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며 그동안 내게 어떤 방식으로든 다가왔었던 철학서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마크로스코에 관한 글을 쓰고 싶어 도서관에서 빌린 애드먼드 버크의 ‘숭고', 영화 ‘토리노의 말’과 함께 보려고 샀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에게 빌린 사르트르의 ‘구토' 등. 모든 책은 호기롭게 펼쳤으나 결국 끝까지는 읽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논리로 존재하지 않는 삶의 면면을 자신의 방식으로 설명하여 획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철학은 매력적인 대상인 것처럼 나도 비슷한 경우였다. 하지만 쉽게 친해지기는 예전부터 어려웠다.
비슷한 경험이 있거나 어려워도 여전히 철학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한 번 펼치면 덮을 필요가 없을 만큼 가볍고 쉬울 뿐 아니라 그렇게 어렵지 않은 방법으로도 정확한 길로 안내받는다는 기분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챕터마다 눈에 선명히 잡히는 단어들 때문인 것 같다. 나중에는 해당 주제에서 어떤 표현을 발견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찾으면서 읽게 되었다. 아래는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표현을 기록한 것이다. 짤막하게 그러한 이유도 내 언어로 같이 적었다.
“우리가 온갖 존재의 기이한 낯섦을 마주하는 건 어쩌다 한 번이 고작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_ 존재와 시간 (34)
/ 일상의 무수한 날들이 당연한 풍경으로 스쳐 지나가더라도, 한 번은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그 한 번을 두 번으로, 두 번을 세 번으로 연장하길 원한다. 가능한 연장하여 그 속에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찮은 현실이 진짜라고 믿고 싶지 않다. 믿는 상태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드물게 사물의 평상시 상태가 설핏 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하려 했던 하이데거처럼 내가 나에게, 혹은 삶에게 원하는 바도 비슷해 보인다. 나는 작품을 만들며 지속하고 싶은 시간들을 안에 잡아두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아주 별것 아닌 시간일지라도 평온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기민하게 알아챈다.” - 고대 그리스 철학_필로 소피아 (64)
/ 몇 년 전보단 나아진 것 같아도 현실의 본질적인 하찮음은 똑같다. 이건 내가 뭘 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너무 하찮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하찮음 속에서 볼 수 있는 무엇을 누리는 것도 모두 내 선택이 인도하는 길일 것이다. 어느 한 쪽을 참거나 어느 한 쪽을 지향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현실의 어떤 순간은 오직 감사한 마음으로만 극복이 가능하다는 걸 배워가고 있다. 감사하는 마음, 별것 아닌 시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나의 비법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삶의 목적을 결단코 ‘행복'에 두지 않았다. 그들에게 삶의 목적은 ‘성취'를 이루는 것이었다.” - 아리스토텔레스_에우다이모니아 (68)
/ 행복을 완전한 상태로 가지려는 마음을 포기한지는 좀 된 것 같다. 행복은 아주 잠깐 웃을때 작은 새가 내 옆을 포르르 날아가듯 짧은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자동차 창문을 내리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우연히 만난 꽃밭에서 나는 향을 스치듯 맡는 것이다. 당연히 잔향은 없다. 그러나 분명히 경험했다는 기억만은 선명한 그런 순간들. 아름답지만 가질 수 없는 것. 성취는 낭만적 행복의 이미지보다 명확히 존재하고 유지되는 결과이다. 그러니 그 과정의 고됨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 행복의 이미지보다 추구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세상은 그런데 너무 당연하고 쉽게 행복을 말한다. 나는 그게 불편하고, 세상이 행복을 외칠수록 내게 행복은 더 거짓되게 느껴진다.
“세네카는 그런 일(가혹한 실망)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를 찬찬히 실망시키는 것이 철학의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72)
“우리를 파멸로 내모는 건 결국 어둠이 아니라 잘못된 종류의 희망이다.” (81)
“원체 암담한 전제 … 삶이라는 암막" (85)
“더 넓은 세상의 본성인 영원한 혼돈을 우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86)
특히 2장의 표현은 마음에 많이 남는다. 읽을 땐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언제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 약자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온 힘을 다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가 철학의 탄생이라는 사실이 절절히 느껴졌기에. 철학은 위에서 내려다보듯 만들어진 일방적으로 설파되는 게 아니라, 의외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현재와 미래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생겨났다는 게, 그런 방향으로 뻗어가려고 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같은 동기에서 펼쳐진 각각의 방법론이 제 2장에 망라된 느낌을 받았다.
“이 단어(필리아)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무딘 어휘로 알아채지 못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나서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107)
매 주제의 맥락 속에서 독특하고 새로워 보이는 의미나 정보를 발견하고 기록해두는 내 행위의 이유를 107쪽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어쩌면 철학의 존재 의의와도 관련 있을, '무딘 어휘'를 벗어나 철학의 언어로 들어가는 행위의 의미를. 철학의 성과는 특정한 맥락 속에서 힘을 얻는 단어, 문장, 표현을 발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언어를 얻는다면 그 삶은 더 잘 이해되고 더 잘 살아질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지 않을까? 회의나 비관으로만 결론짓지 않는다면.
다양한 주제를 모아놓은 책이지만 공통적으로 느낀 건 철학은 결국 삶의 구체적인 상황이 낳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떤 표현이나 말이 태어난 특정한 상황을 제대로 본다면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의미있는 생각에 도달하기 위해선 뻔하지만 그러니 잘 살아야 한다. 물론 모든 생각을 수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혼자의 정반합의 과정에서 우리는 얻어야 하는 걸 얻는다.
솔직히 무언가 '채울' 의무를 부여하는 것 같은 이런 책 제목은 조금 부담이 될 때가 있다. 바쁜 현대인들은 일부러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나 긴 글, 드라마나 영화조차도 잘 보지 못한다는 기사에 공감한 적 있듯이. 그러나 의외로 제목만큼 책은 어렵지 않았고 채워주지만 내게 필요한 부분만을 건드리는 방식이었다. 매 주제 사이에 실린 도판이나 어울리는 사진들과 함께 구성한 기획도 좋았다. 특히 어떤 도판들은 한 번에 눈길을 확 사로잡는 것이어서 주제와 주제 사이를 넘어갈 때 머릿속을 정리하거나 환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런 책을 보는 이유가 ‘한 번 더’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꺼진 시동을 다시 켜듯, 한 번 더 한 번 더 한 번 더. 그렇게 영원히 이어질 요청에 대한 응답이 멈추지 않는다면 나는 끝내 사유할 수 있다.
*이 리뷰는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의 문화초대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