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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Feb 26. 2018

백 권도 열흘이면 족하다

읽어야할 책이 너무 많다는 불평은 조선시대 후기부터 이미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산 정약용은 "옛날에 전적이 많지 않았을 때에는 책을 읽어 외우는 것에 힘썼는데, 지금은 사고의 책만 해도 한우충동하니 어찌 일일이 읽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외우거나 일일이 읽기엔 책의 양이 많아졌단 뜻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책읽기가 요구된다는 분석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정통 성리학의 관점에서 독서는 종교행위에 가까운 경건함을 가진 행위였다.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책을 "그냥 대충 보아 넘기고 나서 널리 보고 많이 읽었다며 떠벌리고 다녀서는 안된다"고 엄중히 경고한다. 책을  진리 그 자체로 인식한 이들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책의 가치에도 정성을 다했다. 


"책을 읽을 때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지 말라. 손톱으로 줄을 긋지도 말고, 책장을 읽어 자신이 읽던 곳을 표시하지도 말라. 책머리를 돌돌 말아서도 안되고 책 표면을 문지르거나 땀이 찬 손으로 책을 들고 읽지도 말라. 책을 베지도 말고 팔꿈치로 괴지도 말라. 술 항아리를 책으로 덮어서도 안 되고 먼지를 털어 청소하는 곳에서는 책을 펴보지도 말라. 책을 보다가 졸아서 어깨 밑이나 다리 사이에 떨어져 접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책을 던지지 말고, 심지를 돋우거나 머리를 긁은 손가락으로는 책장을 넘길 생각도 하지 말라. 책장을 힘차게 넘기지 말고, 창문이나 벽에 책을 휘둘러 먼지를 떨지 말라." 

성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식의 책읽기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이 기준을 액면그대로 비추어보면 현대인들은 아무도 제대로 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조선 중후기 영정조 시대부터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예부흥에 더불어 중국서적이 수입되면서 서적 종수가 유례없이 늘어났다. 독서법에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출판유통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서 자연히 선별적 읽기와 계열화의 독서가 중요해지게 됐다. 특히 실천적 학문을 추구하는 실학자들의 독서법은 성리학자들과 것과 대조적이었다. 다산은 이렇게 강조했다.


"무릇 한권의 책을 얻더라도 학문에 보탬이 될만한 것은 채록하여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 공부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정약용 '두 아들에게 답함')


독서를 신성시하던 성리학자들에게 "학문에 도움이 될만하지 않으면 눈길도 주지 말라"고 하는 주장은 매우 논쟁적이고 충격적인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는 정보를 제대로 습득해 제 것으로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추려 읽고, 건너뛰며 읽기의 중요성은 이미 이때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 권의 책이 대략 70~80면쯤 된다면 그 정화로운 것을 추려 내면 10여 면에 지나지 않는다. 속된 선비는 처음부터 다 읽지만 그 알맹이의 소재는 알지 못한다. 오직 깨달음이 있는 자는 (...) 한 권 안에서 단지 10여 면만 따져 보고 멈추어도 전부 다 읽은 사람보다 보람이 두 배나 된다. 이런 까닭에 남들이 바야흐로 두세 권의 책을 읽을 적에 나는 이미 1백 권을 읽어 치울 수 있고, 보람을 얻는 것도 또한 남보다 배나 된다. " (홍길주 '수여방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한해 출간되는 출판물의 양은 6만여 종에 이른다. 조선 후기와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출간물의 비약적인 홍수시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계열화의 독서, 선별적 독서가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대다. 그렇지 않고서는 허우적대다 빠져 가라앉기 쉽상이다. 다산의 시대보다 이런 방식의 책 읽기는 현대 우리들에게 훨씬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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