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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느낀 순간

by 서준수

나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교체하는 것을 좋아했다.

최근 내가 나이 듦을 느낀 순간은 전자 제품을 사는 기쁨보다 설정하는 귀찮음이 더 커졌을 때다.


처음엔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이 기능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큰 변화가 없어서 그런가 싶었다. 폰을 바꾸는 것이 하나의 일로 느껴졌다. 데이터는 언제 다 옮기나, 액정 보호 필름은 한 번에 잘 붙을까, 케이스는 어떤 걸로 사야 하나. 빨리 다 처리하고 끝난 상태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지금은 새 케이스를 사놓고 2주째 갈아 끼지 못하고 있다. 후순위로 밀리다 자꾸 잊는다.

최근엔 새 노트북을 샀는데, 택배 온 그 상태 그대로 아직 박스조차 뜯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신나서 빨리 만져보고 싶었을 텐데. 새 노트북을 들고 어깨춤을 한 번 췄을 텐데. 지금은 언제 필요한 하드웨어를 추가하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나 걱정이 앞선다. 그 과정이 즐거운 여정이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이 되었다.

여유가 없어진 걸까? 게을러진 걸까? 그렇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내가 좋아하던 일이 하나 사라진 셈이니까.

주술회전이란 만화의 등장인물인 나나미라는 캐릭터의 대사 중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당신은 그간, 여러 번 사선을 뛰어넘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어른이 된 건 아니에요. 베개 밑에 빠진 머리카락이 늘어나거나, 좋아하던 야채빵이 편의점에서 자취를 감추는 등, 그런 작은 절망들이 겹겹이 쌓여 사람을 어른으로 만드는 겁니다.'


지금 나는 작은 절망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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