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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선생 Jan 27. 2022

시험공화국에 관한 인문사회적 보고서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 리뷰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아마 광고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배달의 민족’이 가장 많이 떠오르실 겁니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들으면 공감하실 어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시험의 민족입니다. 우리 방송도 기본적으로는 학습 입시 정보 전문 방송이고, 이 방송을 보는 청취자 대부분은 시험 당사자인 적이 있거나 시험 당사자일 겁니다. 초중고등학교의 학업 성취 평가, 토익 토플, 입사 시험, 그 이후에도 끝없는 시험 시험 시험. 한국인은 왜 이렇게 시험에 매달릴까요?

크게 나눴을 때 진보진영에 속한다고 알려진 저술가이자, 아마도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다들 아실 책 ‘88만원 세대’를 쓴 박권일 작가가 이 문제에 주목합니다. 시험이란 한국식 능력주의, 한국의 능력주의가 집약된 제도입니다. 그가 볼 때 시험이라는 제도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해 한국이 그럭저럭 살 만한 건전한 공동체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문제인 만큼 역사는 뿌리 깊고, 인식은 사회 전반에 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다른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하더라도 대안조차 마땅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험제도에 기반한 한국식 능력주의에 대해 성찰해보지 않으면, 우리 사회 속에서 마음과 몸이 힘든 사람은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식 능력주의 잣대에서 벗어나 있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이 책의 문제의식에 귀 기울여보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권일 작가가 보기에 한국은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능력주의란 업적의 지배,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한 대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한 차등적 우대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능력주의와 구별되는 독특한 몇 가지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 합니다. 아마도 외국의 다른 능력주의, 더 정확히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개척자적 능력주의 라고 부를만한 것과는 또 다른 무엇입니다. 그 차이점의 중심에 바로 ‘시험’이 있죠.

모든 청취자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 시험은 형식적 공정성을 담보하는 꽤 합리적인 방식입니다. 그와 동시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불평등을 가리고, 실질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실질적 불공정함을 정당화하죠. 게다가 여러 영역에서 형식적 공정성을 내세워 인력 채용에 들어가는 자원을 최소화하려는 여러 조직의 무분별한 시험 채용 때문에 사회의 모든 영역이 시험에 지배당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들을 통과했는지 여부가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로 작동하는, 일종의 전도현상이 일어납니다.

이 책은 한국의 능력주의 맥락에서 시험이 지니는 또 하나의 특징으로 지대추구 경향을 꼽습니다. 지대추구란 생산성의 향상이나 효용 없이 개인이 이득을 가져가는 성향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인데요. 박권일 작가는 시험이 능력을 검증하는 수단이 아니라 합격이라는 자격을 통해 시험과 무관한 영역에서 이득을 얻어가는 수단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합니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는 고등학교 입시나 대입 입시,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변시 사시 공시 외시 등 각종 시험들이 많든 적든 이런 성격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입 시험을 잘 봤다고 해서 아무 회사에서나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대입 시험에서의 성과가 취업 시장에서 꽤 중요한 잣대로 작동한다는 것 또한 한국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드리기 위해 우리 방송 또한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런 문화에 대한 박권일 작가의 진단이 모든 면에서 옳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는 학부모 청취자라면 이 책의 진단을 한 번 참고해보실 수는 있겠죠. 또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인문 사회 영역으로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이 책을 통해 사회를 진지하게 비평하는 글은 이런 형식이나 근거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구나 라는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당연히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입니다. 샌델은 미국의 맥락에서 능력주의를 논합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 샌델은 하버드 대학 교수이고, 그곳에 오는 입학생들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수준의 능력주의의 최정점에 있는 친구들이고요.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토론하는 가운데 샌델이 생각하고 느낀 점은 무엇인지, 우리나라를 벗어난 다른 맥락에서 능력주의는 어떻게 이해되고 비판받는지 알기 위해선 이 책이 가장 좋은 참고서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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