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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쥐 쌤 Apr 07. 2022

오늘도 행복한 선생님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

"얘들아 토요일에 학교에서 만나자. 걱정하지 마. 연습하면 돼."


학생들은 한국어 연극 대회를 목전에 두고 불안에 떨고 있다. 태국에는 10개가 넘는 대학교에 한국어 학과가 설치되어 있고, 각 학교마다 한국어 연극 대회나 한국어 말하기 대회, 쓰기 대회 등의 경연대회를 개최하며 한국어학과로서의 위상도 다지고, 교류 활동도 펼치고 있다. 

며칠 뒤에는 태국의 나레수안 대학교에서 한국어 연극 대회가 열릴 예정이고 우리 학교도 참가 신청을 했다. 그동안 상위권 수상 이력이 없는 우리 학교에서는 이번 기회에 수상을 노려보고자 우리 학교 유일한(?) 한국인 네이티브 강사인 나에게 연극 지도를 맡겼다.  


4명의 학생들이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웹툰을 재 창작한 연극 퍼포먼스를 펼쳐야 하는 것이 이번 연극대회의 규칙이다. 우리가 각색하기로 한 웹툰은 한경찰 작가의 '스피릿 핑거스'. 

태국 학생들 사이에서도 무척 인기가 높아 안 본 학생들이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웹툰이다. 


내가 예상한 것과 달리 연극 준비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학생들의 주도적인 참여가 기본 원칙인 터라 각색과 대본 구성부터 학생들 스스로 해 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본이 완성되었고 우리는 매일 연극 연습에 매달렸다. 


우리가 재 창작한 연극의 제목은 '꿈을 향해 달려가!'

주인공인 우연이는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아 엄마와 다툰 후 홀로 방에서 울며 책상에 엎드려 잠시 잠이 든다. 
정처 없이 길을 걷던 우연이는 홍대 길거리에서 떠들썩하게 드로잉 퍼포먼스를 하는 한 무리를 만나게 되고 이들의 흥겨움과 자신감 넘치는 삶의 자세에 반한다. 동시에 자신도 몰랐던 그림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와 들뜬 목소리로 통화하는 우연이. 
"엄마, 사인회 곧 시작해요. 사인회 끝나면 제가 크게 한 턱 낼 테니까 기대하세요!"  
우연이는 웹툰 연재 작가로서 자신의 꿈을 찾게 되었고, 환한 얼굴로 그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연극 연습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자 학생들은 불안해했다. 대사를 까먹는 학생들이 속출했고, 음향을 맡은 학생과의 호흡도 잘 맞지 않아 엉뚱한 부분에서 음악이 나오기도 했다. 


"얘들아,  우리 토요일에 만나자. 점심 먹지 말고 학교로 와."


나는 토요일 아침부터 KFC로 향했다. 치킨과 콜라, 감자튀김으로 가득한 봉투를 내려놓자 학생들의 얼굴이 기대로 가득했다.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치킨은 싸고 쉽게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태국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KFC!  푸짐한 치킨을 놓고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면서 그동안의 불안을 조금 씻어냈다.


치킨을 먹으면서 한껏 기분이 좋아진 우리들


"얘들아, 나레수안 대학교 가면서 핏사눌록 여행도 하고, 아유타야도 구경하는 거야!"


이른 새벽부터 승합차를 빌려 타고 나레수안 대학교가 있는 핏사눌록으로 향했다. 사실 나도 태국의 다른 지방을 가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마치 여행을 가는 것처럼 설렜다.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르기도 했는데, 휴게소에서 파는 국수는 국물 맛과 토핑이 정말 일품이었다. 


나레수안 대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리허설을 시작했다. 태국 전역의 대학교에서 온 학생들과 강사들로 강당은 북적였다. 리허설 내용이 서로에게 공개될세라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하고 갖가지 요구 사항도 넘쳐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마치 학부모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흥. 뭐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애들이 제일이지.'


근처 호텔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늦은 밤 호텔 로비 구석에서도 연습을 했다. 이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편의점 가자!"


잔뜩 사 온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면서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지금 너무 좋아요. 저는 수업시간에도 말 안 해요. 잘 못해요. 그런데 지금은 편해요. 아무 얘기도 할 수 있어요." 


그렇다. 한국어학과 학생이라고 해서 모두 나와 의사소통이 활발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큰 욕심이다. 예를 들어 한국 고등학생이 영어 네이티브 강사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하다. 


"나도 진짜 행복해. 우리는 최선을 다 했고,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사실 밤잠을 이루질 못했다. 여기까지 와서 수상을 못하면 그동안 잘난 척(?)하고 다닌 내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기도 했고, 그동안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도 억울해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우리 학교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학생들과 학과 선생님들께 행복한 뉴스를 전하고 싶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근처 사원으로 갔다. 그 전날 들은 바로는 호텔 근처에 큰 절이 있다고 했다. 태국이니까 부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시겠지. 절에 도착하자마자 웃음이 터졌던 건, 학생들도 절에 와 있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우리 학교 경연이 시작되었다. 손이 차가워지고, 심장이 콩닥거려서 의자에 앉아있기도 힘들었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약간의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눈을 뜬다. 어둠 속 나. 심장이 뛰는 소리 낯설 때.'


BTS의 Love yourself 가 울려 퍼지면서 우리 학생들은 한 명씩 나와서 무대 인사를 했다. 인사를 위해 무대를 걸어 나올 때 주머니에 미리 준비한 은박 꽃가루를 뿌리자 관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났고 마치 우리의 연극 제목처럼 힘차게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나에게도 한 가지 진리와도 같은 가르침이 불현듯 스쳐갔다. 힘든 과정과 여정을 통해 우리는 모두 한 걸음 성장한다는 것 말이다. 


우리는 당당히 2등을 차지했다. 

덕분에 지도 강사로서 함께 시상대에 오르는 영광을 함께 누렸다. 

우리는 마음껏 웃고 즐기며 이 행복감을 누렸다. 물론 오매불망 수상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학교에도 당당히 수상 소식을 알릴 수 있었다. 페이스북으로 축하 댓글이 쏟아졌고, 덕분에 내 체면도 지키게 되었다.

호텔방으로 돌아와 수상의 기쁨으로 재잘대는 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중 한 학생의 말이 나를 요절 복통하게 했다. 


'선생님, 1등 한 학교에서 부상을 바꾸고 싶대요. NCT 사인 CD가 더 좋은 상인 것 같대요.'


1등을 한 학교 학생들에게는 부상으로 한국에 있는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2등을 한 우리에게는 6000밧 상금과 아이돌 NCT 사인 CD가 주어졌다. 역시 애들은 애들인지 사인 CD가 더 좋단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생들과 나는 나콘사완의 명소인 금빛 사원, 왓키리웡에 올랐다. 함께 인생 사진을 남기며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콘사완에 있는 금빛 사원, 왓키리웡에서 학생들과 함께.

'아... 나는 정말 행복한 선생님이다.' 


다시 한번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된 것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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