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지의 <며느라기> 리뷰
수요독서 코너를 제가 맡은 지 딱 100번째 되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매주 수요일 이 자리에 앉아 좋은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방송을 들어주신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저 곰선생과 함께 해주신 모든 청취자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대학 동기인 민사린과 무구영. 학교에 다닐 때는 그저 그런 사이였고 졸업 후엔 자연스럽게 멀어졌지만, 몇 년 뒤 우연히 서점에서 마주치곤 다시 연락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결혼까지 이어지고, 민사린은 낭만적이고 멋지면서 상대 부모와도 즐겁게 지내는 그런 결혼생활을 꿈꿉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생일, 시부모의 결혼기념일, 제사와 설을 거치면서 민사린은 점점 어딘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가사노동을 비롯해 모두 자신에게 지워지는 이른바 집안일 관리의 부담, 자신의 처지가 부당한지 아닌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묘한 답답함을 이해해주지 않는 남편 무구영까지. 결혼 생활이란 이런 것이었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런 결혼 생활을 하면서 사는 걸까, 민사린은 혼란에 빠집니다.
민사린과 무구영의 결혼 생활은 어떻게 될까요? 민사린이 처한 상황과 그로 인한 답답함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을 2018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 <며느라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학생인 아이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아마도 결혼을 해보셨거나 지금 결혼생활을 하시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라서 결혼에 관한 경험도 없고, 그러니 결혼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게 오히려 주제넘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이 만화가 눈에 들어왔고 이 자리에까지 가져온 이유는, 제가 아는 한 결혼이라는 사회적 결합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거리를 두고서 낯설게 보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 이 만화에서 보여주는 결혼의 단면이란 ‘누군가는 힘들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차별’입니다. 힘들어지는 그 누군가는, 이 만화의 제목이 보여주듯 결혼 생활에서 며느리의 위치에 놓이는 사람들이고요. 며느리가 아닌 사람들이 며느리에게 온갖 짐을 지우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의 며느리인 사람조차도 상황에 따라 자신이 며느리가 아닌 위치가 되면 며느리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짐이 되는 존재로 바뀝니다.
그럼에도 며느리라는 사회적 위치는 이 상황에 대해 “싫어요” “아니오”라는 답변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가족에겐 잘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규칙 때문에, 더군다나 내 남편의 부모라는 대하기 어려운 사회적 위치를 차지한 사람에겐 그 규칙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는 사회적 압력 때문에, “나(또는 너) 하나만 조금 양보하고 참으면 모두가 편안하다”는 공기 때문에, 며느리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의 구조 속에서 그 역할을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차별의 피해자가 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며느리가 되는 기간을 이 만화는 며느라기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차별인 이유는, 거울에 비친 것처럼 같은 상황인 남편에겐 이런 짐이 거의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 차별이 존재하지 않고, 또 이것이 구조적인 게 아니고 결혼한 사람들의 일부에게서만 벌어지는 일이라면, 명절 직후에 이혼율이 높게 나타나는 ‘추세’가 있다는 우리들의 상식 또한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것이 바로 이 만화의 절정 부분이 설날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 만화에 대해 설명드릴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인 것 같고, 더 풍부하고 직접적인 경험을 지닌 청취자분들이 각자 이 만화를 읽으신 뒤에 느낀 점을 정리해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한 번 가지고 와 보았습니다.
제가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드라마 <며느라기>입니다. 이 만화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서 카카오TV에서 오리지널 드라마 콘텐츠로 제작했습니다. 드라마 역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카카오TV라는 OTT를 대표하는 콘텐츠가 됐습니다. 지난주에 시즌2가 마무리됐네요. 배우 박하선씨가 민사린 역을 맡아서, 결혼 과정에서 지니게 되는 미묘한 감정선을 잘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드라마다 보니, 만화에 비해 조금 더 자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결혼에서의 차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만화의 표현법과 드라마의 표현법, 만화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다른 차별들을 드라마를 통해 접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오늘이 여러분과 100번째 만나는 시간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제 개인 사정 때문에 오늘 방송을 마지막으로 수요독서에서 하차합니다.
제가 방송을 막 시작할 무렵 함께 해주셨던 공동진행자 최선생님과 사회자 민우님이 저를 이 자리로 이끌어주셨고, 이렇게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청취자 여러분을 찾아뵀습니다. 매주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우리 교육진담 수요독서 코너에서 학부모와 학생 청취자 여러분을 매주 만나면서, 어떤 책을 읽으면 우리 학생들이 교양 있는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을까 또 동시에 획일적인 입시 관련 독서록 환경에서 남들 다 읽는 뻔한 고전이나 베스트셀러에서 벗어나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돋보이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책 100권을 선정하고 정리해 왔습니다. 제가 이 방송에서 여러분께 건네드린 정보가 제 이야기를 들은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제 소원을 이룬 것이니 정말 기쁠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육진담 수요독서를 저와 100주 동안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청취자 여러분들께서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훌륭한 시민으로서 바람직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또 온갖 듣지도 보지도 못한 주제의 지문이 턱턱 출제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독서 비문학 영역에 당황하지 않고 대비하기 위해, 즐거운 독서생활을 꾸준히 이어나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