인물이다. 그녀와의 관계가 무너질 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스토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가 결국 (스토너처럼) 삶의 빛이 되는 사랑과, 의지가 되는 무엇인가를 찾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캐서린>

흑백의 무채색인 삶을 사는 것 같은 스토너가 그녀와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가장 따스하고 편안해보였다. 그가 가장 외롭고 고독한 순간에 시작된 사랑이었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으로 읽혔다. 



- 사실 관계로 인해,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이게 되면 오히려 상처받을 일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혼자라는 생각은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스토너의 삶의 방식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가 있다면 눈을 감고, 차단하려고 하는 편이다. 삶의 기본값을 행복으로 두면 행복하지 않을때 힘들지도 모르지만, 기본값이 외로움이라면, 가끔 외롭지 않을 때가 있더라도 괜찮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된다고 생각한다.  


- 삶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일 앞에서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 수 없는 순간은 사실 누구에게나 많다. 그런 순간, 내가 참고 굽어지는 것을 택하기도 하고 꽉 막혀버리지 않게 조그만 길이라도 만들어 소통하며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스토너는 그렇지 않았다. ) 


- 스토너처럼 삶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내면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내가 생각하는 정의나 도덕적 기분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나에게 부당한 일이 생기면 참지 않았고, 타협이 어려웠었다. 그러나 요즘은 유연성과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겨 때로는 참기도 하는 것 같다.  


- 사람을 많이 대하는 일을 하기 전까지는 내가 바라는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관계에 있어서 원만한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회생활, 결혼생활을 하면서 나의 바램이나 요구를 표현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상대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누구나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에 부딪치면 상대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 말을 꺼내어놓기보다는 입을 다물고, 거리두기를 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한다.  


- 사람은 결국 항상 혼자인 존재라고 느낀다. 완벽하지 않은 과거일지라도 과거의 내 행동과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그 무엇을 선택하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모든 일들에 다른 측면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이듦의 장점이라고 여긴다. 관계에 있어서 내 생각이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사회적 가면을 쓰는 일에도 좀 능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 예전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게 되면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싶어했다. 그런데 살면서 누구나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관점이 있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입장을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 입장과 나를 설명하고 변명하기보다는 입을 다물고 고요히 흘러가도록 내버려둘 때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 스토너를 이해하기도 했다.)


<우리가 선택한 문장들>


p250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싀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


p262

스토너는 갑작스레 감정을 터뜨린 그녀의 모습에 당황해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일이 아닙니다."


p272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350 

이제 자신은 예순 살이 다 되었으므로 그런 열정이나 사랑의 힘을 초월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어리석고 맹목적이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 '찻잔을 잘 다루었다'라는 문장이, '다퉜다;로 잘못 읽히는 경험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스토너는 다투어야 할 때 다투지 않은 사람. 회피하는 사람. 다투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잘 다루지 못했고, 오롯이 자신의 삶을 지킨 사람이라고.  


- 사람은 누구나 비난을 받으면 방어책이 필요하고, 타인이 나를 비난하면 방어할 준비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쩌면 스토너는 스스로를 비난하며 살아간 사람은 아닐까? 누구나 스스로를 비난하며 받아들이는 삶을 살다보면, 어쩌면 매일매일 스스로가 비겁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을거라고 믿고, 인정하는 삶을 살게되지 않을까.


 - 스토너가 모든 것을 받아들인 것, 드러내놓고 다투지 않은 것도 타인을 비난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결국 스토너는 그 누구도(자기 자신도 포함하여) 비난하려 하지 않고, 참는 것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낸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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