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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스터 Oct 12. 2021

음원 vs 음반

“음원 판매와 음반 판매, 둘 중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공한 뮤지션 이자 메이저 연예기획사를 일구어 낸 박진영 씨가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흥미로운 질문이다. 디지털 콘텐츠인 음원과, 콤팩트디스크(CD)와 같은 실물 형태인 음반의 판매 실적 중 어떤 것이 중요할까? 언뜻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 디지털 플랫폼의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시대이기 때문에 가수와 제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는 디지털 음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박진영 씨는 달랐다. 그는 음원 판매보다 음반, 즉 앨범 판매량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수익은 음반보다 디지털 음원에서 발생되는데 얼마 되지 않는 음반 판매 수익을 더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디지털 음원은 그 가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구매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만 있으면 음원을 쉽고 빠르게, 심지어 음반 대비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스트리밍 해서 들을 수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따라서 그 가수를 열렬히 좋아하지 않아도 정말 그 음악이 듣기에 좋아서 구매할 수도 있고, 당시의 화제성이나 관심사에 의해 구매를 할 수도 있다. 즉, 그 가수에 대한 호감이나 충성도가 아닌 ‘단기적인 흥미, 관심’에 의한 구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가수의 앨범을 구입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 가수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이 앨범을 구매한다. 어떤 가수를 꽤나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도 앨범을 직접 구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야말로 소수의 “찐 팬”들만이 최애 가수의 앨범을 구입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앨범을 추가로 재구매하기도 하고, 가수와 관련된 다양한 머천다이징(MD)을 구매하며 부가 수입을 올려준다. 투어가 열리는 도시마다 따라다니며 같은 공연을 여러 차례 관람하는 팬들도 상당하다. 전체 매출액은 물론 음원 수익이 더 클 수 있지만, 고객 한 명당 발생되는 매출은 음반을 구매하는 고객의 경우가 훨씬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찐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그저 혼자 좋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변에 “영업”을 한다. 가수의 소속사가 열심히 홍보를 하지 않아도, 이 찐 팬들이 영업을 해주고 친구와 가족을 “입덕”시켜주고 있다. 이런 찐 팬, 마케팅 용어로 충성고객들의 중요한 효익은 앞서 언급한 지속적이고 추가적인 매출 창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바로 이 충성고객들은 혼자서 ‘덕질’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주변에 적극적으로 ‘영업’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 지인, 친구, 가족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TV 속 화려한 광고를 봐도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이 없고 기업의 협찬을 받아 작성된 블로그나 유튜브, SNS 게시글은 귀신같이 차단하지만 친구가 지나가듯 던진 한 마디에 솔깃해져서 어떤 식당을 검색하고 어떤 브랜드를 구매하기도 한다. 소속사가 광고비를 들여서 새로운 앨범을 홍보할 때는 꿈쩍 하지 않던 사람들이 주변 친구의 적극적인 추천과 소개에는 슬며시 “나도 한 번 들어볼까?”하는 마음이 든다. 이것이 팬의 영향력이고, 박진영 씨는 이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팬덤의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팬들끼리 모여 연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팬덤이 커뮤니티가 되면 사회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다. 영향력은 가수와 소속사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된다. 가수를 둘러싼 부정적인 이슈가 생겼을 때는 소속사보다 더 먼저, 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방어 전선을 펼친다. 소속사가 소비자와 직접 다투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전략이고, 그에 따른 피해도 발생하지만 팬덤 커뮤니티는 그런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악의적인 비방이나 근거 없는 부정적 정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대신 싸워 주기도 한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2020년과 2021년, 우리에게 얼마 안 되는 즐거운 소식 중 하나였던 BTS의 빌보드 차트 정복의 배경에는 BTS를 사랑하고 지지하며, 적극적으로 알리고 붐을 만들어낸 강력한 팬덤 커뮤니티, 아미(ARMY)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미는 단순히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고 쫓아다니는 팬클럽의 수준을 뛰어넘어 새로운 문화 현상을 만들어 냈다.



