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코지마에는 테니스장이 딱 하나 있다!
남편이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기까지 한 달의 시간이 생겼다. 우리 둘 모두에게 소중한 안식월 동안 어디를 여행 갈까 하다가 바꿔두었던 엔화를 털고자 일본을 가기로 했고, 그중 요즘 떠오르고 있는 미야코지마를 찾았다. 사실 오키나와 왕복 항공권만 구입했다가, 나중에서야 미야코지마를 가야겠다 결심이 서서 오키나와-미야코지마 항공권을 추가로 구입했다. 최근 국내 항공사인 진에어에서 미야코지마 직항 노선을 신규 취항하면서 우리나라 여행객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쓸만한 정보를 찾기는 그다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더 좋았다. 사전 정보 없이 발 가는 대로 우리만의 여행을 개척할 수 있으니까.
우리 부부는 미야코지마에 나흘, 오키나와 본섬에 사흘 머물렀는데, 매일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가끔 테니스를 쳤다. 특히 미야코지마는 섬이 작다 보니, 섬 구석구석 드라이브하며 숨겨진 아름다운 스노클링 스팟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니 우리가 허니문으로 갔던 하와이가 자꾸만 생각났다. 미야코지마가 아시아의 몰디브, 아시아의 하와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이 있는 곳.
여행을 갈 때면 늘 라켓 한 자루씩 백팩에 넣어 가는 우리 부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테니스 코트를 찾았다. 구글 지도로만 찾아봐도 오키나와 본섬엔 테니스장이 꽤 있었지만, 미야코 섬에선 딱 하나밖에 찾을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정보가 명확히 기재되어 있지 않고 리뷰 또한 제로여서 그냥 무작정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앞서 쓴 하와이 테니스 여행 기록
구글 지도에서 'Miyakojima Tennis Court'를 검색하면, 뭐가 하나 뜨긴 뜬다. 'Miyakojimashi Sogotaiikukanshitajitaiiku Center Shitsunai Tennis Center'라는 긴 이름의 장소가 나오는데, 누르면 홈페이지도 없고, 리뷰도 전무하다. 구글 지도의 스트리트 뷰로 보면 그냥 컨테이너 건물 하나 달랑 있는데, 이게 테니스장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다행히 우리가 나흘 동안 머물렀던 숙소가 있는 동네 시모지(Shimoji)에 있다고 떠서 그냥 쉽게 가볼 수 있었다. 갔는데 테니스를 못 칠 수도 있으니, 그럼 그냥 바로 바다로 직행하자 싶어 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갔다.
지도에 있는 컨테이너 건물을 찍고 갔는데, 다행히 실내 테니스장 안에 이미 동네 클럽 분들이 한창 테니스를 치고 계셨다. 코트를 방문했던 게 일요일이었는데, 주말 테니스 동호회 같은 분위기였다. 벤치에 앉아 계시던 분께 조심스레 다가가 어떻게 하면 이 코트를 예약해서 쓸 수 있느냐 물었더니, 체육관 사무실에 가면 된단다. 그리고 본인들이 곧 운동을 마쳐서 바로 이용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도 해주셨다. 테니스 코트에서 조금만 걸으니 바로 '시모지 체육관'이라는 이름의 체육관 본관 건물이 보였다. 굉장히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었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테니스를 치러 왔다 하니 사무실 직원이 대관 명부에 인적사항을 적으라고 일러주셨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테니스장 대관비를 현금으로 지불하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테니스 코트를 1시간 대관하는 데 비용은 550엔(한화 약 5,000원)으로 매우 저렴했다. 한 번 대관할 때 최대 2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뒤에 예약자가 없으면 3시간까지도 쓸 수 있다고 한다. 복식이라면 2시간 예약을 했겠지만, 오늘의 플레이어는 나와 브라이언 단 둘 뿐이니 오버하지 않고 한 시간만 단식을 뛰기로 했다.
예약을 마친 후 코트로 돌아오니 동호회 분들이 운동을 끝내고 코트를 정리하고 계셨다. 본인들이 오늘 코트 마지막 사용자인 줄 알고 다 정리하려 했는데, 우리가 왔으니 브러쉬만 하겠다 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코트를 다 사용한 후 어떻게 정리하면 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브러쉬는 기본이고, 네트까지 고이 접어서 창고에 보관을 해야 했다. 시모지 동네뿐만 아니라 미야코 섬에 몇 없는 실내 체육관인지라 테니스 말고도 다른 목적으로도 공간을 이용하는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창문도 모두 다 닫아야 했으며, 코트 문도 잠근 후 열쇠를 사무실에 반납해야 모든 정리가 끝이라고 하셨다. 뭔가 막중한 임무와 책임이 주어진 것 같아 약간 비장한 마음까지 들었다..
