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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선생 Jan 06. 2022

존재하지만 표현되지 않은 차별을 언어로 그려내는 과정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 리뷰


2021년을 책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각종 언론 매체와 대형 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네 권을 골라 같이 읽어보는 시간이죠. 지난주 예고에서 오늘 다룰 책이 조선일보 선정 올해의 책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지난해 마지막 주 동안 각종 언론사에서 한꺼번에 리스트를 발표해서 다시 정리를 해보니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주간지 시사인까지 포함해 무려 언론사 네 군데서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았더라고요.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입니다.



이 책의 저자 캐시 박 홍은 미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2세 여성입니다. 그는 시를 쓰면서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합니다. 자신의 인종을 작품에서 지워버린 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지만 동시에 그런 자신의 시도가 백인들이 세워놓은 정상성을 강화하는 효과만 낳는 것이 아닌가 고민합니다. 그래서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실험적인 작품을 구상하며 고민합니다.

일상에서는 여전히 만연한 인종 차별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겪는 인종차별의 양상은 다소 복잡합니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받는 인종차별만큼 적극적으로 거론되지 않습니다. 몇몇 성공한 아시아인들이 모델이 돼 ‘아시아인들처럼 근면하면 인종차별을 겪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른바 모범적 소수자 담론의 주역이 되기도 합니다. 몇몇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이 담론에 적극 편승해 흑인 인종차별 발언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일상에 만연한, 아프리카계에 대한 차별과는 또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설명할 단어를 찾아내지 못해 헤맵니다. 그 결과 수치심이나 우울처럼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해 생기는 감정, ‘마이너 필링’들을 안고 살아가죠.

이 ‘마이너 필링’을 시인의 손끝으로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책,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입니다.



모범적 소수자란 미국의 인종차별 양상을 가리킬 때 주로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특히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많이 쓰이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마약 강도 총기사고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 아프리카계나 라틴계 이민자들에 비해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지칠 줄 모르고 일하고, 적은 임금과 궂은일도 감내하며, 자식들의 교육에 온 힘을 쏟아 2대나 3대 자손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고 좋은 회사에 취직시켜 사회의 주류로 진출시키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죠. 이른바 ‘아시아적 문화’가 이런 노력을 공동체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언뜻 보면 사실인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캐시 박 홍도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이 모범적 소수자 이미지가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이미지가 보여주는 성취를 뒷받침하기 위해 ‘문화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아시아계 가족의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문제를 감춰버립니다. 게다가 이 이미지는 아시아계의 성취를 인정하기보단 아프리카계나 라틴계 등 다른 인종을 차별할 때 훨씬 더 자주 동원됩니다. 우리나라의 ‘엄친아’ 담론과 비슷한 거죠. 이것은 이 이미지가 백인을 기준으로 설정됐다는 걸 보여줍니다. ‘모범적’이란 말은 ‘백인의 마음에 드는’이라는 말과 동의어일 뿐입니다. 겉으로만 칭찬으로 보일 뿐, 실제로는 사회 주류가 ‘정상’으로 설정한 인종차별의 다양한 양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죠.

마지막으로, 모범적 소수자와 험한 소수자를 나누고 여기에 인종적 특징을 부여하는 그 권력은 스스로에게 ‘기준’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특성으로서의 의미를 지워버립니다. 그 많은 소수자들이 보기엔 백인 - 유럽계 미국인이라는 것도 분명히 어떤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범적 소수자 담론 때문에 아시아계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설명할 언어고, 얻은 것은 차별을 차별이라 말하지 못할 때 생기는 감정인 ‘마이너 필링’입니다. 이른바 백인성을 내면화해 자신들에게 가해진 차별을 이제껏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설명할 필요를 못 느껴 생긴 상황인 것입니다. 이 책 전체가 바로 그 언어를 찾기 위한 탐색의 과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 책을 읽으시면서 지은이와 함께 그 과정을 함께 모색해보면서, 내 감정을 설명할 언어도 얻어가 보시면 어떨까요.



제가 꼽은 콘텐츠는 스테프 차의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입니다. 제가 오늘 꼽은 모범적 소수자라는 개념이나 지위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한 사건으로 1992년 LA 폭동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는 시위가 격해진 가운데 여러 이유로 시위대가 코리아 타운을 습격하고 미주 한인들이 여기에 대항해 싸웠던 사건이죠. 다만 이 사건 직전에 한인 마트 운영자가 근거 없이 손님으로 들어왔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이를 총으로 쏴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습니다. 이 총격 사건과 LA 폭동을 모티프로 삼아 구성된 소설이라, 미국에서 소수 인종 간의 갈등이 어떤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며 같이 읽기에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도 지난해 출간된 나름 따끈따끈한 신간이고요, 한겨레신문이 선정한 2021 올해의 책 목록에 포함돼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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