 BTS는 데뷔 전부터 SNS를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에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을 알리기 어려운 데뷔 전이나 데뷔 초기, SNS와 같은 뉴미디어를 통해 소통을 하면서 소수의 팬들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성된 초기 아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바탕으로 활동 무대를 미국으로 옮기고 레거시 미디어, 즉 쇼 프로그램들에 모습을 비추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팬클럽이 확장되고 인지도도 상승했다. BTS는 핵심 팬 층인 10대와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1억 원을 기부하거나, 청소년 폭력 근절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핵심 고객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이들이 공감하고 선호할 수 있는 콘텐츠로 소통하는 전략, 즉 마케팅의 기본을 충실히 수행해나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SNS와 유튜브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를 수상한 직후 애프터 파티를 마다하고 V 라이브로 아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때로는 스타와 팬의 관계를, 때로는 친한 친구 같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메시지와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 BTS를 위해 팬클럽 아미는 커뮤니티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 라디오 방송국에 그들의 음악을 틀어 달라고, 쇼핑몰이나 레코드 샵에 그들의 음반을 판매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한국어 노래를 부르는 BTS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팬들은 가사를 직접 번역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공유하며 BTS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마치 복음전도자들처럼 말이다. 팬들의 이런 행동들이 보여주는 대세감과 바이럴 효과는 BTS의 빌보드 차트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미 아미는 BTS의 단순한 팬클럽이 아니다. 아미는 BTS의 한 부분이나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물론 아미가 유독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이유는 BTS의 진정성 있는 피드백과 소통 때문이다.


 혼자서 아이돌을 좋아해도 되는데 팬클럽에 가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소속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특히 사춘기와 불안한 정체성과 자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같은 안정적이지 못한 자아를 지닌 10-20대에게 이 커뮤니티는 자신들을 위로해주고 서로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집단은 학교나 학원이 아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공동체이자 아지트가 된다. 그리고 커뮤니티가 규모가 커지고 소속감과 일체감이 높아지면 그들은 외부의 인정을 받고 싶어 지게 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인정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동이 영향력을 갖고 변화를 불러일으킬 때 집단이 느끼는 만족감과 성취감은 또 다른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


 이렇게 특정 대상(제품이나 브랜드, 인물이나 서비스 등)에 대한 우호적인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 그것은 한 명의 팬이 ‘영업’할 때보다 비교도 안 되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콘텐츠와 이야기들이 생성되기 시작하고 이는 곧 SNS를 타고 멀리 퍼진다. 특히 강력한 팬덤은 위기 때 빛을 발하는데, 근거 없이 악의적인 뉴스가 대상을 공격할 때 이 팬덤은 누구보다 먼저 방패 역할을 수행한다. 온라인과 SNS의 전반에 노출되는 뉴스마다 화력을 집중해서 대상을 보호하고 변호한다. 좋은 소식은 널리 알려주고, 나쁜 것은 막아주고 소멸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기업이나 소속사가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신뢰도가 높고 구전효과가 크다.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들은 기업이 일방적으로 보내는 광고보다 커뮤니티의 후기와 댓글, 온라인 쇼핑몰의 후기 등 나와 비슷한 다른 소비자의 경험을 보며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브랜드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고, 더 신뢰감을 느끼곤 한다. 따라서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적극적인 소수 고객으로부터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단순한 구매 고객을 많이 만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아무 반응 없이 조용히 구매를 하는 고객도 중요한 고객이지만 우리가 만든 제품에 열광해주고 주변에 추천해주면서 위기 때 우리를 지켜줄 화력을 보유한 팬덤이 있다면 엄청난 수준의 광고비를 지출하는 큰 브랜드들이 부럽지 않다. 오히려 고객과의 관계 형성에 무관심하고 당장의 매출 규모에만 신경 쓰는 큰 브랜드들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굼뜨고 느린 공룡처럼 보일 뿐이다. MZ세대는 더 이상 메이저 브랜드가 메이저라는 이유로 좋아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작은 브랜드라도 내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한다면 열렬히 빠져들고 적극적인 팬이 된다. 특히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빠르고 넓게 확산되는 지금의 시대를 생각해본다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팬덤의 유무는 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자료 출처 : 배민문방구)


 지금은 대형 유니콘이 되었지만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시작한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배달의 민족이 브랜드 팬덤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효과의 좋은 사례이다. 배민의 B급 정서와 키치한 감성을 좋아하는 팬들은 2016년 배짱이(배민을 짱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팬클럽을 결성해 활동 중이다. 이들은 배민 문방구의 여행용 캐리어에는 ‘짐 캐리’, 지우개엔 ‘흑역사를 지우개’, 포크 숟가락은 ‘찍먹’이라는 기발한 이름을 제안했고 배민은 이런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하고 실제 출시까지 진행했다. 유명한 할리 데이비슨 오너 그룹(H.O.G), IBM의 아이디어 스톰 그룹, 레고의 쿠우소오 그룹들의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브랜드와 핵심 팬들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제품 개선과 개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이른바 디지털 시대의 브랜드, 디지털 시대의 마케터라면 ‘관심’보다는 ‘호감’, ‘일반 고객’보다는 ‘충성고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타깃이 넓을 필요가 없다. 날카롭게 찌를수록 깊이 들어가고 더 깊게 퍼진다. 시장을 한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타깃을 좁혀서 집중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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