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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자고모하니 Oct 24. 2023

누군가의 사진 모퉁이 어딘가에.

사진 정리를 하다 떠오른 몽상

Riomaggiore, 2006.12

내가 사는 여기 이태원만 해도 길을 걷다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쉽게 본다. 카페에서, 음식점에서, 혹은 아무것도 아닌 길거리에서. 

그저 일상 속에서 지나가는 사람과 어디선가 온 방문자들이 같은 공간 안에 항상 섞여 있다.

그리고 내가 가끔 의식하는 건 그 방문자들의 사진 모퉁이 어딘가에 내가 끊임없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어딘가 방문자로 있어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태어난 이래로 지금까지 내가 의도해서 '찍은' 사진보다 여행지나 길을 걷다 우연히 ‘찍힌' 사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국이든 외국이든 알지 못하는 어떤 사진 속 어딘가에는 지나가는 사람의 내가,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지나가는 누군가를 계속 찍어 왔으니 말이다.


만약에 지구 상에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가상의 공간에 자신의 모든 사진들을 업로드했다고 치자. 그리고 매우 정밀한 얼굴 인식 프로그램으로 세상의 모든 사진에서 특정 얼굴을 검색하는 기능을 공개적으로 가능하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누군가의 여행지나 길 위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좋은 기억일지도, 나쁜 기억일 수도 있다. 아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과 장소에 있는 내가 있지 않을까. ‘아 이런 곳에도 갔었구나..’ 기억에서 완전히 소멸된 아련한 과거의 어느 순간과 뜬금없이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찾을 수도 있을거다.


2000년 4월부터 디지털카메라로 찍기 시작한 사진이 2만 장을 넘었다. 사진을 대충 넘기다 보면 많은 사진에서 모르는 누군가가 구석 어딘가에 찍혀 있다. 어쩌다 내 사진에 찍힌 지나가던 그 사람은, 어쩌면 누군가 사진으로라도 간절히 보고 싶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지.

아무튼, 2만 장의 사진을 몽땅 구글드라이브에 정리해서 올릴까말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쓸데없이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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