테니스를 치기 시작하니 비가 갑자기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미야코지마를 갔을 때 섬과 멀지 않은 대만은 태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미야코지마도 영향을 받는지 이따금씩 비가 내리곤 했다. 태풍의 경로가 결국엔 비껴가서 오키나와를 여행하는 내내 날씨가 좋았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시모지 체육관에서 테니스를 칠 때도 마찬가지로 운이 좋았던 게 실내에서 테니스를 치는 동안에만 비가 내리고 바다로 넘어갈 때엔 날이 개었다. 그렇게 장대비 소리가 운치 있게 들리는 체육관에서 나와 남편 단 둘이 테니스를 쳤다. 로맨틱하게 들리겠지만, 코트 안에는 자못 진지한 분위기와 테니스 공 팡팡 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남편에게 지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쳤지만, 결국 두 게임 모두 내어주고 말았다. 서로의 플레이 패턴을 워낙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랠리다운 랠리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치기 어려운 공을 주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보니 다 치고 난 뒤 진 자는 씩씩댈 수밖에 없다.
테니스를 다 치고 동호회 아저씨가 알려준 매뉴얼대로 코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우리 코트 예약을 도와주셨던 사무실 직원이 오셨다. 외국인 둘에게 온전히 맡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녀는 우리가 의외로 잘 정리한 것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코트 문은 자기가 잠그겠다며 열쇠를 가져가셨고, 우린 그렇게 오키나와에서의 첫 테니스를 마쳤다. 테니스 열기를 식히기 위해 바로 바다에 뛰어들기로 했다. 미야코지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아라구스쿠 해변(Aragusuku Beach)을 찍고 가던 중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하고, 구글 지도에서 무려 평점 4.9에 달하는 푸드트럭 와이그린카페(Y's Green Cafe)를 찾았다. 마트 옆 주차장에 있는 간이음식점으로, 동네 사람들이 오명가명 테이크아웃을 많이 해가는 것 같았다. 우린 치킨도리아와 타코라이스를 주문했는데, 정말 맛있게 한 끼를 해결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미야코지마의 시원하고 맑은 바다에 뛰어드니 테니스 져서 분한 감정도 다 잊히고 행복만이 남았다.
미야코지마에서 나흘을 보내고 오키나와 본섬으로 왔다. 미야코지마가 한적하고 목가적인 바다마을이었다면, 오키나와 본섬은 꽤 번잡한 도시의 분위기였다. 미야코지마에선 시골 동네의 주택을 에어비앤비로 빌려 지냈고, 본섬에선 오키나와 중부의 기노완이란 동네에 자리한 5성급 호텔인 프린스 호텔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되었던 것도 있다.
한국에서 오키나와 여행을 준비하며 오키나와 본섬의 테니스장 예약도 알아봤었다. 구글 지도로 검색하기만 해도 본섬에서 테니스 코트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외국인이 예약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일본 내국인이거나, 혹은 오키나와현에 거주하는 사람이어야만 예약이 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일본은 아날로그의 나라가 아니던가. 회원 등록을 하려면 팩스로 뭘 또 보내야 하고.. 복잡하기만 했다. 퍼블릭 코트 예약은 진즉에 포기한 나는 오키나와에 있는 또 다른 5성급 호텔인 할레쿨라니 오키나와(Halekulani Okinawa)로 그곳의 테니스장을 사용할 수 있는지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투숙객이 아니면 예약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고, 그렇게 오키나와에서 테니스를 치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러다가 오키나와를 드라이브하다 코트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것도 우리가 사흘간 머물렀던 프린스 호텔 바로 코 앞에서 말이다. 바로 기노완시립체육관(宜野湾市立体育館)의 테니스장이었다. 호텔 바로 앞에 있었기에 그냥 아침밥 먹고 무작정 가봤다. 혹시 모르니 라켓을 들고. 코트는 매우 관리가 잘 된 인조잔디였고, 무려 6면이나 있었다. 더군다나 수요일 오전이어서 그런지 텅텅 비어있었다.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대관 명부에 인적사항을 기재한 뒤 390엔(한화 약 3,500원)을 현금으로 지불했다. 미야코지마도 저렴했는데, 여긴 더 저렴하다. 1시간 코트 이용료가 3,500원밖에 안 한다니. 서울이었으면 주중이었어도 코트 여섯 면이 금세 다 꽉꽉 찼을 거다.
