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숫자쟁이 Aug 28. 2022

당신은 어떤 문제를 풀고 있습니까.


나는 동료나 업계 사람들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혹은 당신의 동료들은, 혹은 당신의 팀(회사)는 어떤 문제를 풀고 있습니까?

커리어가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고, 내가 회사와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솔직히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늘 버벅인다. 나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가 일하는 공간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질문을 받을 때면 어찌어찌 임기응변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세상의 이런 문제를 멋진 서비스로 해결하고 싶다"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퇴근길에는 왜 마음에도 없는 그런 말을 했을까 하며 자문한다. 그리고 퇴근길에는 지친 머리를 좀 식히려고 유튜브를 켜고 요즘에 보고 있는 컨텐츠를 이어보거나 일하다가 궁금했던 지식을 검색하기도 하며 나름대로의 편안한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자신의 일에 있어서, 혹은 일터에서 "해결하고 싶은 문제"나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왜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마음에 꽂혀 있지 않는 걸까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일이나 일터를 무시하고 사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나 역시도 매일 불안해하며 오늘은 이걸 공부해봐야지 주말엔 회사에서 못 끝낸일을 차분히 마무리해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기는 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가끔 친구들이나 사람들 중에 "회사는 월급 받는 곳이니깐 받는 만큼 일하는 거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약간 쓰라릴 정도의 불쾌감을 느끼곤 한다. 말하자면 덕업일치라던지 자아실현과 이상적인 직상인像 같은 게 있기는 하다.


그런데도 왜 나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할까.


어쩌면 나는 진실로 풀고 싶은 문제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다소 엉뚱하기는 하지만 길을 걸어 다니면서, 카페에 들어가서, 회사에서, 술집에서 사람들을 보며 왜 저 사람들이 이곳에 왔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늘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왜 즐거울까, 왜 슬플까, 왜 그 사람을 사랑할까 이런 생각들을 늘 하고 지낼 뿐만 아니라 죽기 전에 내가 궁금해하는 이런 것들이 이해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로 궁금해서 어떨 때는 괴로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이 내가 풀고 싶은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일과 성장이라는 중요한 과업과 세상과 사람의 마음에 대해 궁금해하는 욕구 사이에서 정신을 못 차리겠다. 이를테면, 주말에 코딩을 하거나 스터디 준비를 한 날에는 왜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주말의 편안한 감정들을 즐기지 못했을까 후회하고, 주말에 사람을 만나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왜 일이나 자기발전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자책하는 식이다. 어떤 것을 해도 후회가 남는다. 그래서 결국 나는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게 된다. 정말로 일에 몰두해서 기여하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들이 있는지 혹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정에 충실하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더 이상 고민 사이에서 매일 후회하는 걸 그만두기 위해 나에게 물어봤다. "지금 당신이 절박하게 해결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내 직업에서의 과제보다는 삶에 있어서 내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문제들이다. 나는 왜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사람을 쉽게 가까이 둘 수 없고, 왜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정말로 이상적으로 멋진 사람이 아니면 선택하지 않고 있으며 왜 나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불편한 사람이 되는지 뭐 이런 것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어느 정도라도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것에 집중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을 먼저 인정을 해야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절박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나의 생각과 불쾌함과 괴로움이 어떤 이유로 생겨났는지 관찰해보고, 썩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글들을 조금씩 적어내고, 천천히 걸으며 실타래를 조금씩 조금씩 풀어내야겠다. 이게 그리 생산적이고 멋진 일처럼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내게는 "풀고 싶은 문제"가 맞기에.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옳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