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오대산 선재길을 걸으며 생각하다
아침과 저녁으로 급 쌀쌀해져 버린 요즘 날씨. 앉아만 있다간 갑자기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또 패딩의 계절이 올 것만 같았다. 이렇게 가을을 보내선 안되잖아? 그래서 다녀온 강원도 오대산 선재길. 아무리 할 일이 많고 바쁘더라도, 한 번씩 힐링이 있어줘야 더욱 탄력 받고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기에 떠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길은 이모와 사촌동생은 벌써 4번은 다녀온 길. 그들의 여행길에 이번엔 내가 함께 했다.
오대산 선재길의 코스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가장 기본적이며 정석으로 불리는 월정사-상원사 코스(9.1km)를 편도로 걷기로 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어난 탓에, 오전 9시가 넘어서 월정사에 도착하여 붐비지 않고 이 가을을 즐길 수 있었다.
오전 9시의 강원도는, 굉장히 너무나도 추웠다. 얇은 경량 패딩을 입어서 망정이지, 없었으면 이미 산행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눈 앞에 펼쳐진 풍경들은 이른 추위에도 끄덕하지 않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햇볕의 인사가 온몸에 가득 해졌다. 그제야 사람들의 몸짓에 힘이 생긴다. 나 또한 팔을 더욱 열심히 흔들며 걸어갔다.
약 9km를 걸으며 참 많은 사람을 마주했다. 본능적으로 걸으며 나의 또래가 있는지 살피기 일쑤였는데, 서로 아이컨택을 하며 '너도 왔니?'의 영혼의 인사를 나눈 사람은 단 1명뿐이었다.
문득 깨닫게 되었다. 이 곳 강원도 오대산 선재길은 2030 세대보다는 5060 세대 이상의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였다. (물론 가족과 함께 온 젊은이도 종종 있긴 했지만, 무리는 없었다.) 개인의 취향 차이라는 이유도 분명하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젊은 사람들은 도심 속에서도 즐길 수 있는 일이 많기도 하고, 먼 산속까지 시간과 돈을 쓰기엔 여유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산이라는 공간에 오는 것 대신, 카페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도심 근처의 축제에 참여하는 것으로 콘텐츠를 즐긴다.
여긴 마치 20대의 한강 같은 공간이잖아?
젊은이는 적고,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어르신들을 보니 이 곳은 분명히 그분들의 핫플레이스였다. 마치 2030 세대가 한강을 즐기는 모습과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여서 그분들을 관찰하는 게 꽤나 흥미로웠다. 산이라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돈을 내지도 않은 공간이다. 어르신들은 이 자연 속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계곡 앞에 앉아 간단히 안주를 즐기신다. 이 곳은 무료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동시에, 어른들께는 자신의 또래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나도 여기선 어린아이였다.
아직 20대 중반밖에 되진 않았지만 사회에선 나름(?) 어른 취급을 받는데, 그래도 나이는 상대적으로 보는 시선도 크다 보니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대산 선재길을 걸으며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두 번이나 미끄러지고 말았는데, 그때마다 주변의 어르신들께서 참 많이들 손을 건네주셨다. 마치 갓난아이의 행동을 보듯 함께 걱정해주시고, 건네는 그 한마디 한마디가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동시에 잘 해냈으면 하는 애정 어린 응원으로 다가왔다.
이 길을 걸으며 내면 속에 갖고 있는 무의식 속의 편견을 내려놓고 다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그분들의 나이를 갖게 될 것이다. 각자가 아는 범주만으로 평가하지 말고 더욱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표현과 그 방식이 다를 뿐, 서로를 생각하는 그 마음은 모두가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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