지금 시간에 그늘 지고 좋다면서 직원이 지정해 준 F코트로 향했다. 여행하며 수많은 코트를 가봤지만, 그중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남편과의 단식 게임. 미야코섬에선 두 판 모두 졌지만, 여기선 달랐다. 한 판은 내어주었지만, 한 판은 악바리로 지켜냈다. 두 게임 모두 가져왔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래도 이만하면 잘 싸웠다. 남편이 봐준 거라고 할 때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도 꽤 전력을 다한 걸 봤기 때문에 귀엽게 넘겨주었다.
테니스를 치고 나니 또 허기가 진다. 바다에 뛰어들기 전 배는 채워야겠다 싶어 구글로 찾은 미나토 식당(みなと食堂). 이 식당은 브라이언에게 있어 오키나와 여행 중 가장 최고의 식당으로 꼽혔다. 모토부 항구 바로 앞에 자리한 자그마한 동네 식당인데, 아주머니 혼자 운영하신다. 우리가 갔을 땐 현지인들 뿐이었고, 다 동네 사람들인지 서로 아는 눈치였다. 아주머니가 오랫동안 이 자리에서 동네 사람들의 식사를 책임져 오신 듯한 느낌이다. 아저씨들이 똑같이 먹는 모둠 조림 요리가 있었는데, 브라이언은 그걸 가리키며 먹고 싶다 했고 나는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두꺼운 돼지 삼겹살과 두부, 당근, 감자, 채소들을 같이 조린 요리가 나왔는데, 약간 달달한 간장 소스에 조려진 음식들이 조화롭고 너무 맛있었다. 오므라이스는 옛 추억의 맛이었는데, 기본에 충실하고 계란의 고소한 맛과 향이 일품이었다. 심지어 가격도 단돈 600엔(한화 약 5,500원)으로 너무 착했다. 오키나와에 오래 머물렀다면 틀림없이 계속해서 왔을 그런 정겨운 식당이었다.
이제 바다에 뛰어들 차례. 오키나와에 고작 사흘 밖에 있지 않았지만, 이 해변에 두 번이나 방문했다. 바로 하유 해변(Hayu Beach, ハユゥ浜). 들어가는 길목을 찾기도 어렵고 꽁꽁 숨겨져 있어 서핑하는 현지인들만 알음알음 오는 듯했다. 우리도 풍랑으로 입수가 금지된 마에다 곶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현지 서퍼들 뒤를 따라가서 발견한 해변이었다. 오키나와를 여행하며 매일 스노클링을 했는데, 이곳에서 가장 많은 물고기들을 만나기도 했다. 다시 오키나와를 여행한다면 본섬은 너무 번잡해서 스킵할 것 같다 얘기하기도 했지만, 여행 중 가장 맛있던 음식과 가장 좋았던 해변이 있기에 그때도 다시 본섬을 찾지 않을까 싶다.
이번 오키나와 여행을 시작으로 나와 남편은 유튜브를 시작했다. 가끔 내가 브런치스토리에 여행 글을 남기긴 하지만, 기록을 하지 않으면 여행의 추억은 금세 휘발되고 만다. 그리고 영상 기록은 가장 강력한 도구가 아니던가. 너무 많은 품을 들이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해 보자 하였고,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했다. 촬영도, 편집도, 배경음악도 그 어느 것 하나 엉성하지 않은 게 없다. 하지만 채널에 업로드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계정명은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그냥 남편과 나의 애칭인 브라이언과 봉봉을 줄여 '브라봉'으로 정했다. 원래 주변에선 우리 둘을 싸잡아 '봉브라'라고 부르지만, 그렇게 하면 속옷이 키워드에 많이 걸릴 것 같아서 '브라봉'으로 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의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소소한 여행의 기록들을 앞으로 쫌쫌따리로 쌓아가 볼 요량이다.
얼마 전 개설한 유튜브 <브라봉>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