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미 Feb 29. 2020

D+40 | 퇴사인의 아침

5부 | 무궁무진한 우리의 앞날 - 퇴사하기 좋은 날

5부 | 무궁무진한 우리의 앞날

[그림28] 무궁무진한 우리의 앞날

퇴사를 체감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주말 창업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무궁무진스튜디오' 가 이제 나의 본업이 되었고, 주말마다 장난꾸러기 초등학생들을 만나서 함께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학부모와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우리가 직접 만든 사춘기 뮤직의 쇼케이스를 열였다. 함께 일 하는 사람들과 서로 알아가는 과정도 재미있다. 작업실에 찾아가 새벽까지 함께 맥주를 먹으며 같이 인도 여행을 떠나자고 작당 모의하기도, 잘 가르쳐 주는 요가원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어느 날 건강보험료 납부 통지서가 날아왔고, 마지막 월급이 입금되었다. 우리의 김철수는 퇴직금 처리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나와 동료 B의 연락을 몇 차례 받고 나서야 꾸역꾸역 일을 처리해주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D+40 | 퇴사인의 아침


수영장에 다녀오는 길에 지하철 역 앞의 분주한 사람들을 보니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늦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마음 쓰는 사람들이 애처롭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 썼던 자기소개서를 예전 메일에서 찾아 읽어 보았다.


자기소개서 안에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반짝반짝 빛나는 스물일곱의 내가 있었다. '바람처럼 흘러 흘러 살 테다' 말하고 다니던 나는 대학시절 회사와의 협업 경험을 계기로 회사에 흘러들었고, '이곳에서 더 빛나는 사람이 돼야지'라고 다짐을 했었다. 회사에서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음이 조금 닳았고 눈빛도 조금 낡았다. 그렇지만 결코 남루하진 않다. 나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진해졌다.


이제 불과 첫 잔을 우려냈을 뿐이다. 차의 제 맛은 두 번째 잔부터 이지 않은가. 이제 다시 시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D+30 | 퇴사하기 좋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