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 보면 부쩍 외국인들이 방송에 많이 등장한다. 한국인보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들을 보면서 다들 그런 생각 한 번쯤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니 저 외국인은 어떻게 저렇게 한국어를 잘해? 한국어가 배우기 쉽나?'
나 또한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면서 갖게 된 궁금증 같은 것이 있었다. 한 학년에 40명 정도로 구성된 태국 한국어학과 전공생들의 실력은 참으로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학년에 상관없이 특출 나게 한국어가 뛰어난 학생들이 학년 당 한 두 명씩 있게 마련이다.
"00 이는 어떻게 그렇게 한국어를 잘해?"
나의 질문에 학생은 쑥스러워하면서 "선생님, 저는 한국 드라마를 자주 봐요." 라고 대답한다.
'흠... 한국 드라마라. 다른 학생들도 많이 보는 것 같은데.'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학생들을 꾸준히 관찰했다.
대부분의 태국 학생들은 K-pop 아이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국어와의 사랑을 시작한다. 1학년 학생들은 팬 미팅에서 좋아하는 아이돌을 만나 한국어로 대화하는 상상에 부풀어있다.
숙제 검사를 위해 학생들의 노트를 살펴보고 있던 중이었다. 특별히 한국어를 잘해서 내 눈길을 끌었던 그 학생의 노트에는 한국 드라마 대사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모르는 단어는 밑줄을 긋고 태국어로 주석을 달아 놓기도 했고, 발음 연습을 위해 소리 나는 대로 적힌 표현들도 있었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향한 편지글 같은 것도 있었고, 노래 가사들도 있었다. 노력 끝에 얻어진 갖가지 표현들이 노트 안에 가득했다.
'아, 좋아서 하는 일에 따라올 자가 없구나...'
요즘 ‘덕질’이라고 하던가. 그렇다. '어떤 분야를 좋아해서 열정적으로 파고드는’ 그 사이에 이 학생의 한국어는 일취월장 성장한 것이다. 그때서야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때의 내 경험도 슬며시 떠올랐다. 미국에 도착해서 처음 마주한 나의 영어 실력은 부끄러울 정도로 바닥이었다. 아는 단어들이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자 자신감까지 사라졌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정은 좋아하는 일을 해 보는 것이었다. 공예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동네의 도예 클래스를 등록했다. 나이 지긋하신 수다스러운 아주머니들로 가득한 도예 스튜디오는 영어공부를 하려던 나에게 천국과도 같았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도 손으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부담을 덜 수 있었고, 작업을 하면서도 귀는 열려 있어서 듣기 연습을 할 수 있었다. 10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도예를 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어휘와 표현을 습득했다. 게다가 수시로 도예 관련 비디오를 유튜브로 보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영어로 된 동영상도 어려움 없이 알아듣게 되었다. 취미인 도예를 시작으로 나의 영어는 조금이나마 진전을 보였다. 그 자신감을 시작으로 한국어 과외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렇게 한국어 강사로서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마 한국 방송에 출연하는 외국인들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어떤 분야의 매력에 푹 빠졌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한국음식이든 한국의 역사든 게임이든 말이다. 그 분야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힘 입어 한국어 실력도 눈에 띄게 늘지 않았을까.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앞두고 대회에 참가할 학생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그 학생도 인터뷰를 위해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았다.
"한국에 가면 가장 가 보고 싶은 장소에 대해 한 번 말해보세요."
나의 질문에 배시시 웃으며 학생이 대답한다.
"저는 부산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부산에 가고 싶은 이유에 대해 말해보세요."
"부산에 남자 친구가 있어서..."
하아... 그렇다.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빠른 방법 한 가지를 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