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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Dec 30. 2023

엄마는 이런 말들을 했어.

엄마에게 쓰는 편지 

언제부터인지 지금 내 나이의 엄마에 대한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나처럼 여전히 불완전하고 가끔은 슬프고 가끔은 외로웠던걸까요? 그 생각을 하면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였던 그 사람이 안쓰러워집니다. 그래도 내게는 언제나 다정하고 따뜻했던, 커다란 우주같은 그 사람이 내게 해준 말들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편지를 써봅니다. 


Afternoon  Stroll - Pino Dangelico Daeni



“무슨 일 있니?”  
   

전화를 받고, “여보세요~” 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엄마가 물었었어. “나영아, 힘들어? 왜그렇게 기운이 없어... 무슨 일 있어?” 전화기 너머 엄마의 그 말에 나는 또 눈물이 떨어졌었지. 어떻게 알았을까. 밤새도록 한숨도 못자고 울기만 하던 밤을 보낸 다음 날이었었는데. 밤새 울먹이던 날이었는데. 엄마는 어쩜 그렇게, 내 목소리만 듣고도 나를 잘 알아차릴 수 있을까.      


다 커서 어른이 되어도 힘들면, “엄마 보고싶다” 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막내딸과 텔레파시가 통하는걸까? 나는 애써 목소리를 높여, 기운을 내서 “엄마, 무슨일이 있기는~ 나 잘 지내지. 엄마 보고싶어서 그러지!”라고 답을 하곤 해.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고작 그렇게, 짐짓 괜찮은 척... 엄마의 걱정을 날려주는 일 뿐일테니까. 

    

“엄마처럼 살지 마.”     

엄마,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낸 딸이었잖아. 내성적이었고 친구가 별로 없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해주는 간식을 먹으면서 숙제를 하고, 엄마 옆에서 책을 읽곤 했지. 엄마는 늘 라디오를 틀어놓고 뜨개질을 하거나 가계부에 일기를 끄적이곤 했었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부엌에 난 작은 창으로 노을을 바라보면서 “오늘은 또 무얼 해먹지...”라고 고민하던 엄마의 뒷모습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말했었어.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매일 저녁 반찬 걱정하는 여자로 살지 말고 너의 일을 하라고. 여자도 직장을 가지고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나는 끄덕이면서도 조금 불안하기도 했던 것 같아. 엄마는, 엄마가 있는 자리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구나. 엄마는 지금 이 삶을 그냥 견디고 있는거구나...라고. 그런데 매일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늘 풍성했고, 사랑이 넘쳤고, 삼남매가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면서 엄마의 표정은 금새 뿌듯함으로 가득찼어. 그럴 땐 또, 엄마는 엄마로 사는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아서, 마음 한켠으로 마음을 쓸어내리며 안심을 했던 것 같아.     


“엄마 도망가도 되니?”     

엄마, 그날 왜그랬어? 아무리 아빠가 엄마몰래 집을 저당잡히고, 사업이 무너져 휘청이게 되었더라도, 그래도 언니도 오빠도 없는 그날 그 집에서, 왜 나한테만 그런 말을 했어? 푹 쓰러져 엄마 치마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렸던 날의 기억이 참 오래도록 남아있어. 엄마는 너무 야무지고, 무엇을 해도 다 잘해내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난 더 겁이 났던 것 같아. 우리가 아니면, 아직 덜 커버려 아직 아이였던 나만 아니면, 엄마는 이 집을 떠나 혼자 너무나 잘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인 것만 같았어.     


떠나고 싶었지만 버틸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 자리에서 살아내고, 견뎌내는 시간을 보내야했던 엄마는, 엄마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버틸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사실 아직도 두려워. 엄마를 붙잡은 사람이 어린 나였을까봐... 그랬다면 엄마, 많이 미안해.  

   

“엄마 꿈은 학교였어.”     

언젠가 엄마에게 어릴적 꿈이 무엇이었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돈을 많이 벌어 학교를 세우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었어. 그 말을 하는 엄마의 표정이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어. 나는 알고 있지.. 엄마가 동생들을 위해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말고 서울에 올라와 일을 했었다는 걸. 젊은 엄마는 너무 예뻐서 영화배우 문희를 닮았다고, 사람들이 얼굴을 보러 오기도 할만큼 근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 그런데 엄마가 아쉬워한 건 예쁘고 젊은 날을 일하느라 흘려보낸 것이 아니었어. 공부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었다는 걸, 엄마가 환갑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되었었지.     


공부를 하고 싶어하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다니는 주부학교에 가서 알파벳을 배우고 수학문제를 풀던 엄마를 기억해. 노트에 글자를 적으며 너무나 뿌듯해하던 엄마, 매번 시험을 보면 우수한 성적이라고 자랑하던 엄마, 학교다니는 일을 너무 신나했던 엄마... 그런 엄마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어. 고등학교 과정을 다 마친 엄마가 대학도 가고 싶어하는걸 알고 있었는데...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접는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수 없다고만 생각했었지. 그땐 엄마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때 엄마에게 포기하지 말고 더 해보라고, 엄마는 근사하게 해낼거라고 말하지 못한 내가 조금 많이 미워.


"넌 내 장점만 닮은 딸이야.”


언젠가 내가, “나 엄마 닮았잖아.”라는 말을 했을 때 엄마가 그랬어. “그렇지, 너는 나를 많이 닮았어. 그런데 내 장점만 닮은 딸이잖아.” 그 말이 나, 너무 좋았어. 누군가의 객관적인 평가보다도, 어디서 상받아온 것 보다도 더 기분좋은 말이었던 것 같애. 엄마의 장점만 닮은 딸이라는 말. 그 말이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했어. 

엄마는 나보다 강하고, 나보다 따뜻하고, 나보다 멋진 사람이잖아. 그런 엄마를 닮은 딸이라고 이야기해주어서.... 그 말을 들은게 내가 마흔이 훨씬 넘어서였는데도 불구하고, 나 칭찬받는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


지금도 가끔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생각해. '나는 엄마의 장점만 닮은 사람이야...' 라고.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환해지는 것 같거든.   


“많이 웃어. 넌 원래 밝은 사람이잖아.”

엄마가 평생 내게 바랬던 건 많지 않았다는 거 알아. 그런 엄마가 나에게 밝아지라고, 많이 웃으라고 이야기할 때.. 나 좀 슬펐던 것 같아. 내가 예전처럼 해맑은 사람이 아니어서, 마음이 밝고 건강한 엄마의 막내가 아니어서... 그걸 느끼고, 안타까와하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거든.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바라는 건 이렇게 작은 것, 그저 좀 밝고 웃으며 살아주는 것 뿐이구나. 이게 엄마가 나에게 베푸는 사랑의 모양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엄마에게 받기만 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마음이 한없이 말랑말랑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기도 했어.


엄마는 나의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 내 밝음을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내가, 매우 안전한 삶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해. 엄마가 나에게 원하는 그 작은 바램을 기억할게. 엄마를 위해서라도, 밝고 씩씩하게, 내 삶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볼게.  




엄마,

엄마의 딸로 살았던 내 삶은

늘 언제나 놀랍고,

행복한 경험인 것 같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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