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메 앤터니 애피아의 <세계시민주의> 리뷰
이제는 외국의 문화를 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화, 우리나라에서 만든 문화 콘텐츠도 외국에서 좋은 소식을 많이 전해주고 있죠. 2000년대 일본의 배틀로얄 신드롬이 2020년 우리나라에서 오징어게임이 됐고, 1990년대 영국과 미국의 보이·걸그룹 트렌드와 2000년대 일본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뒤섞은 2020년대 한국은 BTS와 블랙핑크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한쪽에선 이런 혼합의 흐름에 저항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소수민족’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한국 문화를 중국의 것으로 소개하려들고, 미국은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배척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 트럼프라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외국 얘기만은 아닙니다.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 동포와 중국인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규모가 다소 작은 나라 사람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심하게 차별하고 있다는 것 또한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문화의 교차와 배척이 동시에 이뤄지는 이런 시대, 우리가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란 무엇일까요? 철학자들은 대체로 세계시민주의에 그 답이 있다고 여기고, 바람직한 세계시민주의적 태도가 무엇인지 다양하게 논의해 왔습니다. 오늘 읽을 책은 그 논의 중 하나로, 가나 부족장 가문 출신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철학자인 콰메 앤터니 애피아식 세계시민주의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세계시민주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이란 말은 자신이 특정한 공동체에 소속돼 있지 않다는 것을 표방하는 이념에서 시작됐습니다. 코즈모폴리턴이란 우주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코스모스와 시민을 뜻하는 폴리테스의 합성어인데요.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 철학자들은 ‘니들은 조그만 공동체에 속한 시민일 뿐이지만, 나는 대우주에 소속된 시민이다’라고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해 이 말을 만들어냈다고 하네요. 그러다 이 말은 하나님이 관여하는 단일한 세계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말로 이해됐다가, 교통 통신 수단의 발달로 이젠 정말 명실상부하게 지구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이해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시대에 들어와선 우리가 진짜 지녀야 할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그 의미가 또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특정한 공동체에서 자라나며 ‘인간’이 되는 방법을 배운다는 현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로부터, 그 뒤에는 학교에서, 더 자라서는 회사나 동호회 등 특정한 문화 집단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우리는 사람으로 자라나죠. 이런 현실적 조건 때문에, 좁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이 인정하는 문화만이 옳고 다른 문화는 그르다는 폭력에 빠지고, 그 반대편에선 모든 문화가 옳다면서 서로 건드리지 말자는 상대주의로 빠져듭니다. 완전히 반대편인 것처럼 보이지만, 애피아에 따르면 양쪽 다 생각의 기준이 ‘내 집단’이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폭력이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명백해서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데, 상대주의는 우리에게 철학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논의할 만한 주제를 던져줍니다. 가치 자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을 지닌 어떤 것인가, 과연 서로 다른 집단 각자의 문화가 같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가, 그들이 가치에 관해 설명할 때 사용하는 용어는 같은 의미를 지니는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모두 동의할 만한 그래서 모두가 같은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반이 되는 보편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는 구성이라도 할 수는 있겠는가. 여기에다 ‘보편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들이 실제론 서구라는 특정 지역의 가치관을 다른 집단에 ‘보편적’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이라는 제국주의적 논의까지 더하면, 상대주의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문제의 목록을 대강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고방식에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에서 접근한다면, 애피아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호기심과 대화입니다. 우리가 상대주의의 모든 논변에 동의한다고 해도, 여전히 어떤 인간에겐 다른 집단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저 낯설고 신기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죠. 그렇게 호기심을 가진 두 인간이 만나면서 두 집단은 서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목록을 확인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려보고, 각자의 기반 위에서 상대의 문화를 재해석하고 수용합니다. 이런 조합은 대체로 인류의 역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고유’의 문화라고,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이런 혼합의 결과물입니다. 이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계시민주의적 태도는커녕 인류가 쌓아 올린 문화 전체를 거부하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애피아의 입장입니다.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마사 누스바움의 <세계시민주의 전통>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룬 책은 아직 9.11 테러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2006년에 나온 책이고, 현안이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를 파헤쳐보는 방식으로 세계시민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에 접근합니다. 보통 이걸 철학에서는 ‘분석적’이라고 말하는데요. 누스바움의 <세계시민주의 전통>은 2019년에 나왔고, 이 책 이후에 진전된 논의와 누스바움 자신의 입장을 포함시켜 역사적인 맥락을 짚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습니다. 같은 주제를 다루며 다른 접근법과 입장을 지닌 두 책을 비교해보며 읽는 것은 매우 좋은 독후활동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