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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선생 Mar 23. 2022

지식에 관한 지식 쌓기

피터 버크의 <지식은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하는가> 리뷰


우리 방송은 교육 관련 정보를 드리는 방송입니다. 교육은 무엇을 하는 활동인가요? 답은 너무 간단합니다. 학생과 학부모에겐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활동, 교사에겐 지식을 가르치는 활동입니다. 교육에서 지식을 빼면 이 활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이나 가르치고 아무것이나 배운다면 이 활동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지식’이기 때문에 이 활동은 의미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지식에 주목해봅시다. 지식이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무거나가 지식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이것 역시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 과정이 올바르다는 것은 누가 어떻게 보증해주나요? 또한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국가가 모든 국민이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게 하도록, 다시 말해 일정한 정도의 지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왜 그래야 하나요?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지식을 갖도록 하려면 어떤 수단을 이용해야 할까요?


이 모든 질문, 어쩌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인정해 온 것들이 사실은 그리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자주 느낍니다. 그러니 지식에 관해서도 이런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지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떤 성과를 일궈 왔는지 알려주는 책, 피터 버크의 <지식은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하는가>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지식입니다.


이 책은 ‘지식’과 관련된 다양한 인문학적 연구의 내용과 성과를 간단하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주제를 압축해 선보이다 보니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책을 읽는 한 가지 방식은, 책에 나온 모든 내용을 다 알려고 애쓰기보다는 목차를 슥 훑어본 뒤에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쉬엄쉬엄 읽으면서 내가 관심을 두는 키워드가 나올 때만 집중해서 읽는 것입니다.


이 책은 그야말로 ‘지식’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 모아놓았습니다. 우선 지식 개념에 대한 인문학적 비판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한 뒤, 학문 분야나 권위, 전문화, 지식의 위계질서,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암묵적 지식, 지식이라 불렸다가 잊힌 것들, 지식을 쌓기 위해 사용된 도구, 번역 등 지식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해 볼 만한 대상이 되는 개념과 그 개념을 연구한 주요 성과를 말해줍니다.


그 뒤 지식이 지식으로서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 다시 말하면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보 수집, 분석, 확산, 사용이라는 네 단계로 구별해 설명하고, 각 단계별로 우리의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무작정 모으기만 하면 발생하는 비효율성을 없애고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왜 유럽 중세 법정에선 서면 자료를 ‘검증불가능’하다며 신뢰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과거시험이 특정 지식의 확산과 특정 지식에 대한 억압에 중요한 기제로 작동했는지, 왜 네덜란드와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그토록 현지에 대한 정보에 집착했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식’이라는 대상이 생각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접해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식에 관해 생각해볼 때 짚어보면 좋을 여러 지점들도 언급합니다. 지식이 지니는 고유한 영역이 있는지 아니면 사회의 변화에 종속돼 있는지, 발전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바뀌어가는 것인지, 어떤 지식을 다른 지식보다 더 지식’답다’고 말할 수 있는지, 오해는 잘못된 행동일지 창조적 활동일지, 성별이 지식의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언어 이전의 지식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을지 등등 여기에도 흥미로운 질문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와 연구 성과를 소개하다 보니, 이 모든 정보를 다 알고자 하는 시도는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연히 무리가 따릅니다. 그러니 이 책은 훑어 읽으면서 관심 있는 흥미로워 보이는 주제에 대해서 ‘아, 이런 문제의식이나 생각으로 연구한 사람도 있구나’라는 것을 참고하고 그 분야에 대해 알아가는 발판 정도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 모든 문제의식을 간결하게 조망해보고 ‘지식’ 자체에 대한 내 호기심을 푸는 데 이용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은 지식과 관련한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는 책이라, 대체로 거의 모든 문단이 문제-답변-연구자의 연속입니다. 그러면 재미있어 보이는 주제에 대해 이 책에서 소개한 학자와 그의 책을 읽어보는 게, 올바른 책 사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체로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만약 번역까지 돼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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