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특별한 술문화
내가 처음 술에 취해 본 적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신고식에서였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군대 같은 신고식은 소주와 맥주를 섞어 놓은 폭탄주를 사발에 부어주면 그걸 원샷하고 학번과 이름을 틀리지 않고 외치는 거였다.
모든 신입생들은 돌아가며 그것을 해야 했고, 한 단어라도 틀리면 다시 한 사발을 더 마셔야 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술을 한 번에 마셨고, 머리는 빙빙 돌아, 몇 번 틀리는 바람에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몇 잔 더 마셨던 것 같다.
대학교의 술문화조차도 이렇게 군대식이었다면 예전의 직장 내 술문화는 더욱 군대식이었다.
건배사 이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세 번을 외치고 모두 건배를 하고 잔을 깨끗이 비우는 모습은 X세대 직장인이라면 흔하게 겪던 일이다.
술을 잘 먹는다는 건 한국에서 장점이다. 내가 술을 잘 먹어서 흐트러지지 않는 내 모습을 유지하고, 다른 동료나 친구들을 마지막까지 챙길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는 아주 큰 장점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술 잘 드세요? 술 세세요?라고 묻는 다면, 그 대답은 “조금 마십니다.”라고 할 것이다. 술을 잘 먹는다는 것은 장점으로 인식되지만 겸손하게 그냥 조금 마신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잘 마십니다”라고 했다가는 엄청 권할 수 있다는 위험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의 주량을 알고 있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주량을 확실하게 아는 이유는 잔을 비우고 나서야 새잔을 채우는 주도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내가 몇 잔을 마셨는지 셀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에게도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 자꾸 물어본다.
하지만
서양처럼 각자 마시고 싶은 술을 주문해서 마시거나, 스스로 따라 마시는 문화, 혹은 잔을 완전히 비우지 않았음에도 계속 가득가득 부어주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도대체 내가 몇 잔을 마셨는지 셀 수가 없다.
한국에 가 가장 흔히 먹는 술은 소주이다. 소주는 소주잔으로 7잔이 나온다. 그래서 몇 잔 마셨는지, 몇 병을 마셨는지 쉽게 계산할 수 있다.
한국은 술에 관대하다. 드라마를 보면 흔히들 술에 취한 주인공의 모습이 나오고 이런 모습은 매력적이거나 인간적이라고 시청자들은 생각한다.
Richard D. Lewis의 저서 When Cultures collide에서는 한국의 술문화에 대하여 이런 설명이 있다.
“ Korean sometimes become more affectionate after a few drinks but will usually apologize for being drunk ( the same evening and again the next day) It is important to socialize and drink with Korean in the evening, a certain degree of inebriation on both sides is permissible and expected.
번역 : 한국인들은 술을 몇 잔 마신 후에 더 애정 어린 모습을 보일 때가 있지만, 술에 취한 것에 대해 보통 그날 저녁과 다음 날 다시 사과합니다. 저녁 시간에 한국인과 함께 사회적 활동을 하고 술을 마시는 것은 중요하며, 양쪽 모두 어느 정도의 취함은 허용되고 취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에서 ‘언제 술 한잔 해요’라는 말은 더 친해지고 싶다는 말이다.
한국과 같은 집단주의, 간접적인 메시지 전달의 고맥락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가진 곳에서는 나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성숙되지 못하다고 인식을 준다. 많은 상황에서 한국인은 괜찮은 척 감정을 억제하거나, 더 큰 집단의 목적을 위해서 개인적인 욕구를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소하고 좀 더 나스러운 내가 되는 순간이 바로 술을 마신 순간이다.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 완벽해 보이는 주인공들은 술을 마신 후 그 감정을 드러낸다. 사회적으로 잘 맞춰 가는 나로 살던 하루를 마치고, 술을 마시며 그 감정을 해소한다.
그래서 그 순간은 우리는 좀 더 감정을 드려내는 모습, 흐트러진 나의 모습을 사람들은 용납하게 된다.
상대가 내 앞에서 그렇게 술에 취한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은 마치 내가 상대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한다. 이 사람은 진짜 자기의 모습, 마음속에 있는 자기표현을 할 만큼 나를 믿고 있구나라는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이다.
직장 드라마에서는 특히나 술 먹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온다. 코로나 이후 회식 문화는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직장인들은 여전히 삼삼오오 술을 마신다. 금요일 저녁은 불금이라고 하여 술집이 많은 거리에는 언제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누군가 승진을 해서 축하할 때도, 누군가 승진에 누락돼서 위로할 때도, 누군가의 아이가 좋은 대학에 붙어서 축하할 때도, 손님이 왔을 때도, 누군가와 오래간 만에 만났을 때, 친구가 연인과 헤어져서 위로할 때에도 우리는 술을 마신다. 한국인에게는 술을 마실 이유가 수만 가지이다.
영업을 하거나 고객과의 관계를 더 깊이 가져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술을 마신다.
나는 중국에서 싱가포르 업체에 일하면서 설비 영업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을 담당하는 영업 사원이었다.
영업을 하며 술을 못 마신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어떻게 영업을 해요라고 물을 시절이었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술을 잘 마시지도 못했다. 하지만 영업을 하며 고객과 친해지기 위해 저녁 식사자리에 최대한 참석하려고 했었다. 한국에서 출장자들이 오는 날이어서 그날따라 상당히 많은 고객들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소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에게도 술을 권했지만 당시 술을 거절하는 것은 고객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술을 받았다.
하지만 공급업체인 나는 고객사에서 출장을 온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처음 대면하는 분들이었다.
아무래도 나에게 다들 술을 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잠시 고민하고 전략을 세웠다. 어떻게 주는 술을 거절하지 않고 마시면서 최대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 순간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그때 거래를 해오던 고객사 측의 한분이 몸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분을 타깃으로 삼았다. 나에게 누군가 술을 권할 때마다, 그 컨디션이 좋지 않은 분께도 술을 권해 같이 건배를 하자고 한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했지만, 함께 마시자는 나의 제안을 기분 좋게 받아들여서 내가 마실 때마다 나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 그리고 나의 타깃인 그분과 함께 건배를 권하며 함께 마셨다.
그리고 그 컨디션이 좋지 않은 분은 술이 취해서 비틀거렸다. 이후 여성에서 술 마시며 먼저 취했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셨는지 내가 아주 술을 잘 마시는 주당이니 조심해야 할 인물이라고 소문을 내주셨다.
덕분에 나는 그분 덕에 아주 술을 잘 마시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고 이후 누구도 함부로 나에게 술을 억지로 권하거나 도전하지 않아서 아주 영업이 편해졌다. 내가 술을 마시면, 천천히 마실만큼만 마시세요라고 하며 내가 혹여나 술을 상대보다 잘 마시면 괜히 상대가 먼저 흐트러진 모습을 모시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제는 술을 강요하거나 무조건 마셔야 한다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서로에게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을 강권하는 문화는 사라져 간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힘든 하루를 스트레스를 풀고 힘들었던 마음을 표현하며 위로해 주는 방법으로 함께 술을 마신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술 마신 이후 지켜야 할 문화가 있다.
술을 아무리 많이 마시고, 새벽까지 마셨다 할지라도 다음날은 제시간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기본 매너이다.
그래서 한국은 어쩌면 하루 평균 수면시간 7시간 41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꼴찌인 대표적인 수면 부족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