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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잉 Dec 21. 2016

너의 머리끈

또 생각나

이만한 잉여 생활이 있을까 싶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미칠 듯이 네 생각만 떠올라서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듣는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방에 불을 꺼두고, 오디오로 노래를 틀어놓고, 혼자 소파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 노래를 듣고 있었다. 문득 바지 왼쪽 뒷주머니에 뭔가가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바지 왼쪽 주머니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오른쪽 뒷주머니는 휴대폰이나 지갑을 넣을 때 외에는 사용하지 않다 보니 세탁기에 넣기 전에는 뒷주머니는 잘 확인 안 하고 앞주머니만 확인하고 항상 빨래를 했다.


그래서 그런가.


바지 왼쪽 주머니 안에 있던 건 너의 머리끈이었다. 처음에는 네 머리끈이라고 생각이 들지도 않고 '이게 왜 있지?' 란 의문만 들었다가, 내가 이 바지를 사입은 후에 만난 여자는 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네 머리끈이 왜 내 바지 뒷주머니에 있나 생각을 했다. 네가 혹시 나 몰래 넣어두었나? 데이트를 하다가 네가 놓고 가서 내가 챙겨둔 건가? 그렇게 몇 분 동안 기억을 되새김하다가 예전에 네가 내 차에서 머리끈을 잃어버렸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밤인데도 내 차를 다 샅샅이 훑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너의 머리끈을 찾고, 혹여나 오른쪽 뒷주머니에 넣어두고 지갑을 넣었다가 지갑을 꺼낼 때 같이 빠질까 봐 사용하지도 않는 왼쪽 뒷주머니에 넣어두었었나 보다. 그리고 너에게 돌려준다는 걸 잊고 있었던가 보다.


계절이 여름이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몇 월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 이 머리끈 하나가 그 날 너와 함께 있었던 일들을 모두 떠올리게 해준다. 나는 그 날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었고, 밤인데도 너를 만나러 차를 끌고 너의 집으로 찾아갔었다. 그리고 너는 내 차를 타고 우리는 공원으로 가서 공원을 걷다가 흔들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이 머리끈을 발견한 게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머리끈이 아니었으면 네 생각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불행인데, 그래도 이 머리끈 덕에 너와의 추억이었던 하루를 더 자세히 기억해 낼 수 있는 것 같아서 행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행운이라고 생각해야겠다.


나중에 너를 만난다면 이 머리끈을 건네주면서 그 날의 기억을 함께 떠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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