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인턴십을 제외하고 내 '첫 직장'이라 말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 중 하나인 메가박스다. 브랜드전략팀에서 4년가량 마케터로 일하며 영화관이란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매개로 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기도 했고, 클래식 공연처럼 영화가 아닌 다른 콘텐츠들을 새롭게 시도하는 것 또한 즐거웠다. 운이 좋게도 내 인생의 멘토들을 직장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어른들과 매년 해외의 극장과 문화공간, 더 넓게는 도시 차원에서의 콘텐츠들을 리서치하고 영화관이란 플랫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덕분에 전 세계의 훌륭한 공간과 콘텐츠를 접하고 도시의 트렌드를 계속해서 탐구하며, 자연스럽게 공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5년 차가 되던 해에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공간 디자인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처음 내게 창업을 제안했던 사람은 대학 선배 H였다. 신입생 때부터 몸 담았던 사진 동아리의 선배였고, 내가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조언을 구하던 이였다. 사진 동아리에는 유독 건축과 친구들이 많았다. 그 또한 건축과 소속이었고, 나는 그들의 연구실에 종종 놀러 가서 죽치곤 했다. 졸업해서도 자주 만났는데, 선배가 한 건설회사 부장을 지내던 때 나에게 같이 공간 디자인 사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당시 나는 도시재생 분야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을 때였고, 공부가 더 하고 싶어 핀란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딱 좋은 시기였다. 좀 더 공간 브랜딩 쪽으로 커리어를 쌓고 공부를 해도 늦지 않을 거란 생각도 있었고.
선배는 나뿐만 아니라, 이전 직장 동료 두 명도 더 데려왔다. 그렇게 비즈니스 디렉터 1명(선배), 건축사 1명, 공간 디자이너 1명, 그리고 콘텐츠 기획자 1명(나), 도합 넷이 모였다. 멤버 구성만 보면 참 이상적이었으나, 이는 얼마 가지 못했다.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디자이너와 건축사가 차례로 떠났고, 나는 비즈니스가 한참 진행되던 1년 6개월 차에 관뒀다. 하나둘씩 떠난 이유는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명백했다. 아무리 개인적인 친분이 있더라도 단 한 번도 함께 일해본 적 없는 사람과 동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고, 바라보는 이상향(가치관)이 맞지 않으니 대화를 해도 헛돌았다. 그리고 선배는 동료가 아닌 상사처럼 행동했다. 이전 직장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탑다운 방식의 의사결정을 내가 차린 회사에서 경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결정을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라며 내세운 기준이 굉장히 모호했다.
내가 만든 회사와 헤어지는 과정은 흡사 이혼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친했던 선배였는데 막판엔 서로 얘기도 하지 않고 회계법인을 통해 지분을 정리했다. 함께 채용했던 직원을 뒤로하고 나오는 것도 신경이 쓰였고, 사무실을 차린 문래 예술창작촌 골목과 정들 대로 들어버린 문래동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도 슬펐다. 창업을 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기도 했지만, 내가 입은 내상도 꽤 컸다. 앞으로 내 인생에 창업이란 도전은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사업을 관두고 프리랜서 마케터로 브랜드 컨설팅 일을 했는데, 돈은 적게 벌었지만 여행하고 일하고를 반복하며 사는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가 나와 잘 맞았다. 그렇게 프리랜서로 지내다가 이제 어딘가 정착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다시 기업에 들어간다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의 마케팅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두 군데에 지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 합격한 곳이 바로 공간과 경험의 가치를 전달하는 브랜드, 에어비앤비였다. 서비스 초기부터 팬이었고 충성고객이었는데, 그토록 사랑하는 브랜드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덕업일치'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 될, 지금의 사업을 함께 일구어 가고 있는 하빈을 그곳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