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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쥐 쌤 Jun 14. 2022

나는 한국어 선생님입니다

한국어 강사가 되기까지 (1)


나도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이놈의 회사… 내가 당장에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7년이나 꾸역꾸역 일하고 있었다. 남편이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합법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것도 팔자인지 성격인지 어느 순간부터  그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이 그립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 도시락을 싸 주고 나면 그 시간 구두를 바삐 또각거리며 출근하던 내 모습이 아른거렸다. 노동을 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때야 절실히 깨달았다.


길어지는 해외 생활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전공인 국어교육 학위를 활용해서 할 수 있을만한 직업과, 나의 7년 직장 경력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 들 사이에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언어의 장벽이 일단 큰 요인 중 하나였고, 미국 내에서의 경력이 전무하다는 것도 그랬다. 오죽하면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워볼까는 시도도 했을까.


일단 나는 봉사 활동을 통해서 경력 아닌 경험을 쌓아보기로 했다. 한국어 튜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미국 대학생 하나와 중국 학생 하나가 한국어에 관심이 많다고 연락을 해 왔고, 그들은 나의 첫 번째 학생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상태라 가르칠 내용을 준비하면서 나도 하나하나 배워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국어 교육과 한국어 교육은 일단 시작부터가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일단 시작하고 보니 조금씩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보였고, 공부해야 할 분야도 윤곽이 잡혔다. 내가  태국의 대학에 전임강사 자리를 구하게 된 것은 그 이후로도 3년 후의 일이다.


 처음엔 튜터 일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고 보람과 뿌듯함에 잠을 못 이뤘던 것 같다.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 학생에게 단어와 문법을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여러 가지 면에서 나 또한 발전했다. 그러면서도 차츰차츰 이 분야가 얼마나 한국인들에게는 낮게 평가받고 있는지에 대한 시각도 깨닫게 되었다.


일단 친구, 가족들의 다양한 반응에서도 알 수 있었는데 ‘한국어 가르치는 건 진짜 쉽겠다’ , ‘재미있는 일 선택 잘했다’라는 반응이었다.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억울함에 기를 쓰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왜 ‘학생’ 다음에는 ‘이’가 붙고 ‘의사’ 뒤에는 ‘가’가 붙는지 설명할 수 있겠어?”


느닷없는 나의 진지한 질문에 ‘문법은 무조건 외우는 거 아니야?’ 하는 시답잖은 반응을 보일 때면 약간 힘이 빠지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향후 5년의 목표들을 세워 차근차근 나아가기로 했다. 나의 최종 목표는 물론 한국어 학과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일단은 해외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기관을 찾아 한국어 교원 자격증과 학위를 취득했다. 나는 관련 전공자였기 때문에 별도의 시험 없이 학위 과정 이수만으로도 2급 자격증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 학사를 취득할 수 있었다. 사실 자격증이 중요한 이유는 취업 때문이다. 취업을 해서 경력을 쌓는 것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일단 자격 요건을 갖추고 나자 그다음은 조금 쉬워졌다. 나는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국어 강사 자리를 구하기가 쉬웠다. 무경력이라 대학과 같은 고등 교육기관에서의 취업은 어려웠지만 주변에는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설 학원도 많았고, 한국 정부에서 전 세계에 개설한 세종학당에서도 현지 교사를 채용하곤 했다. 게다가 국가에 따라 한국 문화원, 대사관 등에서도 한국어 강사를 채용한다. 그리고 한국인 이민 가족들을 위한 한글학교는 또 얼마나 많은지….


남편을 따라 여러 나라를 옮겨가며 생활하면서 나의 활동 무대도 넓어져 갔다. 미국에서 튜터 봉사활동으로 시작한 커리어는 유럽과 서남아시아 국가를 거치면서 조금씩 성장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어 교원 카페에 올라온 글이 눈에 들어왔다.


‘전 세계에 한국어 학과가 설치된 대학의 수는 00개가 넘으며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 많은 대학 중에 내가 일할 곳도 있지 않을까? 그날로 나는 외국 대학들의 한국어 학과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학과장 이메일을 수집해서 한 명 한 명 이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간단했다. 자기소개와 경력, 그리고 함께 일하고 싶은 이유와 계획 등을 정리해서 커버레터를 쓰고 이력서와 자격증을 첨부해서 보냈다. 아마 30군데 정도의 학교에 이력서를 뿌렸던 것 같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답장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답장을 준 몇몇 국가의 학교에서는 이미 일하고 있는 강사가 있다는 답변과 다음을 기약해 보자는 친절한 내용들도 있었다.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구직활동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 대학에서도 한국어 강사를 구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면접을 볼 수 있을까요?’


내 꿈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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